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고백
1987년 민주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다. 이후 역대 대통령 이름을 살펴본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라 부르기도 싫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아니, 이 중에는 사람이 아닌 괴물도 있다. 난 그들에게는 미움도 없고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소중한 감정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므로. 총 6명의 대통령. 그러니까 여섯 번의 선거와 나의 투표 행동이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찍어서 당선된 대통령은 없다. 난 한 번도 내가 원하는 대통령을 뽑지 못했다. 대중들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욕망이 아니라 선택 혹은 판단이라 해도 좋다. 그리고 지난 30년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그 선택과 판단과 욕망이 옳았는지는 일단 미루기로 하자. 과거의 판단을 탓하고 잘잘못을 가리고 싶지 않다.
1987년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실현 이후, 대통령 선거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해는 없었다. 장미 대선으로 치러지는 올해도 그렇다. 촛불 민심과 혁명의 대의 앞에 혼탁해지는 선거판을 보며 다시 걱정이 커진다. 수많은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라오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와 타도의 글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올해도 나는 과거처럼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대통령과의 괴리를 경험할까? 아직 모른다. 나는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으니까.
이런 글을 쓴 이유는 뭘까? 대통령 후보들과 나 사이의, 아니, 내 선택 사이의 괴리를 탐색하다 내가 당대의 대통령을 선택하지 못한 심리적 기저를 발견한 까닭이다. 바로 대통령 자체를 무시하는 마음이 심층의 기저에 똬리를 틀고 있음을 깨달았다. 불신일까, 무시일까 아직 모르겠다. 아니, 역대 대통령 가운데 그래도 비교적 인간적이고 나름 공과가 뚜렷한 대통령도 없지 않으니 어쩌면 대통령이 된 '인물'보다는 대통령이라는 '제도'나 '자리'에 대한 불신이 더 크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될 만한 대통령은 절대 찍지 않겠다는 일종의 치기 아니면 오기랄까. (노무현 대통령을 찍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미 되리라는 확신이 들어 찍지 않았다. 아마 못될 거라는 믿음이 공공했거나 어려울 거라는 불신 상태였으면 두말하지 않고 노무현을 찍었을 거다. 참고로 노태우 김영삼 선거에는 김대중을, 김대중 노무현 선거에는 권영길을, 이명박에는 정동영, 박근혜에는 문재인을 찍었다. 그래도 두 번의 후자 투표는 괴물보다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안도감뿐이다.)
이런 추세라면 안철수와 문재인 중 안 될 사람을 찍거나, 둘 다 팽팽하다면 심상정을 찍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건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이 아니라 그들이 앉을 대통령의 자리, 그 권력의 속성이 문제다. 사춘기와 비만과 치매의 자리, 이 셋을 포함하는 대통령의 권좌 말이다.
대통령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
자전거에 막걸리, 시를 사랑하는 대통령. 신동엽의 아름다운 시 <산문시1>에 나오는 대통령은 낭만적이다. 그래서 다들 그런 대통령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염원한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思索)뿐 /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신동엽의 <산문시 1> 중)
노무현 대통령처럼 비슷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힘들었고 퇴임 후에 그랬다. 그도 안타깝게 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사라졌다. 온정하게 생을 마감한 대통령도 계시지만 다들 결말은 비참했다. 비만 권력, 치매 공약, 사춘기적 애국주의에 사로잡힌 까닭이다. 그런 대통령제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누구인들 올라가면 달라질까. 물론 사람이 정권을 잡느냐, 괴물이, 괴물만도 못한 쓰레기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역사와 미래가 달라진다. 정말, 달라질까? '대통령 자체가 일종의 괴물'인데?
대통령이 괴물인 이유는 단 하나다. 국민인 나랑, 국민의 한 사람인 나랑, 그러니까 개개인의 국민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비대한 권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유일하게 토론공화국을 외치며 소통을 시도한 인간적인 대통령도 있기는 하다. 실패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통령'이니까. 그 자리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니까. 그 자리 자체가 괴물이니까.
아마도 대선 때마다 내가 대통령이 될 사람을 찍지 않은 건 누가 되어도 자기 역량을 넘어서는 권력을 통어하고, 자기 공약을 잊지 않고 치매를 넘어서며, 미국이나 중국, 북한 앞에서 사춘기 소년 소녀처럼 갈팡질팡하지 않는 대통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헬조선, 사드, 시급 1만 원 등의 과제 앞에서 이번 대선 후보들은 다를까?
대통령을 우습게 보자. 소통 불능 권력은 재활 불가 쓰레기다
우리 모두 디오게네스가 되기는 어렵다. 당대 권력 알렉산더를 힐끗 보고 햇빛을 가리니 춥다고 한 그를 우리는 반만이라도 닮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런 용기와 마음을 지녀야 한다.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고 그 자리 자체가 십자가 지듯 무거우며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고통의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어 현실과 정치를 바꾸자는 권력 투쟁이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죽이는 권력 해체 투쟁을 해야 한다. 당장 내각제 개헌을 하자거나 혹은 투표를 하지 말자거나 정치적 무관심에 빠지자는 말이 아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권력 축소를 시행하긴 어렵다. 그런 발언이나 다짐이라도 끌어내면 다행이다. 누가 권력을 잡아 잘하겠다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권력을 해체하고 공론장이 살아 있는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이 갈지 노력하겠다고 공약하고 다짐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사람이 그나마 덜 괴물이고 덜 쓰레기이다.
올해도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을 찍을 자신이 없다. 아니, 아직 찍고 싶지 않다. 나로서는 더 약자, 더 정의로운 자, 내 기준이라면 사람에 가까운 자를 찍고 싶다. 물론 아직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을 우습게 여기는 마음만큼은 유지할 계획이다. 그 누구도 내 마음의 대통령, 아니, 대통령 자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나는 금세기 국민의 마음의 핵은 통(通)이라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대통령(大統領)이라는 괴물의 자리를 대통령(大通領)이라는 인간의 자리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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