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주요 국가들은 신기후체제에 대비한 에너지·기후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5월 대선이 임박한 한국에서도 주요 대선 후보들이 '탈핵'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약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기후 정책의 전체적인 방향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신기후체제에서의 한국 차기 정부의 기후 변화, 탈핵, 지역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분권, 정의로운 전환, 동아시아 에너지 협력 등 에너지·기후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비전과 정책 제언 방향을 5차례에 걸쳐 기획기사로 연재한다.
한국의 에너지·기후정책은 이명박 정부에서 2010년 제정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근거로 해 각 분야에서 마련된 다양한 에너지·기후정책 관련 계획들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창조경제' 핵심 분야의 하나로, 새로운 가치와 시장을 창출하는 기회로 인식하고 국정 과제로 추진했다. 대통령 직속이던 녹색성장위원회가 국무총리실 산하로 격하되면서 유명무실해졌고, 각 정부 부처에서는 '녹색'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창조'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최상위법으로 군림하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라는 체계를 바꾸지는 못했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철학으로 추진됐던 지속가능발전이 이명박 정부 들어 녹색성장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지속가능발전법'은 '기본법'의 지위를 상실했고,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환경부 장관 산하 위원회로 격하됐다. 녹색성장으로 격하됐던 지속가능발전법을 기본법으로 복원하고, 환경부 산하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박근혜 정부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상위 개념 하에서의 에너지·기후정책이 어떻게 구현될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근거로 녹색성장 국가 전략을 효율적·체계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5년마다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2014년 제2차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을 마련했다.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과 에너지 기본계획, 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 등 에너지·기후정책 관련 부문별 핵심 계획들은 녹색성장과 관련된 분야별 계획으로 수립된다.
정부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2014년에,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2015년에 마련했고, 제2차 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을 2016년에 수립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2016년 12월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과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기본 로드맵을 마련했고, '2050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을 수립해 나갈 계획이다. 2013년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2015년에 전국 단위의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법적·제도적 체계를 마련했다.
<그림> 국가녹색성장의 계획체계
2015년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및 핵심기술 개발전략 이행 계획을 발표했고, 수요자원 거래시장,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에너지 자립섬, 전기자동차, 발전소 온배수열 활용, 태양광 대여, 제로에너지빌딩, 친환경에너지타운을 '에너지 신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2016년 6월에는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범부처 총력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무조정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소관분야는 각 부처에 책임을 두는 관장부처 책임제를 도입했다.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주요 정당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에너지·기후변화 법체계와 정부조직 개편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원전 수명 연장 불가 입장으로 일정 부분 '탈핵'에 동의했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문제를 야기하는 석탄화력 축소 경향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생산량 목표를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표> 참조).
차기 정부에서 탈핵·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가 실현되려면 이를 위한 조직과 예산,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폐기 및 대대적인 개편이 수반되어야 하고, 산업부와 환경부를 포함한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행정 부처 개편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또한 '에너지기후부' 혹은 '기후에너지부'로 통칭되는 있는 정부 조직 신설이 현실화될 것인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로 남아있다. 주요 정당들이 대선 이후에도 공감대를 이어가면서 국회에서 조직개편에 필요한 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킬 것인지를 주시해야 한다.
당장 임박한 시험대는 올해 말 수립예정인 '제8차 전력수급기본 계획'이 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하여 '전기사업법' 제25조 및 시행령 15조에 따라 2년마다 15년을 계획기간으로 전력수급기본 계획을 수립해 공고한다. 전력 계획의 주요 내용은 전력수급의 장기전망, 발전설비 및 주요 송변전설비 계획에 관한 사항, 전력 수요의 관리에 관한 사항 등이다. 이처럼 국가 전력수급의 전반을 다루는 만큼 전력 계획에 따라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원자력발전의 위험성 등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법 및 조직체계에서는 기후변화대응 기본 계획, 에너지 기본 계획과 같은 상위 계획이 바뀌지 않은 한 제8차 전력계획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에너지 계획 및 연관 계획들 간의 부정합성 문제가 거론된 지 수년이 흘렀지만 한 번 짜인 체계 안에서 이제 겨우 계획들 간에 조정이 시작된 것이 현실이다. 법체계와 조직이 개편된다는 전제라면, 차기 정부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재설정을 포함한 기후변화와 에너지계획이 통합되는 최상위 계획을 먼저 마련하고, 이에 따른 하위 및 연관 계획들을 수립 및 정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탈핵·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를 담은 로드맵이 마련되면, 이를 위한 구체적인 예산과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 핵연료세 도입과 석탄화력 과세 강화를 포함하는 에너지세제 및 요금제도 개편,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하는 법안 마련,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FIT(Feed-In-Tariff, 발전차액지원제도) 제도 도입 등은 정의당을 포함한 주요 정당들이 공약으로 제시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제도를 추진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관련 정부 부처 및 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추진 의지가 차기 정부에 있느냐가 관건이다. 촛불시민이 만들어 준 대선이니만큼 차기 정부가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에너지·기후정책의 적폐를 말끔히 척결해주기를 기대한다.
<표> 대선 후보 정당별 에너지기후정책 공약 비교
(자료: 지난 12일 19대 대선후보, 정당 초청 토론회 '기후변화 에너지정책을 묻다'의 내용을 바탕으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김남영 상임연구원이 작성함. 자유한국당은 토론회에 불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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