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당시 현지에서 만난 하토야마 일본 총리에게 즉각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규명 등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일인가"라는 장탄식을 내놨다고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고개숙인 MB, 무릎꿇은 정운찬
이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에 부산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면서 "현지에서 하토야마 수상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위로했다. 무엇보다 원인을 철저하게 밝혀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 안전의식은 낮은 수준인것 같다. 국격에 맞춰 안전의식을 갖춰야 한다"면서 "이번 사고를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을 점검하고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안전수칙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선진화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이 나오기 전부터 정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5일 부산을 찾아 일본인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과 강희락 경찰청장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 지난 10월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방문한 정운찬 국무총리(왼쪽)는 양반다리로 앉아 입장을 발표했다. 부산화재와 관련해 일본인 유가족들을 향해 무릎을 꿇은 모습(오른쪽)과 대조적이다. ⓒ뉴시스 |
일견 당연한 일이다. 아직까지 사고 원인이 규명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소중한 인명 여럿이, 그것도 타국에서 희생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뒷수습에라도 팔을 걷고 나선 것을 굳이 문제삼을 일도 아니겠다.
하지만 뒷목을 잡아채는 기억이 있다. 바로 용산참사다. 부산화재와 용산참사는 물론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하지만 이유불문하고 희생된 인명 앞에 일단 사죄하고 무릎을 꿇는 이 정부 사람들의 '아름다운 상식'이 어떤 경우에나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차가운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친다.
이 대통령이나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는 아직 일언반구도 없다. 정 총리는 용산참사 발생 9개월 만인 지난 추석 때 비로소 유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와 유족들 간의 대화는 그 이후로도 지리멸렬이다. 정운찬의 '눈물'을 두고 단순한 '정치쇼'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부산화재는 달랐다. 이 대통령을 필두로 총리와 장관 등 고위인사들의 '자아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용산에선 볼 수 없었던 '무릎꿇은 총리'의 모습이 부산에선 하루 만에 연출됐다.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죄송스러워 하는 진정성도 충분히 느껴진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부산 화재 현장에 달려가 사태 하루 만에 일본인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은 지난 15일은 마침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꼭 300일 되는 날이었다. 이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에 따라 유족들도 조금은 덜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을 나날이었다.
일본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의 다만 한조각 만큼이라도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되돌리는 염치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바람인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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