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후보가 자신의 선거공보물에 경쟁 후보의 기호와 소속 정당명을 잘못 기재해 유권자들에게 발송하면 어떻게 될까?
얼핏 생각하기에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상대 후보의 중요한 선거정보를 고의이든 실수이든 허위로 표시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책임 소재는 공보물을 낸 후보자에게 있다. 그렇다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후보자는 1차적 책임이 있고, 선관위도 2차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론은 어떻게 될까. 답은 선관위 마음에 달렸다. 선관위가 처벌 수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선거판세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황당한 일이 김해에서 벌어졌다. 김해시선관위는 해당 후보자에게 가장 낮은 수위의 ‘공명선거협조요청’을 했고, 해당 공보물을 인쇄한 인쇄소 측에는 구두로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기초의원인 시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김해시 가선거구(북부동, 생림면, 상동면)에는 후보자가 3명이다.
기호1번 더불어민주당 하성자 후보와 기호2번 자유한국당 박좌현 후보, 그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기호6번 신영욱 후보가 오는 4월 12일 지역민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발송된 김해시선거관리위원회 명의의 김해시의회의원보궐선거 투표안내문·선거공보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박좌현 후보는 자신의 선거공보물을 내면서 맨 뒷장에 세 후보의 번호와 함께 정당 표시를 한 뒤 자신의 기호 뒷칸에 소속 정당명과 이름, 투표 도장 표시를 해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기호6번 표시 뒤 소속 정당 표시를 ‘무소속’이 아닌 ‘정의당’으로 기재해 유권자들에게 배포되도록 했다. 즉, 유권자들이 무소속 신영욱 후보를 정의당 후보로 오인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발송된 ‘오류 선거공보물’은 북부동 2만9,815부와 생림면 2,261부, 상동면 1,759부 등 총 3만3,775부이다. 가구별로 발송된 것이지만 가선거구 전체 유권자 수를 감안하면 2명당 1명꼴로 ‘오류 선거공보물’이 전달된 셈이다.
시선관위 측은 6일 “며칠 전 한 유권자가 전화를 걸어 오류를 지적해줘서 알게 됐다”고 밝혔다. 즉, 제보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오류 사실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선관위에 따르면 문제가 된 해당 선거공보물에 대한 사전 검토는 지난달 31일 진행됐다. 인쇄업소 측에서 시안을 가져왔고, 기호가 ‘1-가, 1-나, 1-가, 1-가’로 표시돼 있어서 무작위인 부분을 바르게 수정하라고 권고했다.
시선관위 측은 “이후 인쇄업자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해당 업소에 대해 구두경고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거공보물에 관한 최종 책임은 해당 후보에게 있다. 또 경쟁 후보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잘못 표기함으로써 초래될 수 있는 영향력도 선거과정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득이 되든 실이 되든, 그것 자체가 공정성을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선관위는 이와 관련해 공직선거법 제250조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하는지 내부 검토를 거쳤다.
시선관위 측은 “조사 결과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목적성이 있어야 법 적용이 가능한데,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시선관위는 선거공보물 관리의 부실에 관해서도 권한 규정을 들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
관계자는 “선관위에겐 선거공보물 사전 검열과 검토를 할 권한이 없다”며 “단지, 서비스 차원에서 사전에 지도를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행 공직선거법과 선거관리 규정에 따르면 ‘학력·경력·학위·상벌’에 관한 사항의 오류에만 이의신청이 가능하다”며 “선거공보물에 대한 사전 검열과 검토 권한이 없는 선관위로서는 사후에 법과 규정에 따라 위법사항이 있으면 사법처리를 의뢰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해명을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 유권자는 “선거공보물에 상대 후보에 관한 심각한 오류이자 허위사실을 표기한 것은 사실 아니냐”며 “그런데도 선관위가 이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가지지 않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이번 기초의원 보궐선거는 대선에 가려 선관위조차도 투표율을 걱정할 만큼 초미니 선거로 치러질 것이 뻔한데, 근소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경우 해당 선거공보물의 허위사실 표기가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며 “선관위는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유권자는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다”며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을 하락시켜 선거판세를 유리한 구도로 끌려고 하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경남도선관위는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별로 예방·단속반을 편성하고 공정선거지원단을 활용해 불법선거 단속에 들어갔다.
위장전입, 허위거소투표, 대리투표 등도 주요 단속 대상이다. 인터넷 등에 불법 게시물을 올리거나 비방·허위사실 공표, 특정지역 비하·모욕행위 등도 철저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보궐선거 투표일은 오는 4월 12일이며,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다. 또 사전투표는 4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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