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위 시국사건들에 대한 일련의 법원 무죄판결들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의 공무집행방해 등에 대한 무죄,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사건 무죄,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보도 무죄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이 무죄판결들에 대해 처음에는 검찰이 거친 불만을 언론에 쏟아내며 나섰다. 무죄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사실판단과 법리를 짜맞춘듯한 판결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러한 검찰의 불만을 일부 언론은 받아쓰기 하듯 빠뜨리지 않고 여과없이 보도했다. 더 나아가 판결을 내린 판사들의 이념적 편향성을 거론하며 법원내 '우리법연구회'가 뒤에 있다는 식의 왜곡보도를 했다.
그러자 이윽고 집권여당의 고위당직자들이 나서서 본격적인 정치공세에 들어갔다. 대법원장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는가 하면,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강화해 중요사건의 경우에는 특정판사에게 사건을 배당할 수 있게 하고, 정치적 성향이 강한 판사를 형사재판에서 배제하라고 까지 주장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민이나 국민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은 비판을 할 수 있다. 판사가 행사하는 재판권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비판에도 지켜야 할 한계가 있다. 사건의 내용과 본질에 대한 논리적이고 학리적인 비판이어야 한다는 한계가 그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결에 대한 집권여당, 검찰, 몇몇 언론의 비판은 사건의 본질이나 판결의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현재의 사법부 공격은 위헌적 행태
우선 판사들의 학술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법원내의 이념적 판사서클로 매도한다. 그리고 나서는 관련 판사들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법연구회'를 들먹이면서 이 판사들이 내린 판결에 이념적 색칠을 가하고 판사들을 이념적 편향성에 젖어 정치판결을 내린 판사들로 매도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정치적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급기야 일부 시민단체들이 대법원장의 차에 계란을 던지고, 판결을 내린 판사의 집 앞에서 위협적인 시위를 벌이는 비이성적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판결이 내려졌다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근거없는 비판과 비이성적 공격은 관련 판사들에 대한 지독한 명예훼손이며 도를 넘은 정치공세이고 사법부 독립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위헌적 행위로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러한 파상적 사법부 독립 침해 행위의 와중에 대법원장이 사법부 독립을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말한 데 대해 일부에서는 '사법부 독립'이 판사들에게 어떤 판결을 해도 괜챦다는 식의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사법부 독립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치권력이나 법원상층부 등 법원 내외부 세력들의 판결 간섭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것으로 힘없는 국민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집권여당, 검찰, 몇몇 언론들, 대법원장과 판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시민단체들은 지금 분명 이 '국민을 위한'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의 출발이자 기본이 '법관의 독립'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 일체의 '법원 내외부'의 간섭이나 영향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헌법,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해야 한다는 '법관의 독립'을 중요한 사법운영의 원리로 선언하고 있다. 판결에 대한 간섭의 주체인 '법원 내외부'에는 우선 소송당사자가 포함된다. 그 사건 판결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소송당사자의 간섭이 일차적으로 사법부 독립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당사자인 검찰의 개입
재판이라는 것이 분쟁의 당사자인 소송당사자들의 주장을 듣고 중립적 제3자인 판사가 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판단자인 판사가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소송당사자로부터의 독립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해진다. 검사가 바로 형사사건의 '원고'라는 소송당사자이다.
따라서 이번처럼 검찰이 법원의 일심판결에 대해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법원 판결을 폄훼하는 것은 소송당사자로부터의 사법부 독립 침해가 될 수 있다. 검찰은 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을 언론에 의도적으로 흘리기에 앞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나 기소에 무리한 법적용은 없었는지, 각종 혐의사실들에 대한 입증을 다했는지,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중립성을 지키며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국민을 위해 행사했는지를 조용히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이번의 무죄판결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항소이유서에서 법리적으로 소상히 규명하고 이심법정에서 그 점을 강변하면 될 일이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도 사법부 독립의 침해자가 될 수 있다. 이번처럼 사건 본질이나 판결의 내용에 대한 이성적 비판이 아니라 비이성적, 폭력적 이념공세로 나간다면 당연히 사법부 독립의 침해자가 된다.
문민정부 이후 가장 노골적 사법권 침해시도
집권여당과 같은 정치세력에 의한 사법부 독립 침해는 과거 우리 사법부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사법부 독립의 암흑기인 유신시절에 초임판사까지 포함한 전국 모든 판사들의 임명장에는 대법원장의 이름이 아니라 대통령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사법부의 수장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장이 모든 법관의 임명권자였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판사가 판결을 통해 행정부 등 외부세력으로부터 철저히 독립해 오직 헌법, 법률, 양심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내는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는가.
집권여당과 행정부는 일심동체다. 당정협의도 자주 한다. 따라서 집권여당 고위당직자의 사법부 때리기는 간접적으로 행정부의 사법부 흔들기가 될 수 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대법원장에게 정치성향이 강한 판사들을 형사재판에서 배제시키라거나 10년 뒤 재임용시 판사들의 자질검증을 하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은 집권여당과 행정부가 사법부의 사법권 행사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이다. 판사에 대한 인사권도 사법행정권으로서 사법부에게 전속된 '사법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의석으로 입법부를 장악하고 대통령을 배출해 행정부까지 쥐게 된 집권여당이, 사법부의 판결을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사법권 행사에 까지 간여하려 하는 것은 헌법상의 삼권분립원리와도 충돌한다. 입법, 행정, 사법의 세 부 중 적어도 한 부는 집권정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어야, 사법부의 다른 두 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를 통해 권력간의 균형이 지켜지고, 절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번 사태야말로 사법권 독립 침해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삼권분립의 지독한 훼손 시도라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이념적 편향성을 가졌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은 이 판결을 비판하는 집권여당, 검찰, 몇몇 언론과 시민단체가 더 독한 이념적 편향성을 뱉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최근의 법원 무죄판결들에 대한 이러한 비이성적 비판은 문민정부 이후 법원 외부세력에 의한 가장 노골적인 사법부 독립 침해 시도로 사법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간 관료화된 사법부 구조하에서 법원상층부로부터 '개별법관의 독립'이 우리 사법부 독립의 중요한 화두였다면, 작금의 사태는 다시 법원외부의 정치세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이 유린되는 상황이다.
사법부 독립의 수혜자는 바로 국민이다
우리는 사법부를 곧잘 '국민 인권보장의 최후보루'라고 부른다. 사법부야말로 독립된 판결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마지막 언덕이다. '사법부 독립'은 법원의 재판이 권력의 부당한 힘의 행사로부터 영향받지 않게 함으로써 힘없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에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들에서 피고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한 교사요, 언론사요, 정치인 개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의 표현의 자유와 같은 자유와 권리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무죄판결을 통해 지켜준 이번 판결들은, 오히려 사법권 독립이 지향하는 바를 실현한 판결들이 아닌가. 사법부 독립의 수혜자는 국민이다. 이제 수혜자인 국민이 나서서 사법부 독립을 지켜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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