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미수습자 유해 발굴 등을 위한 본격적인 선실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비극의 세월호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세월호 침몰 원인과 대통령의 7시간 등 구조대응 부실의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 해상 교통사고가 아니다. 희생자 숫자의 규모 문제도 결코 아니다. 세월호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해난 사고도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숨진 사람은 세월호 참사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더 애틋하게 여기고 자괴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앞서 언급한 대통령의 무관심과 숨겨진 7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세월호 참사를 역사 속에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시급하다. 역사의 기록을 미완성으로, 추측으로만 남겨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왜 침몰했는지, 살려달라고 외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최상의 정보를 신속하게 보고받는 위치에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대통령이 왜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알아내야 한다.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세월호 참사 직후 한때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도 했었다. 그동안 이런 말은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박근혜 정권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월호 문제가 정치·사회 의제가 되는 것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불통으로 일관했던 정권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지만 그동안 국민의 몸과 마음 또한 철저하게 문드러졌다.
5월 대선, 생명존중·안전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며칠 후면 3주기가 되는 세월호 참사를 맞는 국민 대다수의 마음은 3년 전과 한결 같다. 우리 사회는 그 마음을 떠받들어야 한다. 그래야 세월호 영령들과 유가족들이 그토록 바라는 생명존중사회, 안전사회를 만들 수 있다.
최근 한 언론사가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이 63.4%이고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여기는 사람은 20.5%에 불과했다. 또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의 안전은 변화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71.3%이고 14.9%는 오히려 악화했다고 밝혔다. 개선되거나 매우 개선됐다고 본 사람은 10.7%에 그쳤다.
또 책임자 처벌도 72.3%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으며 19%만이 처벌이 이루어지거나 매우 잘 이루어졌다고 했다. 인양한 세월호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절반을 훌쩍 넘었으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재가동과 특검 도입도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원했다.
정치가 다수 국민의 뜻을 받들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아픔을 달래주는 것이라면 새로 탄생할 대통령과 정권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세월호 대책이나 안전 관련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또 이러한 내용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이를 가장 잘 실천할 의지와 역량, 품성을 지닌 후보와 정당에 한 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새 정부, 세월호 특검 도입하고 특조위 재가동 해야
이번 대선을 흔히들 장미대선이라고들 한다. 이런 이름으로 이번 대선을 규정하는 것을 나는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빠트린, 개념 없는 이름이다. '계절이 뭐 그리 중헌디!'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이번 대선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다면 촛불대선이란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국민이 엄동설한에 든 촛불 때문에 치러지는 대선이기 때문이다. 장미대선, 벚꽃대선 등의 이름은 촛불 정신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안전과 생명존중의 중요성을 일깨운 상징이다. 재난·위기관리와 대응 부실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살아 있는 표본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선체 보존, 원인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검 도입은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 곧바로 해야 할 의무가 될 것이다.
책임자 처벌,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더라도 이승을 떠난 생명은 결코 돌아올 수 없기에 완벽한 넋 달래기, 즉 진혼(鎭魂)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망자의 넋을 달래는 일들은 이 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유가족을 비롯한 우리 자신들을 위한 행위들인 셈이다.
원인 규명을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책임자를 확실하게 처벌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제도와 안전 조직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업보는 고스란히 오늘의 우리와 내일의 후손들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3년 전에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현재요 미래라고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안전과 생명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가치
세월호 영령들은 부끄러운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상명령과 과제를 던진다. 생명은 인권이다. 안전은 생명이다. 생명은 사랑이다. 안전은 관심이다.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곧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작이다. 안전과 생명은 돈으로 바꿀 수 없다.
기업 경쟁력,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온 생명 경시, 안전 무시와 같은 나쁜 전통과 가치가 더는 대한민국에서 통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분명한 외침으로 일깨운 교훈이자 내려치는 죽비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부패 구조의 고리를 끊어야, 박정희 시절, 아니 그 이전 이승만 시절과 일제 때부터 쌓여온 온갖 적폐를 쓸어버리고 적폐 세력의 사고방식을 확 바꾸어야 모두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안전과 생명은 조용하게 가만히 있으면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란 국가적 재앙을 겪고서야 가슴 치며 깨닫고 반성했다. 좋은 지도자와 더불어 제대로 된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 되어야 당신과 당신 가족의 현재 그리고 미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로부터 23일 뒤 촛불의 정신을 실현하는 대선이 있다. 5월 9일 치르는 이번 대선은 촛불의 정신을 확인하고 드높이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가슴 졸이며 방송을 보는 선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날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추모의 대선이어야 한다. 또한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완전히 새로운 안전 사회를 향한 첫발을 떼는 대선이어야 한다. 당신의 안전과 생명은 두 눈 부릅뜨고 깨어 있는 시민의 행동, 즉 제대로 된 한 표를 행사할 때만 지켜낼 수 있다. 기표소에서 세월호 영령들을 생각하며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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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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