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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유연성'이 '주한미군 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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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유연성'이 '주한미군 철수'다

[기고] 놀라울 것 하나 없는 샤프 사령관 발언

1.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주한미군을 한국 밖으로 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양국군의 합동 해외배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새로운 발언은 아니다. 이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고,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의 발언도 있었다. 미국측 입장은 일관된다. 한국측 입장도 일관되어야 한다. 한미간에 합의가 있었고, 그 합의가 수 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호들갑이다. 마치 주한미군이 당장에라도 철수하는 것처럼 난리가 났다. 도대체 왜 그럴까. 정답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무지다. 도대체 언론들과 관계 학자들은 지금까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 월터 샤프 사령관을 비롯한 주한미군 수뇌부ⓒ주한미군

2.

2006년 1월 21일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간 합의가 있었다. 고위급전략대화의 형식을 빌어서였다. 곧바로 나는 이 문제를 주권자인 시민에게 직접 얘기하고 나섰다. 참여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폭로'였다. 나는 시민의 알권리라 생각했다. 당시 외교안보 책임자는 조선일보를 빌어 나를 '강경반미자주파'로 비난했다. 당시 조선일보 사설은 참여정부에 참 관대했다. "전략적 유연성 거부하면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서 받아준 것이다." 이렇게 평가했다. 그로부터 거의 4년이 지나갔다. 이제야 놀라는 척하는 언론이 우습다.

당시 나의 논리는 간단했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사실상 주한미군의 철수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에 해당된다. 따라서 국회의 동의를 거쳐라, 공론화해라'였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지금까지의 주한미군은 대북억지력이었는데, 이제는 동북아신속기동군, 혹은 전세계적기동군에 해당되고 앞으로 한국군과 미국군은 물자와 장비의 공동사용을 넘어 궁극적으로 공동 참전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나는 여당 국회의원이었다. 한미동맹 문제는 늘 그렇듯 가장 민감하고 가장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참여정부가 합의하고, 이 정부에 의해 강화됐다. 한미FTA와 똑같은 구조다.

3.

당시 NSC에서 한미동맹관련 실무를 담당했던 관계자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지난 봄 계간지 「역사평론」에 재미있는 논문을 실었다. 원문을 꼼꼼히 읽다보면, 감추려해도 감출 수 없는, 특히 작계 5029문제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당시 외교안보팀이 얼마나 무능했고 얼마나 문민통제에 실패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논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국쪽으로부터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협상요구가 있었다. 협상을 시작한 결과 주한미군이 사실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자 당시 국방부는 더 이상 논의하려 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지시를 사실상 거부하고, 그간 한미 간 군사동맹채널이 돼왔던 국방부 정책실이 빠져버린 것이다. 협상 주체는 결국 외교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당시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한미간 전략대화 형식을 통해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엄청난 진실을 당시 핵심관계자는 논문 각주에다 "미 국방부 복수의 전직 고위 관리들과의 인터뷰"라고 형식으로 도망갔다. 이렇게라도 해서 진실은 알리되 정보소스는 빠져나갔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이것이 당시 참여정부 외교안보팀의 실상이요, 현실이었다. 그러니 대국민을 향한 홍보나 이해나 공중외교가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게 비밀이었고, 모든 게 은폐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나 시민들이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혼란과 소모는 결국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합의하고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전 정부의 책임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솔직한 언명이다.

4.

2006년 1월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중앙일보는 1월 22일자에서 한미간 공동성명을 번역해 실으면서 '전략적 유연성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미국은 주한미군이 한국인들의 의지에 반해서 동북아 지역 갈등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적었다.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 약간 달랐다. 22일자에서 '주한미군이'라는 부분은 빼고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라고 번역했다. 청와대가 발표한 내용은 "전략적 유연성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였다. 영어 원문으로는 'it shall not be' 부분이었다. 그런데 'it'에 대한 해석이 청와대 다르고, 조선일보 다르고, 중앙일보 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냥 넘어갔다. 한미동맹 문제였으니까. 이것을 건드리는 일은 친미아니면 반미라는 이분법 밖에 없었으니까.

