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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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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과제

[안종주의 안전 사회] 안전사회로 가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헌법 제1조이다. 지금은 19대 대통령이 된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8일 광화문 마지막 유세에서 국민 대표들이 헌법 제 1조를 포함해 헌법 주요 조항들을 낭독해 광화문을 꽉 메운 유권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헌법의 정신을 되새기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문 후보의 다짐이자 국민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다.

마침내 국민주권 시대가 열렸다. 민주정부 3기, 문재인 정부에다 이름을 붙이라면 국민주권 정부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 않았다. 주권은 박근혜-최순실의 사유물로 전락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이 낳았다. 따라서 국민주권만큼 새로운 민주정부에 잘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새로운 정부는 적폐 청산, 국민통합, 일자리 등 민생 해결, 북핵, 사드 등 외교안보 위기 해결 등 그야말로 정치, 사회, 경제, 외교안보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그동안 쌓인 비정상과 비효율, 부패를 뿌리 뽑아야 과제들을 안고 있다. 이 과제들은 대부분 풀기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여소야대 상황과 이익을 앞세운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이런 상황을 오래 기다려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언론과 야당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국민만 바라보고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는 길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 국민을 섬기는 국민주권 정부가 더욱 중요한 까닭이다.

국민주권 정부에서는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앞서 말한 적폐 청산, 국민통합, 일자리 등 민생 해결, 북핵, 사드 등 외교안보 위기 해결 등도 죄다 생명과 안전과 연결돼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야말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민생이 도탄에 빠져 실업, 빈곤이 지속되면 자살 등 사회적 위험이 필수적으로 뒤따른다.

사전주의 원칙, 소통의 원칙, 현장과 안전약자 우선주의를 지켜야

우리 사회를 생명과 안전이 강물처럼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중요하다. 국민주권 정부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첫째 사전주의(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다. 이 원칙은 쉽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이며 도약하기 전에 앞을 먼저 보는 것이다. 사전주의 원칙은 1980년대 독일에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효시다.

환경은 생명과 안전과 직결된 분야이다. 특히 환경은 한 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꼽을 수 있다. 핵발전소 사고로 대규모 방사성물질이 누출돼 환경이 오염된 지역은 언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요원하다. 이뿐 아니라 토양이 다이옥신, 석면, 발암물질, 중금속 등으로 심각하게 오염되면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 강과 바다가 잔류성유기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llutants, POPs)로 심각하게 오염되면 그곳에서 자라는 물고기 등은 더는 먹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환경을 바꾸고 개발할 때는 늘 이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엄청난 세금을 들여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녹조라떼'로 상징되는 강 오염을 불러왔다. 4대강은 여름철만 되면 골칫덩어리로 변한다. 앞으로 새 정부는 드러나지 않은 4대강 비리를 파헤치고 죽어가는 강을 다시 생명의 강으로 바꾸어야 한다. 필요하면 보를 허물어서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자연환경 파괴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런 유혹이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사전주의 원칙을 새겨야 한다.

국민정부가 지켜야 할 두 번째 생명과 안전 원칙은 소통이다. 소통의 원칙은 재난이나 사고 예방뿐만 아니라 대응과 구조, 안전과 직결된 복지 등에도 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도 안타까워하는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만 해도 현장에서 누군가가(정부가) 그들과 잘 소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었더라면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통은 자살을 비롯한 죽음을 막을 뿐만 아니라 재난·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소통의 중요성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던가.

소통은 공감이며 서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서, 노동변호사로서 어렵고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 편에서 그들과 공감하고 눈높이를 맞추면서 반평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소통의 가치를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주권 정부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사이버공간이나 SNS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눈을 맞추면서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새 정부의 우선 해결 과제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이명박 정부 때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고 박근혜 정부 때 피해신고와 판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까지 이루어졌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다. 피해신고를 한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판정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중중폐질환 이외 다른 질환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그 시행은 국민주권 정부 들어서 7월부터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법 시행으로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될 것으로 믿는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환경시민단체는 사실상 없다. 한 영세업체가 만들어 판 세퓨라는 이름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23개월 된 아이를 잃은 아버지에게 제조업체가 3억6920만 원을 손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법원이 11일 내렸지만 이 업체는 2011년 이미 폐업한 상태여서 유족들은 어디서 배상금을 받을지 막막하다. 이들의 고통과 눈물은 누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인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정부의 해결 노력이 지지부진하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1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광화문광장에서 열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칼럼에서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폐 섬유화 이외의 여러 가지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들의 참혹한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과학적 인과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면 가해기업으로부터 구상권을 청구하기 어렵다는 환경부의 말은 알량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은 특히 정부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과 얼마나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언제 어디서나 생명과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 정부라야 성공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세 번째 원칙은 현장우선주의다. 재난이 일어나고 환경이 파괴되며 사고가 일어나는 현장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쉬운 위험지역(hot spot)이 어디인지 미리 파악해 이곳에 대한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는 곳이 있고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과 물질이 있다. 예를 들어 스프레이 제품과 살충제. 살균제, 항균제 등의 살생물제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이런 제품의 허가와 관리는 매우 꼼꼼하게 해야 한다.

현장우선주의의 원칙을 잘 이해한다면 현장에서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시 이에 즉각 잘 대처해야 하는 현장 인력에 대해서는 전문성과 자율성을 주어 책임과 자긍심을 가지고 이들이 일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인력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명령은 오히려 재난 예방, 특히 대응 때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삼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명과 안전 부문에서는 안전약자 우선주의가 적용돼야 한다. 지진, 화재, 건물 붕괴, 교통사고 등 각종 재해와 재난, 사고 때 어린이와 여성, 노인, 장애인, 그리고 환자 등 이른바 안전 취약자들이 우선적으로 안전지역으로 대피하고 또 구조될 수 있도록 위기대응 매뉴얼, 구조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실천토록 해야 한다. 이는 경찰, 소방·구조대원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철저한 체험교육과 소통을 통해 안전약자 우선 수칙이 몸에 배이도록 해야 한다.

국민주권 정부 시대에는 이러한 생명과 안전 원칙에 따라 조직, 예산, 컨트롤타워, 인사, 교육, 홍보. 가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주권 정부는 한마디로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국민이 가장 바라는 생명과 안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 때까지 언제 어디서나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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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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