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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로 믿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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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로 믿지 못하는가?

[신지예 칼럼] 신뢰와 맹신 사이

한국 녹색당은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활동하는 세계 녹색당(글로벌 그린즈)의 정식 멤버이다. 세계 녹색당은 5년에 한 번씩 정기 총회를 가진다. 얼마 전 영국 리버풀에서 그 총회가 열렸다. 한국 녹색당에서는 나를 포함한 십 여명이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큰맘 먹고 가는 유럽이라 영국만 가는 것이 아쉬워 짬을 내 생태 도시로 유명한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했다.

독일에 도착해서 처음 접한 한국 소식은 세월호 인양이었다.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 날씨, 해류, 기술 문제 같은 여러 이유로 인양을 미뤘지만 결국 박근혜 정부의 의지 부재라는 것이 드러났다. 세월호의 이곳저곳 구멍 뚫리고 녹슨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지난한 시간이 남았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정확한 이유를 밝히기에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애당초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집단에 대한 신뢰가 지난 두 정권을 거치며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프라이부르크를 돌아보게 되었다.

신뢰 사회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에는 22만 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80년대부터 환경보호국을 설치하는 등 독일 내에서도 급진적인 환경정책을 펼쳐온 도시다. 에너지 소비와 생산, 교통, 쓰레기 처리 정책이 특히 남다르다. 요즘 이곳에는 커뮤니티 가드닝이 유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대학 앞이나 공원, 광장에 지역 단체와 주민이 함께 모여 텃밭을 만드는 것이다. 주민이라면 누구나 경작에 참여할 수 있고 수확물을 거둬갈 수 있다. 텃밭 주변에는 작은 울타리 하나 없다. 텃밭을 구분 짓는 그 흔한 이름표도 없다. 내가 가꾼 것은 나만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지역 곳곳에는 음식 나눔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내가 방문한 곳은 어떤 공동 주택의 지하실이었다. 그곳은 모두에게 열려있어 누구나 찾아와 음식을 가져갈 수 있었다. 전반적인 관리는 자원 활동가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이들이 지역 빵집과 소매점을 돌며 기부 받은 식재료를 정기적으로 가져다 놓는 방식이었다. 공동 책장이나 지역 재활용 플랫폼, 커뮤니티 셀프 자전거 수리소 등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머릿속으로 한국 버전을 고민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에 커뮤니티 가드닝이 만들어지면 누군가 모두 뽑아갈 것 같고, 푸드 쉐어링이나 물품은 누군가 다 가져갈 것 같았다. 이 도시에서 지역 커뮤니티 사업이 잘 진행되는 요인은 세세하고 정교한 복지체제, 안정적인 사회 안전망, 적정 노동시간에서 시작된 삶의 여유, 전통적 독일 문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회에 대한 신뢰, 상대방에 대한 신뢰, 나에 대한 신뢰가 없이 작동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국의 바닥난 사회 자본

신뢰는 일종의 사회 자본으로 읽히며 개인 삶의 질과 상호 관련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뢰 사회는 저 신뢰사회에 비해 범죄율이 낮고, 지니 계수도 낮으며, 사법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돌아간다.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신뢰도가 10% 상승할 때 경제성장률이 0.8% 상승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신뢰 사회를 국가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OECD의 '2016 한눈에 보는 사회상' (Society at a Glance) 조사에 따르면 국가 내 사회 신뢰 부분에서 독일은 상위를 차지한다. OECD 35개국 중 타인을 신뢰하는 항목에서 상위 10위, 정부에 대한 신뢰와 대인관계에 대한 신뢰도는 5위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뒤에서 꼽는다. 타인 신뢰도는 23위, 정부 신뢰도는 29위, 사회관계는 28위다. 심지어 연령대별 구분 중 50대에서는 꼴찌를 기록했다. 정리하자면 한국은 믿을 사람이 없고, 정부도 못 믿겠고, 의지할 사람 없는 무(無)신뢰 사회인 것이다.


