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신분을 이용해 국정농단을 자행해 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수인번호를 부여받고 연두색 수의를 입게 됐다. 최순실 씨와 같은 옷이다.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검찰에 구속된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됐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판사는 증거 인멸 등의 우려가 있다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31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강 판사는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적용된 혐의는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 강요미수 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개, 1997년 영장심사제도가 생긴 이래 역대 최장시간인 8시간 40분동안 심사가 진행됐다.
검찰은 최장 20일간 수의를 입은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보강수사를 벌인다.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4월 17일 전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현재 검찰은 SK 등 다른 대기업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유일한 '예우'인 경호마저 박탈당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검찰의 유치시설에서 대기하다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4시 45분경 경기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자신의 40년 지기 최순실 씨 등이 수감된 곳이다. 최 씨와 '신입자' 박 전 대통령은 결국 '한솥밥'을 먹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즉시 수감 절차를 밟게 된다. 사진촬영, 지문채취, 수용자 번호지정 등 일반적 조치를 받는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요구를 무시하고, 명백한 측근들의 증언에도 수사 결과를 '사상누각'이라 조롱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집요한 수사 방해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 푼도 받은 게 없다", "검찰이 엮어도 너무 엮었다"고 강변했으나 법원은 결국 이 사건의 중대성을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40년 지기인 최순실 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돕는 대가로 삼성그룹으로부터 433억 원을 최씨, 미르재단 등에 지원받기로 약속하고 298억2535만 원을 실제로 주게 한 혐의를 받았다. 뇌물은 약속만 해도 성립되는 범죄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의 사실상 개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대기업에 강요하고, 최 씨에게 공무상 비밀 문건 등을 수차례 유출한 혐의도 받는다. 민간 기업 인사에 부당 개입하고, 문화예술인을 찍어내는 등 부당한 지시를 하고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에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파문도 있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피의자는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 공범 최순실과 피의자의 사익을 추구하려 했다"며 "국격을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음에도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관계까지 부인으로 일관하는 등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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