지난 6월 16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다.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이 발표됐다. 한미동맹은 전략동맹으로 승격됐다. 전략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최고위급 동맹관계로 재탄생한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이 재확인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 동맹재조정을 위한 양측의 계획을 진행해 나감에 있어, 대한민국은 동맹에 입각한 한국방위에 있어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은 한반도와 역내 및 그 외 지역에 주둔하는 지속적이고 역량을 갖춘 군사력으로 이를 지원하게 될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전략적 유연성이다. 언론들은 대충 넘어갔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만 이 부분을 해설한 바 있다.

그리고 10월 한미 SCM에 다녀간 멀린 합참의장이 다시 한 번 이 부분을 확인했다. 지난 10월 22일 미국 '성조지'가 이를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주한미군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확인했다. 왜냐고. 한미간 합의가 있었으니까. 지난 정부와도 합의가 있었고, 이 정부와도 합의가 있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5.

전략적 유연성의 초기단계는 주한미군의 유연성이다. 신속기동성이다. 오로지 대북억지를 향해 붙박이로 주한미군을 운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용산에서 새롭게 이전할 평택 기지를 최첨단기지로 강화한다. 그런 다음 그 곳을 주둔지 삼아 수시로 전략적 유연성, 즉 전략적 입출입을 강화하는 것이다. 맘껏 자유롭게 기동하고 운용하는 것이다. 물자와 장비를 수시로 입출입하고, 필요하면 한국군 장비를 공동사용한다.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상호간 전략동맹의 성격을 확인하고, 함께 전략적으로 주둔하고 기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운용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최종판이다. 물론 거기까지 가기에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들이 충족될 필요는 있다.

전제조건을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 관계자들이 늘 강조하는 바와 같이 주한미군의 근무여건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들과 장기간 한국에 주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평택기지 이전이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전략기지의 성격에 맞게 기지가 완공되어야 하고 주변 여건도 정비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간 평화체제 등을 비롯한 전후체제의 청산이 마련되어야 한다. 종전선언이 있어야하고, 9.19 공동성명에 따른 남북한 평화체제 논의가 마련되는 등 남북간 긴장국면이 확실하게 완화되어야 한다. 장비와 물자의 공동이용 등에 대한 한국인의 우려가 없어야 한다.

특히 주한미군의 잦은 입출에 따른 안보불안이 사라져야 한다. 한국군과의 공동 운용을 위한 한국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전작권 환수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주변국 사태에 개입할지도 모른다는 동북아 인근 국가들의 염려 또한 관리되어야 한다. 이런 전제조건들이 정비되고 나면 한국군과 미국군간의 전략적 동맹관계는 완벽하게 강화되고, 전략적 유연성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

2010년에는 오바마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4개년 국방계획(QDR)이 발표되게 된다. 현재 미국쪽 국방관련 연구소들의 주된 관심은 역시 이쪽에 있다. 나 역시도 이 부분이 어떻게 정리되어 나올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어쩌면 전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전략적 유연성은 좀 더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논의의 흐름들을 종합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QDR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네 개의 P전략: 우세(prevail), 예방(prevent), 준비(prepare), 보존(preserve)'을 핵심전략으로 거론한다. 지금까지의 전략을 '기계적 균형'으로 평가하는 듯 하다.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종래 미국의 군사전략은 흔히들 '1-4-2-1'전략으로 얘기돼 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재정 교수의 훌륭한 설명들이 있어왔다.

