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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J)노믹스'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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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이(J)노믹스'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가?

공약 재원 확보, 소극적 해법으론 안 된다

딱 20년 전, 1997년 5월 9일자 <경향신문> 머리기사는 "현철 씨, 10여 개 사 창업 돈 세탁"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최대 관심사였다.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한보그룹은 그보다 4개월 전인 1997년 1월 부도를 냈다. 정 회장의 마당발 로비를 통한 무리한 차입 경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역사는 다들 아는 대로다. 기업 도산 소식이 줄을 이었다. 그럼에도,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는 "한국경제는 펀더멘틀(기초)이 튼튼하다"고 했다. 1997년 9월 18일자 <조선일보> 머리기사는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였다. 두 달 뒤인 1997년 11월 18일, 한국은행은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도록 촉구했다. 다음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경질했다. 다시 이틀 뒤, 새로운 경제부총리가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약 한 달 뒤인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바로 그날, IMF 이사회는 한국에 대한 2차 자금 인출 안을 승인했다.

김대중 정부는 IMF에 코가 꿰인 채로 출범을 준비했다. 지난 2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잇따라 들어섰지만, 경제정책의 큰 방향은 비슷했다. 1997년 겨울, IMF가 가리킨 방향대로였다. 작은 정부,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이 키워드다.

'케인지언'으로의 전환, 성공할까?


2017년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새 대통령은 지난 20년과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김대중부터 박근혜까지, 어느 정부도 대놓고 공무원 증원을 이야기하지는 못했었다. 집권 이후엔 공무원 수를 늘릴지언정, 선거 시기엔 '작은 정부'를 약속하곤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핵심 공약이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이었다. 개표 결과가 나온 뒤, 누리꾼들이 집중적으로 검색한 내용도 바로 이거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강한 정부'를 약속했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참모들 역시 '적극적인 케인지언 정책'을 이야기했다. 정부의 역할을 키운다는 말이다. 적어도 공약만 놓고 보면, 지난 20년 한국을 지배한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 출사표에는 '새 시대의 첫 차'라는 표현이 있다. 그의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가 되고 말았다"고 탄식했었다. 문 대통령은 과연 한국 경제의 새 방향으로 방향타를 돌린 첫 번째 선장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 조언자'들, 왼쪽부터 김광두, 김상조 교수 ⓒ문재인 캠프

연일 최고치 코스피, '정권 교체 축포' 맞나?

다시 20년 전을 돌아보자. 지금과 비슷하면서 또 다르다. 국정농단을 했던 김현철의 자리에, 지금은 최순실이 있다. 정권 비선 실세와 재벌의 추한 민낯이 드러난 것도 닮았다.

하지만 경제 지표는 확연히 다르다. 1년 내내 악재가 이어졌던 1997년과 달리, 지금은 코스피 지수(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다. 지난 4일, 코스피 지수는 2241.24로 마감했다. 주식시장이 도입된 이래 최고치였다. 그런데 대선 하루 전인 지난 8일, 다시 축포가 터졌다. 코스피 지수, 2292.76.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정권 교체'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분명히 반영돼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주류 언론 역시 그렇게 본다. 새로운 정부가 재벌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시장 질서를 세우며, 주주 친화적인 기업 경영을 정착시키리라는 기대감이다. 이는 모두 주식 투자자에게 유리한 방향이다.

2분기 경제 지표 악화되면, 보수 언론은 뭐라고 할까?

하지만 여기까지다. 정작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던 경제 전문가들은 불안한 기색이다. 올해 1분기 경제 통계는 대체로 장밋빛이었다. 관료들이 왜곡된 메시지를 섞은 결과라는 불안감이다.

그 대가는 2분기에 정산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분기 경제지표에 반영된다. 게다가 이미 최고치를 기록한 코스피 지수엔 거품이 끼고 있다. 신용거래융자 역시 최근 6개월 사이 최고치다. 신용거래융자란, 투자자가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금액이다.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한 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말이다.

정권 출범 전에 낀 거품은, 출범 이후에 빠진다. 오르막 뒤엔 내리막이라는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분기 경제 지표까지 나쁘게 나오면 어떻게 되나. 보수 언론, 보수 야당이 목소리를 높인다. '진보 정부는 경제에 약하다.' '시장은 개혁을 피곤해 한다.'

개미의 눈물과 기업 양극화

사상 최고치 코스피 지수, 속을 뜯어보면 더 불안하다. 외국인 투자자가 많이 산 10개 종목 중에서 9개가 상승했다. 기관투자가가 많이 산 상위 10개 종목은 모두 올랐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산 10개 종목 중 8개가 손실을 봤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맞춰 터진 축포, 활짝 웃은 건 큰돈을 굴리는 외국인과 기관이었다. 축포와 환성은 평범한 투자자들에게 남의 일이었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이른바 개미, 즉 개인 투자자들은 값이 싼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한다. 그런데 코스피 지수 상승을 견인한 건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다. 금광 개발 열풍이 불면, 곡괭이가 잘 팔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삼성전자가 수혜자다. 그 효과가 코스피 지수에 반영돼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 착시 효과'를 걷어낸 코스피 지수를 1880 정도로 본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기업들의 실적은 나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기업 양극화다. 삼성전자와 비(非)삼성전자, 재벌과 비(非)재벌의 양극화다.

