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미국 유권자들이 '날도둑'을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금 감면이 그대로 순이익 증가로 이어진다고 해서 '패스 스루(pass-through) 비즈니스'라고 불리는 부동산개발업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결과, 미국 국민은 대통령과 그의 부자 친구들을 위한 '셀프 감세안'를 '30년 내 최대의 세제개혁'이라고 포장한 정책의 희생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트럼프 정부가 26일(현지시간)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우선 연방 법인세율을 현행 35% 이상에서 15%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세금을 아끼기 위해 본사를 이전한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이 12.5%다. 미국이 15%로 법인세율을 내리면 이 차이는 2.5%포인트로 좁혀진다. 한마디로 미국의 법인세율을 '사실상 조세회피지'로 불리는 아일랜드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운영하는 것과 같은 부동산개발업체, 헤지펀드, 로펌 등 이른바 '패스 스루 비즈니스'의 사업소득에 적용하는 세율도 현행 39.6%에서 15%로 인하한다. 지난 수십 년간 패스 스루 비즈니스의 인기가 커지면서 현재 미국에서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의 절반은 패스 스루 비즈니스가 차지한다.
바람직한 의미에서의 개혁적 세제개편안이라면 '넒은 세원 확보, 낮은 세율'을 지향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세제개편안이 '날도둑 심보'로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넓은 세원 확보도 없이 세율만 대폭 낮춘다'는 점 때문이다.
조세회피지 수준의 법인세율이면 경제성장?
법인세를 15%로 대폭 인하하는 대가로 미국 국민이 감당할 손해는 향후 10년간 2조2000억 달러(2483조 원)의 세수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대폭 인하에 대한 명분을 준비해두었다. 대대적인 법인세 인하로 기업들의 투자를 자극해 경제성장률이 3%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곧바로 "성장이 세수 부족을 상쇄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눈부신 성장률이 요구된다"면서 "법인세율 대폭 인하가 미국의 경기부양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조세재단(Tax Foundation) 앨런 콜 연구원은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를 극복하려면 연평균 0.9%포인트 이상 성장률이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같은 거대한 성숙 경제에서 법인세 인하로 1%포인트의 성장률을 높인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정설이다.
그뿐이 아니다. 상속세와 재산세도 폐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상속세는 상위 10%가 90%를 내는 세금이다. 상속세 폐지는 트럼프의 세제개편안이 '트럼프와 슈퍼리치 친구들'을 위한 셀프감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세목 감세다.
이밖에 자본소득세의 최고세율은 23.8%에서 20%로 하향 조정하고, 부동산 거래와 보유와 관련된 세율 인하 등도 빼놓지 않았다. 심지어 대안적 최저한세(Alternative minimum tax)도 폐지한다.
대안적 최저한세는 부자들이 세제를 우회해 절세하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가 도입한 부가적 소득세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사업을 괴롭혀왔다고 불평한 제도다. 그는 2005년 이 세제 때문에 3100만 달러의 소득세를 추가로 내야 했다.
이 때문에 톰 페레즈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세제개편을 통해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재정적 이익을 얻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머 상원의원도 "이번 세제개편안은 트럼프와 같은 고소득층에게만 이익이 될 것"이라면서 "이런 식이면 슈퍼리치가 고용 변호사보다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비축한 2조6000억 달러의 수익을 미국 내로 끌어들인다는 명분으로 10% 정도의 '1회용 본국송환세'도 준비했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 기업의 미국 내 수익뿐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35%의 법인세를 매겨왔는데, 본국에 들여오기 전까지 세금 내는 것을 미룰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과세를 미루기 위해 해외에 2조6000억 달러의 수익을 비축해 놓았다.
이제 트럼프 세제개편안이 시행되면, 미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10% 세금만 한 번 내고 고스란히 해외에 쌓아두었던 돈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그들만을 위한 날도둑 법안'이 '민주주의 전통이 깊다'는 미국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미국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세제개혁안이라면 당연히 정식 법안으로 만들어져 제출되어야 한다는 상식에 근거한 이런 기대는 벌써 어긋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트럼프케어 입법 때와 마찬가지로 세제개혁안을 일반법안이 아닌 예산조정안 형태로 마련했다. 일반법안은 상원에서 60석을 확보해야 통과되지만 예산조정안은 과반만 넘기면 된다. 이미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이며, 상원에서 확보한 의석수가 52석이다.
예상조정안 형식의 세제개편안은 그들의 장담대로 세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는 피해를 입힌다면 10년 뒤에 소멸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을 뿐이다.
'트럼프 세제개편안'이 실행될 경우, 전 세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도 우려된다. 미국 정부가 조세회피지에 가까운 낮은 법인세율을 매기면 결국 전 세계적으로 주요 국가들도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한마디로 전 세계 주요 경제국들이 기업과 부자를 위해 세금을 낮추는 경쟁에 돌입하는 '그들만의 자본주의'가 가속화된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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