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풍경이다.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 선언' 기자회견을 위해 장군과 국방안보 전문가 등 이백 명 남짓이 모였다. 군 관계자들과 거수경례하며 "국가 안보를 맡겨 달라"는 문재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소속 활동가 13명이 기습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별 것 없었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다가가 "동성애자 혐오 발언을 사과하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사과하라고 몇 번 외치지도 못하고 끌려 나갔다. 몇몇 매체에서는 활동가들이 문재인의 멱살을 잡았다고 썼지만 오보였다. 증언을 들어보면 이후 문재인 후보가 떠나고 상황이 종료되고 경찰이 집에 가려는 활동가를 기습했다고 한다. 미란다 원칙 고지도 없이, 여경을 불러달라는 요구를 묵살하고 "이불로 둘둘 말아서 집어던지듯이" 연행했다.
이후 대선 후보 사이에서는 성소수자 혐오발언이 줄을 이었다. 성범죄 가담자 홍준표는 동성애는 엄벌해야 한다며 기가 찬 발언을 하고 안철수 후보는 동성애는 찬성하거나 반대할 문제는 아니라면서도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입장을 밝혔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실언을 한 문재인 후보는 본이 아니게 상처를 준 발언에 대해서 사과했지만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 법제화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공약이었다. 정책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그 때의 공약보다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라는 문재인 후보의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다.
온라인에서의 혐오발언도 상당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비하 뿐 아니라 단체를 해산시켜야 한다거나 불법시위자를 감옥에 넣어야 한다는 파시즘적 의견도 쉽게 볼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부조리한 의견은 차치하고, 조금 다른 논조의 의견도 있다.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시민들 중 일부분이 왜 지금 진보 후보를 그렇게 공격해야겠냐며 성소수자 운동 진영을 탓하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정권 이후 주된 과업을 적폐 청산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는 해결되지 않은 폐단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 중 하나가 인권 문제를 소홀히 해왔던 것에 있다. 특히 약자의 권리는 계속해서 짓밟혀왔다. 한진중공업 사태, KTX 여승무원 사태, 대추리 미군기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한미FTA, 밀양 송전탑 사업 승인은 모두 참여정권 때 이루어졌다. 그 책임은 '저 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 진영 안에도, 심지어 내 안에도 적폐가 있다. "이 문제는 다음에" 라고 소수의 문제는 거대한 개혁 옆의 작은 문제 취급해 온 것, "현실정치"를 말하며 사실은 현실운동을 무력화 시켜온 것,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해결할 것이니 일단 믿어보라는 무조건적인 강요가 바로 적폐다.
장미 대선은 다섯 대통령 후보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68혁명 때처럼 촛불 탄핵도 광장의 시민이 만든 것이다. 많은 날에는 수백만이 모였던 촛불 시위에 소수자가 없었을까. 추운 날에도 당신 옆에서 광화문의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바로 소수자였다. 이번 기습 퍼포먼스를 한 성소수자 시민단체 '무지개 행동'은 광화문 시위에 매번 나왔다. 그들을 다시 장외로 모는 짓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동성애에 반대하냐고요." 홍준표가 던진 무지막지한 질문에 기가 막히면서도 수많은 장면들이 눈앞을 스쳤다. 몇 년 전 들은 부산 여고 동창생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다. 여고 동창생 두 명이 40 년간 함께 살다 그 중 한명인 A씨가 암 판정 받게 된다. A씨가 입원 후 투병을 하게 되면서 B씨는 함께 살던 아파트를 나와 혼자 살았다. A씨의 사망 이후 A씨의 친척이 아파트 출입문 열쇠를 바꾸고 B씨의 접근을 막았다. 두 달 후 B씨는 A씨의 죽음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둘이 살던 집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둘은 동성 커플이었다. 이 커플을 앞에 두고 어떻게 둘의 사랑을 반대할 수 있을까. 문재인 후보는 단호하게 홍준표의 질문을 차단했어야 한다. 올바른 대답을 내놓은 후보는 아직까지도 심상정 후보 밖에 없다.
매끈한 원탁에서 대선 후보들이 안보 문제, 청년일자리 정책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터져라 "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외치는 성주 주민과 혹독한 노동환경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CJ E&M 청년 노동자가 떠올랐다. 정책에 삶은 보이지 않고, 약자의 권리는 아직도 원탁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며칠 전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진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동성애 문제는 이전 선거에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후보 진영은 이에 대한 정책도 준비도 없는 상황이긴 한데…." 지금은 2017년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이 언급 안 되는 것이 이상한 시점이다. 차별금지법이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나온 지 이미 15년이 지났다. 20대의 70% 이상이 동성혼을 찬성한다. 일본의 몇 지자체에서는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고 대만은 동성혼 법제화가 진행 중이다. 동성애는 누구에게도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인권의 영역이며 동성혼 법제화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다시 한 번 지난 촛불의 풍경을 돌이켜 본다. 촛불은 단지 박근혜 청산만을 외치지 않았다. 소수자 인권, 재벌 청산, 평화 등 수많은 이야기가 터져 나온 해방의 자리였다. 촛불이 만든 대통령은 적어도 인권의 편에 설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지개 깃발을 들며 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는 활동가에게 미안하다며 손잡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존재를 부정하지 말아 달라는 성소수자 활동가의 외침에 촛불을 함께 들었던 우리가 답해야 한다. 기꺼이 함께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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