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를 먹었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20일 청와대에 출입하고 있는 인터넷 매체 가운데 데일리안, 뷰스앤뉴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가나다 순) 등 4개 언론사에 대해 15일 동안의 출입정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난 6일 이명박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간담회와 10일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약속을 파기했다는 게 징계의 근거라고 합니다.(관련기사 : 李대통령 "김정일, 안 만나면 그만")
경위는 이렇습니다.
간담회에 앞서 청와대 측은 참석한 언론사 간부들에게 비보도를 요청했습니다. 이를 받아들인 언론사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비보도 약속이 상호 동의로 성립된 이상 그건 그 언론사들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프레시안>을 비롯한 인터넷 매체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우선 청와대는 간담회에 프레시안 등을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초청받고도 사정이 있어 참석 못한 것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또한 청와대가 사후에라도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을 브리핑해 알리고 양해를 구해 비보도 요청을 한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청와대와 프레시안 사이에는 '비보도 약속'이 성립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취재했습니다. 그랬더니 최근의 남북정상회담 추진 문제와 정치권의 최대 쟁점인 '세종시 논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이 나왔더군요. 매일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해 온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이 중요한 발언을 아무 이유 없이 보도하지 않는 것도 임무 방기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보도했습니다. 초청받지 못한 탓에 이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언정 별로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간담회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곧바로 청와대 관계자들로부터 '유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뒤이어 청와대 출입기자단도 이를 '비보도 파기'로 규정하고 징계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인터넷 언론사들이 해당 간담회 자리에 없었다고는 해도 '비보도 요청' 자체는 기자단의 일원으로서 준수해야 한다는 겁니다.
납득하기 어렵다고 항변했으나 별무소용이었습니다. 결국 간담회 내용을 보도한 해당 언론사들은 15일 동안의 출입정치 처분을 받는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보다 강력한 수준의 중징계를 요구했다는 등의 뒷말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인터넷 언론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 수준에 대해선 이제 나무라는 것도 지겹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청와대는 이같은 간담회 자리에 인터넷 매체의 참석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왔으니까요. 청와대는 그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었지만, 인터넷 언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이 깔려 있다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에 출입하고 있는 인터넷 기자단은 그 동안 여러 경로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 왔지만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관련기사 : "청와대, 인터넷 언론 '대못질' 중단하라") 따라서 이번 일도 인터넷과 불통하는 청와대의 소통방식이 빚은 사건인 겁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달라질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비보도와 엠바고의 남발, 최근 불거졌던 공보담당관제 논란 등 시간이 갈수록 언론을 대하는 청와대의 태도가 후진해 온 걸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굳이 초청하기 싫다면 부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취재의 권리'를 박탈한 언론사에 '비보도의 의무'를 강요하진 마세요. 그게 상식 아닙니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