삼성 반도체에 13조 원 투자했지만, 고용은 650명 늘어

이는 다시 일자리 문제와 맞물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약 13조 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삼성 반도체 부문에서 새로 늘어난 고용은 650명에 불과했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돈을 쓸어 담는 기업은 늘 있다. 대기업이 현금을 쥐고만 있을 뿐, 투자를 안 한다며 비판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전망이 보이면 투자도 한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투자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

이는 양극화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 양극화 구조의 밑바닥에 있는 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나. 당연히 아니다. 이런 기업은 그저 살아남는 게 목표다. 그나마 있던 직원도 내쫓는다.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 순수 증가치는 17만 개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국정운영의 1순위를 일자리 창출에 두겠다고도 했다. 기업 자율에만 맡겨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온 공약이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다. 이 가운데 17만 개가 소방관, 경찰, 교사 등 공무원이다. 나머지는 보육 등 사회 서비스 부문 노동자, 그리고 공공 부문에 간접 고용된 노동자다. 이들을 공공 부문으로 끌어들이고, 직접 고용으로 전환한다는 것.

따라서 일자리가 실제로 늘어나는 수치는 17만 개인 셈이다. 나머지는 노동자의 소속 및 고용형태가 바뀌는 것이다. 게다가 17만 개 공무원 일자리 역시 5년 동안 순차적으로 늘어난다. 올 하반기에는 공무원 일자리 1만2000개를 만든다고 한다. '81만 개'라는 수치에 확 꽂혔던 취업 준비생 입장에선 김이 새는 소식일 수 있다.

낭비 줄이고 탈세 막아서 재원 확보, 얼마나 가능할까?

문제는 이처럼 미지근한 목표 역시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선거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의 일자리 창출 공약에 대한 재원 확보 대책이 부실 또는 부정확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정부를 실제로 운영해야 하는 지금, 이 문제를 계속 모호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 증세는 필연이다. 공약을 준비했던 참모들도 인정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조정하고, 상속·증여세 공제도 축소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영업이익이 많은 기업에 대한 실효세율을 상향하고, 그러고도 재원 조달에 문제가 생길 경우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상향하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 측은 일자리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 조달액을 연 35.6조 원으로 계산했다. 재정 개혁으로 22.4조 원을 확보하고, 조세 개혁으로 13.2조 원을 거둔다. 조세 개혁에는 탈루세금 과세 강화, 세외수입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 순수한 증세, 즉 세법을 바꿔서 확보한 재원 목표치는 연 6.3조 원이다. 나머지 29.3조 원은 재정 낭비를 줄이고, 탈세를 막아서 확보한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하며 내세웠던 논리 역시 낭비를 줄이고 탈세를 막으면 가능하다는 거였다. 결과는 아는 대로다. 문재인 정부는 얼마나 다를까. 순수한 증세 규모를 연 6.3조 원에 묶어 둔 채로 일자리 공약을 실현할 수 있을까.

증세 정치, 차라리 담대한 도움닫기를

답이 '아니오'라면, 문재인 정부는 늪에 빠진다. 소폭이나마 증세를 했으므로, 납세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힌다. 그런데도 일자리조차 못 늘린다면, 이중의 반발이 생긴다.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살금살금 걷는 대신 훌쩍 도움닫기를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증세를 기왕 인정했다면, 현실적인 규모를 제시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심상정 후보의 공약을 참고할 만 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순수한 증세, 즉 세법 개정으로 확보할 재원 규모를 연간 약 70조 원으로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 측의 연 6.3조 원보다 열 배 이상 큰 규모다.

글머리에서 20년 전 IMF 외환위기를 거론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경제 위기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1997년과 같은 종류의 파국을 예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20년 전의 교훈은 필요 없는 건가. 그 역시 아니다.

어떤 종류의 위기에서건, 늘 통하는 교훈이 있다.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것. 1997년 당시 거짓말로 현실을 덮으려던 정책 당국자들이 위기를 키웠다. 기업들이 줄도산 하는 현실에서 "한국경제는 펀더멘틀(기초)이 튼튼하다"라는 거짓말을 했다.

지난 20년 신자유주의 질서의 수혜자였던 대기업은 더 이상 일자리를 늘리지 못한다. 그게 현실이므로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그러자면, 증세를 꼭 해야 한다고. 물론, 입을 떼기가 어렵다. 약간의 증세로 가능하다고, 거짓말로 넘기려는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담대하게 극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이들이 기대한 미덕도 어쩌면 이 대목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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