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리 심블리."
"너무 팩트 폭격기인 거야."
20대 청년 무작위 인터뷰를 마치고 가는 길, 서울 신촌 한 가운데에서 지나가던 두 20대 청년이 나누는 수다가 귀에 확 들어왔다. 이어지는 통쾌한 듯한 웃음소리. 대선 후보 방송 토론 관전평 한 토막이 화제에 오른 모양이었다. 일상의 수다 주제가 '대선 토론'이라니, 바야흐로 정치의 시간임을 실감했다. (☞관련 기사 : 갈라진 탑골공원…안철수냐 홍준표냐?)
지난 2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이화여자대학교 유세에 맞춰 신촌에 가봤다. 청년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정의당 관계자는 "갈수록 현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화여대 4학년, 취업준비생인 허승연(여·26) 씨도 심상정 지지자 중 하나였다. 허 씨는 이날 일부러 유세장을 찾았다.
"지난 번에 우리 학교 오셨을 때 알바하느라 못 가서 이번에 응원하러 왔어요."
허승연 씨는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 학점 따기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요즘 최대 고민은 "경제 문제와 취업 문제를 합친 복합적 고민"이다. 최근에 부모님과 취업 문제로 싸워 자취를 시작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월세 5만 원짜리 청년 임대주택에 당첨됐다. 임대주택 당첨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독립이다. "운이 좋았다."
허승연 씨는 심상정 후보를 안 지 얼마 안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몰랐다가, "촛불 시위하면서 심상정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왜 심상정인가.
"대선 후보들 중에 제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후보가 많았어요. 문재인, 저도 많이 좋아하지만, 문재인은 우선 순위가 다른 것 같아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성 소수자 인권을 뒷전에 놨어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것 보고 충격 받았어요."
허 씨는 '헬조선'이라고 불평하면서 헬조선을 바꾸려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투표율이 낮으니, 청년 정책은 안 나와도 된다"는 어른들의 말도 싫다. 청년도 나라의 일부이고, 대선 후보라면 청년 정책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저는 공공 임대주택에 당첨됐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잖아요. 공공 임대주택이 청년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어요. 이런 공약을 많이 냈으면 해요."
'신촌의 청년 민심'은 두 가지로 요악됐다. 첫째,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 무척 많았다. 이날 만난 20대 수십 명 가운데 절반가량은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제일 싫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꼽았다. 심지어 스스로 '보수'라고 밝힌 사람조차 홍준표 후보보다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게 관심을 표했다. 설사 '샤이 홍준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왠지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둘째, 심상정 후보 지지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이하 후보들 직함 생략)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부동층도 꽤 보였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심상정과 문재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촛불 집회', '적폐 청산', '현 시국'과 같은 단어가 오르내렸다. 이들에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상식이 무너진 경험"이었고, 대선은 '촛불 집회'의 연장선상이라는 분위기가 일부 감지됐다.
심상정이냐, 문재인이냐?
스스로 '진보'라고 밝힌 선모(남·20) 씨는 생애 첫 대선 투표에서 문재인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정책이나 당의 방향성이 제 가치랑 잘 맞다."
선 씨는 2016년 총선 때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을 찍었다. 민주당의 총선 대승을 예감해서 견제하자는 차원에서 국민의당에 표를 줬다. 1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당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국민의당이 옛날이랑 다른 것 같다. 야당 느낌이 안 난다. 진보인지 보수인지 헷갈리는 노선이다. 보수 쪽으로 간 거 같다."
이모(남·21) 씨는 "심상정을 지지하지만, 문재인 찍을 것 같다." 심상정의 공약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 공약에 필요한 예산을 터무니없이 많이 적어 냈다." 문재인은? "당의 파워가 제일 세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를 대선 후보 다섯 명 중에 문재인이 제일 빨리 처리할 것 같다." 이 씨에게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란 "적폐 청산"이다.
"박근혜 계열 인사들을 정리해야 한다. 최순실 사태에 책임을 안 묻고, 적폐를 해결하려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다."
손모(여·19) 씨는 심상정이다. 원래 문재인과 심상정 둘 중에 재고 있었는데, "동성혼 합법화, 차별금지법에 심상정만 소신껏 찬성해서" 마음을 굳혔다.
"공약을 평가해 봐도 심상정이 괜찮다. 복지 쪽에 신경 쓰는 것 같다."
윤인영(남·24) 씨는 대선에 "관심이 없다. 그놈이 그놈 같다." 대선 토론을 하기 전에는 문재인, 안철수 중에 한 명을 생각했는데, 서로 네거티브하는 것을 보면서 요즘은 "5번(심상정)이 괜찮다고 생각만 하고 아직 고민 중"이다. 윤 씨는 "양당 체제에 불신"이 있지만, 안철수는 아닌 것 같다. 안철수는 "정치를 잘 모르면서 정치하려고 하는 것 같다." 심상정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호감이 생겼다."
이해정(여·19) 씨는 생애 첫 투표 대상으로 문재인과 안철수 중에 고민 중이다. 부모님도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서 고민한다고 한다. 문재인, 안철수를 보면 "어떨 때는 이쪽이 잘한 거 같고, 어떤 때는 저쪽이 잘한 것 같다." 굳이 꼽자면 안철수다. 이 씨는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보는 편인데,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 있다.
"보수여도 홍준표는 아니야"
김지우(여·20) 씨는 안철수와 유승민 중에 저울질 중이다. "문재인을 막으려면 안철수를 뽑아야 하는데, 토론은 유승민이 잘해서" 고민이다. 유승민을 찍으면 "사표될까" 고민이다. 김 씨는 '보수'다.
"제가 경제학과라 규제 철폐, 자유주의적인 것을 원하는데, 민주당은 노동자 위주이고 친기업적이지 않다. 복지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재인은 저랑 상극이다."
보수인데 홍준표는 왜 별로인가? 김 씨가 난감한 듯 한동안 헛웃음을 냈다.
"대선 후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솔직한 건 인간적이고 좋은데, 말투가 대선 후보로서 부적절하다."
김상희(남·22) 씨는 홍준표 빼고 나머지 4명 중에 한 명을 고를 생각이다.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모두 똑같이 고려 대상이다. 홍준표는 "현 시국에 맞지 않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제 기준에서 일반적이지는 않은 사람 같다." 어떤 발언이 일반적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박근혜 사면"은 좀 아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지난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유권자 1006명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20대(만19세~29세)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44%였고, 그 뒤를 안철수(16%), 심상정(15%), 유승민(6%), 홍준표(6%) 후보가 이었다.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1위였고,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20대 지지율이 비슷했다.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오름세를 타고 있다. 지난 1일 EBS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결과에서 심상정 후보는 지지율 11.4%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의당 박원석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은 "지지율 상승의 기반은 20대, 여성, 무당층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관련 기사 : 심상정 11.4%로 껑충...홍준표와 3%p 오차범위 '바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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