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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너진 건, 노동유연성 받아들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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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너진 건, 노동유연성 받아들인 것"

노무현 제2 유고집 '진보의 미래-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유고집 '진보의 미래-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가 출간됐다.

앞서 출간된 '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성공과 좌절'이 서거 직전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 소회와 고통 등을 주로 다룬 반면, 이번 '진보의 미래'는 오롯이 '진보주의'에 대한 고인의 천착과 고민으로 채워졌다.

이 책에 나타난 노 전 대통령은 노동유연성 확대를 뼈아파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진보와 보수의 변별점으로 삼는 진보진영에 대해선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동으로 무너졌다"vs"정책수준의 선택으로 결론 날 일"

▲ '진보의 미래'표지ⓒ동녘출판사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다…노동의 유연성을,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인데…, 아웃소싱을 우리가 불법이라고 규정해서 잘라내지를 못하니까 정부의 칼이 현장에서 파업하는 사람들한테 겨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면서 노동 유연성 수용을 최대의 패착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신자유주의라고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다…시장이냐, 국가냐라든가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의 유연화 등과 같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정책수준의 선택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일들에 관해서는 '그것은 구체적인 타당성의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자', 이런 융통성 있는 태도로 가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유연성 확산에 문제가 있음을, 결국 이로 인한 양극화 심화가 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렸음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융통성 있는 태도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받아들이며 "신자유주의는 진보-보수를 가르는 기준으로 적합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혼란스러워 하는 대목은 이 책 여기저기에 엿보인다. 그는 "신자유주의 패키지 안에 있는 절반, 상당히 많은 패키지를 김대중과 노무현이 채택을 해버렸다.…90년대 초반에 김대중 대통령이든 나든 소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물결의 세례를 듬뿍 받으면서 지나왔어요. 거의 90년대에는. 그렇지만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해봐야 되겠죠"라고 말한다.

"법인세 방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검찰 수사 등 어찌 보면 개인적 이유로 자신을 '실패했다'고 이전 책에서 규정했던 노 전 대통령은 이 책에서도 "성공이 어쩌고 실패가 어쩌고 그런 얘기 하지도 말아라. 나는 그냥 불행한 대통령이다. 나는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다. 그러다 언론과 대중적 분위기 같은 거 눈치 살피려고 세금이나 깎아주고…"라고 말했다.

자의와 타의가 혼재 된 신자유주의 수용이 감세정책으로 나타난 데 대한 자괴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가 진보개혁 진영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사실 노 전 대통령도 '경제성장 7%'를 공약했고 법인세를 깎아줬다.

노 전 대통령은 그같은 현실의 또 다른 주요한 원인으로 관료주의를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관료들을 배제하곤 정부가 돌아가지 않아요. 관료들은 하나의 권력이죠…이제 법인세 감세했거든요? 관료들이 감세안을 가지고 와서 밀어붙였는데 청와대에서도 국회에서도 아무도 방어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관료들의 주장이 애초부터 일치했던지, 아니면 관료들의 주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내면화된 것인지 모를 대목도 보인다. 그는 "솔직히 출총제는 모르겠어요. 안 풀어줘도 재벌들이 이미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요…재벌 정책 몇 개 가지고 전체적으로 관료주의에 포획됐다 안 됐다 이런 건 별로 의미있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라는 것이 오늘날 주제가 안 돼있어요"라고 말했다
.

노무현이 풀지 못한 숙제, 여전히 남아있어

이 책에 나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동유연성 확산·양극화·법인세 감세와 복지 예산을 좀 더 확충하지 못했던 점, 즉 신자유주의적 정책 시행을 뼈저리게 후회하면서도 '신자유주의의 부분적 수용'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혼란은 이 책에선 "그런 고민들이 있습니다. 근데 지금 뭐 다른 방법도 없죠? 우리가 해야죠, 그죠? 우리가 풀자고"정도로 마무리 된다.


이는 '노무현의 적자'임을 자임하는 국민참여당(가칭)은 물론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 진영'과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비판했던 진보진영 모두에게 던진 숙제로 보인다.

한편 이전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부동산 정책, 노동 유연성 수용,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 노 전 대통령 임기 중 논란이 컸던 문제들에 대한 막전막후의 구체적인 회고는 잘 엿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문제들은 대체로 '진보와 보수', '신자유주의와 현실' 같은 식으로 추상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정책조정비서관을 지냈고 지금도 '진보주의 연구' 작업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성환 한국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은 "그런 아쉬운 점은 있을 수 있다"면서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 부동산 정책 등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기반한 반성은 해당 분야 참모들이 미래연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사실 노 전 대통령께선 퇴임 후 '벌써 내가 무슨 회고록이냐'면서 진보주의 연구 등 거시적 작업을 준비했었다. 시간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서 구체적 회고록은 뒤로 미뤄졌던 것"이라고 전했다.

'진보의 미래' 시리즈는 이번 책으로 끝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이정우 전 정책실장을 필두로한 전문가 연구위원회에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모은 2권 '노무현이 꿈꾼 나라(가제)'가 내년 1월 쯤에, 서거 후 각계 전문가들과 일반시민들의 토론이 종합된 '노무현과 진보, 그리고 우리(가제)가 내년 5월 서거 1주기 즈음에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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