부연하자면, '1은 미국 본토에서의 완전한 승리, 4는 4개 지역에서의 전진 억제, 2는 2개 지역전장에서의 신속한 승리, 1은 1개 전장에서의 결정적 승리'다. 2005년 5월 이래 부시 행정부의 전략개념이다. 이 중 2가 이라크와 북한을 예정했다. 이 전략을 평가한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자료를 해석하자면, 지금까지는 2개 주요 전장에 거의 반반으로 비슷한 군부대를 보내자는 기계적 균형전략이었는데, 앞으로는 이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전쟁은 고도 기술, 반란단체, 불규칙 공격, 일종의 비정규전, 불확실전쟁 등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2의 균형전략이 좀 더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전장을 만족시키려면 "모든 가능한 전쟁"을 다루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은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에 따라 주한미군 기지의 재배치, 재조정, 한미간 전작권 행사 등 병력운용 행태는 급속도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정부나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이 보다 더한 정보를 바탕으로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혼선을 이해시킬 의무가 있다. 그리고 안정시킬 의무가 있다.

7.

지난 10월 한미 SCM 회의에 참석한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한국군의 독자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미군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세계무대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월터 샤프 미 8군 사령관의 발언도 유사한 맥락이다. 전략동맹은 포괄적 동맹이고, 전략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이 인정되고 주한미군의 신속성과 기동성이 강화된다면 이 주체성 속에 한미연합전력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신호다. 비전은 세계평화에 대한 기여다. 한국의 국격에 걸맞는 군사적 기여다. 형식은 한국군의 독자성이겠지만, 숨어있는 이론적 기반은 전략적 유연성이다. 전략적 유연성의 강화 혹은 최종지점은 한미연합 전력의 공동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전출입이라는 말에서 표현했듯 나갈 때가 있으면 들어올 때도 있다. 한국이 다시 한 번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역시 전략적 유연성 이론에 따라 전력은 확실하게 투입될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방어의 틀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투입이 가능한 것이고, 이는 한미간 방위조약 차원이 아닌,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는 장점일 수도 있다. 이런 장단점을 시민은 알 필요가 있다.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참여정부 관계자의 논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와 해외주둔 미군이 한반도에 신속히 전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설명이 보수 진영에게는 주효했다"고 했다. 미군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군이 들어오기 위해서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필요하다고 보수세력을 설득했더니 받아들여버렸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일까. 지난 10월 한미 SCM 공동성명도 주한미군이 '나가는 것'은 언급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만 언급하고 있다. 다만 전략적 유연성이란 말은 사용했다. 나가면 들어오는 것이고, 들어오면 나가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이다. 그러면 결국 균형아니냐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균형이라면 용산기지 이전 비용문제나 한미 방위비 분담 협정 문제를 어떻게 할지를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 또한 일관되게 제기해왔음에도 늘 그렇듯 무반응이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2006년 1월 21일 한미간에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있었고, 2009년 6월 16일 한미간에 전략동맹의 합의가 있었다. 한미동맹의 공동비전에 합의했다. 그 합의는 대표성을 가진 합의였고, 합의한 이상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토론이 없었고, 공론화가 없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이해가 부족했다. 어쩌면 이해가 없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분명한 변경임에도 국민의 동의가 없었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이해가 협소했다. 물자와 장비의 공동사용을 넘어 기지와 시설과 구역의 공동사용, 나아가 전력의 합동운용까지도 포함될 수 있음을 설명하는데 게을리 했다. 따지자면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반기문 당시 외교부장관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해석도 달랐다. 합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까지도 있었다. 그것이 외교안보의 전 주소고, 현 주소다.

미측관계자의 이런 발언에 대해 더 이상 놀랄 이유도 없고 흥분할 이유도 없다.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한 이상, 주한미군은 전출입의 자유를 획득했다.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다. 주한미군에게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모든 담보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리의 해야할 일이다. 한미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우리의 주도권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궁구해야 한다. 급변하고 있는 미일관계, 미중관계 등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변화에 대해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미일동맹의 껄끄러움에 대해 우리가 불편해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미일동맹만큼이나 한미동맹은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있다. 정신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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