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초법적 살인자'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매우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고, 백악관에 초청했다는 소식에 국제인권단체들의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1일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에서는 동남아시아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통상적인 외교적 접촉의 일환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트럼프는 또 다른 속셈이 있다"라면서 "취임 100일을 맞아 백악관이 공개한 이 소식은 트럼프가 아직도 국민, 심지어 참모들까지 입이 벌어지게 하는 할 말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두테르테 살인행각의 도덕적 공범"
그의 또 다른 속셈은 무엇일까? 일단 인권 문제와 관련된 논란부터 살펴보자.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아시아지부 대표 존 시프턴은 "트럼프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벌이는 두테르테의 살인 행위를 지지함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살인에 대해 도덕적 공범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크리스토퍼 머피 민주당 의원은 "미국의 인권 보루가 되어야 할 대통령의 권위(bully pulpit)가 무너져 재가 되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다"고 개탄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 정부 내에서도 국무부와 국가안보위원회조차 트럼프가 두테르테를 백악관에 초청한다는 계획에 당혹해 하면서 반대할 것을 우려할 정도였다. 미국의 법에 따르면, 두테르테는 국가수반의 지위가 아니라면 입국에 필요한 비자를 받기 어려운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전화통화를 하고 백악관 초청까지 한 아시아 독재자들은 두테르테만이 아니다. 지난 30일에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프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도 잇따라 접촉을 했다.
리셴룽 총리는 인권 문제와 관련해 큰 논란을 겪은 독재자는 아니지만,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마약범죄와 관련됐다는 용의자는 사조직까지 동원해 살인을 서슴지 않아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8000여 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상당수 무고한 사람들이 용의자로 몰려 살해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프라윳 태국 총리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독재 정치로 국제인권단체들의 반발을 사온 인물이다.
"북핵문제 때문이라면, 말레이시아부터 관계 개선에 나서야"
오바마 정부는 "필리핀의 초법적 처형은 법치와 인권 옹호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태국 정부가 인권 탄압을 일삼는다고 무기거래를 중단할 정도였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가 인권의 가치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인권을 존중하기는커녕, 인권에 개의치 않는 독재자, 이른바 '스토롱맨'들을 선호하는 성향을 일관되게 보여왔다. 두테르테는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 나에게 마약과의 전쟁에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자랑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에서는 두테르테와의 관계개선에 나선 것은 어디까지나 전략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두테르테 집권 이후 필리핀은 전통적인 동맹관계에서 탈피해 중국과 급속히 가까워졌다.
두테르테는 오바마 정부가 인권 문제를 제기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오바마는 '창녀의 자식'이라고 막말을 퍼부었을 정도로 양국 관계는 냉각됐었다.
지난해 10월 두테르테는 중국을 방문해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미국은 더 이상 패권국가가 아니다"면서 "나는 중국의 이념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고, 미군의 필리핀 주둔을 허용하는 협정을 폐기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는 남중국해 일대에서 중국의 팽창전략을 억제할 방파제로 필리핀과의 동맹관계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필리핀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토분쟁을 겪어왔다.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은 두테르테를 백악관에 초청한 배경에 대해 북한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은 프리버스 비서실장을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북한과 무기 관련 기술을 거래하는 회담이 열리는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와의 관계부터 개선하려고 나섰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두테르테와 '매우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배경에 대해 사업적 이해관계를 지적했다. 트럼프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1억5000만 달러짜리 57층 빌딩 소유주다. 또한 자신의 회사에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면허사업권도 가지고 있다. 또한 두테르테는 마닐라의 트럼프 소유 빌딩을 건설한 시행사 회장 호세 안토니오를 무역투자경협 특사로 임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스트롱맨을 좋아하는 트럼프의 성향은 본능적이고, 지속적"이라면서 "그는 최근 터키 민주주의의 종언이라고 비판받는 문제가 심각한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로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관련 기사:'21세기 술탄' 에르도안에 美·EU도 '쩔쩔')
신문은 "심지어 트럼프는 주적인 북한의 김정은에게도 놀랄 정도로 후한 평가를 했다"면서 "트럼프는 CBS 방송에 출연해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할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 경의를 표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친척 등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었다고 본다"면서 "그는 지켜냈고, 따라서 그가 매우 영리한 친구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