작년 한국 행정연구원에서 한 사회통합 실태 조사도 들여다보자. 가족에 대한 신뢰 인식은 4점 만점에 3.6점으로 가장 높았다. 지인(2.9점), 이웃(2.6점)에도 비교적 높은 신뢰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국회에 대한 신뢰 인식은 4점 만점에 1.7점으로 가장 낮았고 중앙정부부처(2.0점), 검찰(2.0점), 법원(2.1점)도 비슷한 수준이다. 내 사람까지는 믿을 수 있는데 사회를 특히 공공기관을 믿을 수 없다는 정서다. 충격적인 건 앞의 두 보고는 최순실 태블릿이 공개되기 전 데이터라는 것이다. 지금 조사하면 결과는 더 나쁠 것이다.

신뢰는 불신에서 시작한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다양한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양산됐다. 천안함 침몰 사건 때도 그랬고, 최근에는 김 일병 난사 사건 역시 북한 관련설이 올라왔다. 이렇게 쉼 없이 음모론이 소비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신뢰 부재가 한몫한다. 내부에 견제와 균형도 없고, 빈약하지만 그나마 존재하는 감시 제도 또한 삐걱거리는 것을 국민이 몸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고리 삼인방이라는 조악한 이름의 집단이 한국 정·재계를 쥐락펴락 할 수 있었던 상황은 불행히도 막연한 예감을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모두가 모두를 믿을 수 없을 때 각자의 삶은 사익 절대 우선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힘없는 계층에게 먼저 도착한다. 그렇다면 신뢰가 바닥난 지금, 한국 사회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부터 호혜와 우정의 정신을 가지면 될까? 마을공동체를 활성화 시키면 될까?


인류 사회는 발전해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안전한 삶을 보장받고, 서로 협력하도록 국가 내 여러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민주주의다. 몇몇 독재자가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 것을 겪은 뒤 권력자가 독단적인 결정을 할 수 없도록 권력을 분배시켰다. 국민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고 또한 입법, 사법, 행정부를 나눠 서로 견제케 하여 균형감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선의와 절제력을 가진 권력자가 옳은 통치를 할 것이라는 신뢰 자체를 삭제한 것이다. 헌법 또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 헌법은 우리가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를 나열하고 그에 어긋날 때의 벌을 적은 것이라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법률 위배가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 가정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대 다중 사회의 신뢰는 '불신을 기반으로 한 제도'가 탄탄할 때 비로소 생긴다.

맹신을 뛰어넘어


때문에 우리 사회가 빈약한 제도의 허점을 뛰어넘을 영웅의 등장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떠올려보자. 문재인 후보의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에 박근혜 후보가 엉뚱한 대답을 했던 이야기는 크게 회자되었으나 '팩트체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저렇게 확신이 있으니 어떻게든 하겠지' 혹은 '박정희 딸이니 자기 아비 닮아서 잘하겠지' 라며 맹신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 대선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 걱정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서로 '적폐 후보', '무능력 상속자'라고 비판하며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두 후보 모두 본인을 중심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본인이 한국 사회가 바꿀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바뀌지도 않고, 설사 개선된다 할지라도 너무 쉽게 되돌아간다는 것을 그동안의 정부를 통해 경험했다.


이제 대표자 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권력끼리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전반적인 재편을 고민해야 한다. 끊임없이 문제 제기되는 제왕적인 대통령 권한 문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 제도, 개헌과 같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중요 문제들은 커다랗지만, 반드시 풀어야할 과업이다. 이번 선거 후보들이 서로 별명 붙여줄 때가 아니다. 과업을 들어내고 시민들이 꼼꼼히 따지며 검증할 수 있도록 정책 대결을 해야 한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선생은 한국을 선진국이 아니라 선망국이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먼저 망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피하고자 "제대로 의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공공의 가치를 중심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시민적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오늘의 문제를 딛고 나은 사회로 갈 것인가, 제자리걸음 혹은 후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많다. 이 또한 맹신 같지만 나는 세월호가 조금씩 뭍으로 올라왔던 것처럼 한국 사회도 조금씩 나아갈 거라 믿는다. 민중을 구원하는 것은 영웅이 아닌 민중 자신이란 것을 촛불 시민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를 함께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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