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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법원은 정말 좌경화 됐나?

[분석] "'우편향'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자초한 착시 현상"

검찰이 징역 3년 등 중형을 구형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1심 재판부가 20일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사법 전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적·법리적 성격으로만 보면 사건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그 이전의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재판에서 '릴레이 무죄 판결'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여권으로선 당혹스런 기색이다. 특히 <PD수첩> 재판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첫 해를 휘몰아친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 시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불쾌한 기색은 역력하다.

사법 갈등의 한 축인 검찰도 격앙된 반응이다. 지난 14일 강기갑 대표의 무죄판결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분개'했던 검찰은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역시 "납득할 수 없는 편향적 판결이다. 우리법연구회가 문제다", "'노무현의 대못' 이용훈 대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며 십자포화를 퍼붓는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도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 한쪽은 "사법부의 엄정한 판단"이라고 환영하고 다른 한쪽은 "권력의 시녀"니 "정치적 판결"이니 하고 반발하는 사례는 다반사였다. 여야 정당들도 대형 이슈와 관련된 재판이나 각종 의혹에 휩싸였던 자기 당 인사들이 유리한 판결을 받으면 "사필귀정"이라고 환영했고, 불리하면 법원을 향해 "사법살인"이라고 맹비난하곤 했다.

그렇게 보면 새로울 것 없는 현상인데도 왜 보수진영 전반이 법원과 판사 옥죄기에 총동원된 것일까? 정말 보수진영의 주장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좌경화됐던 사법부가 이제와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일까?

"검찰의 우경화로 인한 착시현상"

▲ 신영철 대법관 파동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을 엄호하던 보수진영이 이제는 그를 '노무현의 대못'으로 지칭하고 있다ⓒ대법원
서강대 법학대학원 임지봉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임 교수는 "그 쪽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편향된 판결일 수도 있겠지만, <PD수첩> 사건의 경우 기소 단계에서부터 무죄가 예견됐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법원 판사들의 성향이 갑자기 바뀌었겠냐"고 반문하면서 "군사 정권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법원은 지난 정권 때나 현 정권 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보수진영이 타깃을 삼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문제일까? 이른바 법원의 '반항아'로 불리는 형사단독판사들로부터 질타를 받은 신영철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대법관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노무현의 대못'이라는 이 대법원장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임 교수의 원인 분석은 오히려 간명하다. 검찰의 우경화로 인한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PD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정연주 전 KBS사장 사건,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사건 모두 기소 자체가 무리했다"면서 "무리하게 기소가 되고 재판이 열리니 재판에서 줄줄이 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요컨대, 검찰이 권력의 입맛에 맞도록 우편향된데다 무리한 기소를 남발해 재판이 열리니 법원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도 판결이 좌편향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5%도 안 되는 우리법연구회가 법원을 좌지우지한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자신들의 '착시'를 부정하기 위한 근거로 '우리법연구회'라는 모임을 법원 내 '좌파조직'의 '실체'로 부각시킨다.

판사 출신인 이주영 의원은 우리법연구회에 대해 "개인숭배라고도 볼 수 있는 이념지향의 단체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사법부 내에 이슈가 발생할 때는 암암리에 단체 회원들이 지향점을 가지고 세력화해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법연구회가 '암약'하면서 법원을 좌지우지 할만한 조직일까? <월간조선>이 지난해 9월호에서 이미 회원 명단을 공개했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부장판사도 지난 해 11월 법원전자게시판에 글을 올려 "논문집 6집을 발간하면서 논문집 끝에 첨부하는 방법으로 회원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트넷(법원 내부 전자게시판)에 학회등록도 된 우리법연구회는 공개세미나를 연 적도 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 판사 129명 명단과 활동이 만천하에 알려진 마당에 '암약'이라는 표현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우리법연구회가 "세력화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과장됐다. 2500명 가량인 전체 판사 중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는 5% 남짓이다. 서울 소재 지법의 현직 판사는 '세력화' 공세에 "말도 안 되는 마녀사냥이다"고 코웃음을 쳤다.

우리법연구회 멤버가 아닌 이 판사는 "판사들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인지 잘 아는 법조기자,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이 '우리법연구회가 재판을 다 조종한다'고 주장하는 꼴이 가관"이라고 말했다.

또한 강금실 전 법무장관, 박시환 대법관 등을 찍어 보수언론들이 우리법연구회를 출세 코스인 듯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군대로 치면 별이나 마찬가지인 고법 부장판사에 발탁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오히려 또 다른 판사들의 공부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멤버들의 고위직 진출 비율이 높은 편이다.

'운동권 판사'들이 문제?

16일자 <조선일보>는 법원 '좌편향'의 근거로 "법조계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법조인 선발인원이 늘어나면서 판사들이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면서 "이른바 '운동권'들이 대거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검사에 임용됐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운동권 일각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은 있으나 이는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소비에트 몰락과 더불어 김문수 경기도 지사,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등이 '전향'하던 시점에 많은 운동권 출신들이 시민단체, 대기업, 사법고시, 한의대 등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하지만 이는 1990년대 후반 사법고시 정원 확대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고, 설령 정원확대에 비례해 '과거 운동권'들이 수가 늘어났을지언정 목적의식적인 법조계 진출과는 더더욱 무관하다 지적이 지배적이다.

또한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 판결 한 이동연 판사, <PD수첩> 제작진에 무죄를 판결한 문성관 판사 등은 전형적 형사단독판사의 경력을 갖춘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40대 초반으로 임용된 지 10년 가량 됐다. 문 판사의 경우 1997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해 그 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2000년 판사로 임용됐다. '운동' 할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조선일보 주장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 판사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라면서 "그 때가 바로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진 시점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운동권 출신이, 청소부 아들이 판검사에 임용이 됐네 하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있었지만 근 10년간 그런 기사 본 적 있느냐"면서 "운동권 여부를 떠나 없는 집 자식들은 사시 합격하기도 어렵고, 합격하더라도 연수원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 판사로 임용되기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의 지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 해 10월 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임용된 판사 중 171명이 특목고 출신이고 이 가운데 대원외고 출신이 64명이다. 배출 인원으로 보면 대원외고는 현직 법조인 순위 2위, 판사 순위 1위다. 우리법연구회나 경기고 출신보다 대원외고 출신 판사가 사실상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주름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특목고와 강남3구 출신 신규 임용 판사 비율은 점증해 지난해에는 40%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8학군 출신'으로 판사들이 '동질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법원 내에서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법연구회'가 법원을 좌지우지하고 있고, '90년대 후반부터 대거 진입한 운동권 판사'들이 앞장서 '좌편향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주장은 법원의 보수화를 강제하려는 빌미에 불과하다. 왜곡된 근거와 분석을 들이대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마녀사냥'의 전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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