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비닐 움막 사는 가족 임대아파트 얻도록 ‘목숨 건’ 단식투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비닐 움막 사는 가족 임대아파트 얻도록 ‘목숨 건’ 단식투쟁

[홍춘봉의 광부아리랑] ㉜ 27년간 ‘광부간첩’ 올가미 쓴 이병규씨

대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자 이씨는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 한동안 한숨을 푹푹 쉬며 처자 식과 가까운 친척 걱정을 하며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또 자신이 장성광업소 소요사태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광업소 일부 동료들이 법정에서 위증을 한 탓에 소요 주모자로 몰려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에 울분을 참지 못하며 복수를 결심하기도 했다.

▲이병규씨가 교도소에서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프레시안(홍춘봉)

“교도소를 나가면 위증으로 우리 집안과 나를 망가뜨린 동료들을 찾아가 모두 죽여 버린 뒤 나도 자살하고 말겠다”

매일 매일이 증오와 복수, 참담함을 느끼며 살자니 속이 끓어 올랐다. 당연히 세상이 원망스럽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해도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는 것이 왜 나에게 닥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처자식과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자신이 동료들의 위증으로 교도소에서 억울하게 복역을 하고 출소하더라도 간첩이라는 엄청난 전력으로 평생 직장도 얻지 못하고 살아갈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했다.

더구나 이씨는 가족조차 면회도 할 수 없는 특별 죄수처럼 대하고 있는데 어이가 없었다.

특히 자신에 대한 재판수발과 3남매의 자녀들을 키우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살고 있는 부인의 안타까운 소식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보안사에서 가족들을 서민임대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해준다던 약속은 모두 물거품이 됐고 시흥을 거쳐 인천으로 옮겨간 처자식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분노와 증오로 번지며 오기가 발동했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간첩혐의를 인정하면 2년만에 교도소를 나오게 해주고, 장성광업소 퇴직금으로 1500만 원을 주고 부인이 애들하고 살 수 있도록 광업소에 매점을 할 수 있도록 책임진다고 했지만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에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을 통해 임대아파트에 입주시키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이씨는 가족들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방법은 목숨을 건 단식투쟁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독방에 수용된 교도소에서 이씨는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 봉지 수 십장을 모아 긴 끈을 만들었다.

교도관들은 빵을 지급했지만 빈 봉지가 목을 조이는 끈(흉기)로 쓰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윽고 20미터가 넘는 끈이 만들어 지자 출입문과 자신의 목을 빵 봉지로 만든 줄로 8자형태가 되도록 연결했다.

교도관이 출입문을 열면 목이 조여 숨이 막혀 질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이런 장치를 한 이씨는 즉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교도관이 식판을 넣는 한 뼘 가량의 좁은 창구에 밥을 넣어 주다가 이씨의 단식투쟁 방법을 보고 기겁을 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이씨는 “당신이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목이 졸여 죽으니 나를 죽이고 싶으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도 좋다!”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교도관은 이런 사실을 즉각 교도소장에게 보고했다.

교도소장을 비롯한 교도관들이 문을 열고 접근조차 못하게 한 이씨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혀를 내둘렀으며, 어떻게 하든 간에 단식을 막지 못하면 안 되었기에 교도소 측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교도관들은 하루 이틀이 지나면 단식이 끝낼 줄 알았는데 이씨가 워낙 강경하게 단식투쟁을 이어가자 목숨을 건 것 투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교도소장이 마침내 이씨를 찾아왔다.

“이병규씨!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라. 가능한 것이라면 해결되도록 돕겠다.”

하룻동안 밥을 굶은 이씨는 기력이 없음에도 당당하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아무 죄도 없는 내가 교도소에 수감된 것도 억울한데 가족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인천시장에게 공문을 통해 서민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게 해주면 단식을 그만 두겠다. 이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단식은 절대 풀지 않을 것이다.”

“알겠다. 당신의 요구조건을 들어 주겠으니 단식을 풀어주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임대아파트 입주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죽음 밖에 없다”

교도소장은 즉각 인천시장에게 임대아파트 우선입주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고, 인천시장으로부터 이를 승낙한다는 공문을 받은 뒤에야 이씨는 단식투쟁을 중단했다.

목숨을 걸고 시작한 단식투쟁 8일 만에 이씨는 가족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다.


▲이병규씨가 대전교도소에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쓴 편지봉투. ⓒ프레시안(홍춘봉)

이렇게 대전교도소에서 10개월이 지나자 이번에는 전주교도소에 이감했다.
양심수가 비교적 많이 수용된 전주교도소는 대전교도소와는 달랐다.

10개월이 지났지만 교도소 생활은 익숙하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원한과 증오에 가득 찬 생각을 하며 비좁은 독방에서 지낸 탓에 이씨는 몸과 마음이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4월에도 온기가 없는 교도소 바닥은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체념과 분노로 살아서는 자신이 폐인이 되고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건강을 챙기면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씨는 아침 기상과 동시에 앉았다 일어서기 운동을 하루에 반드시 1000번, 앉아서 제자리 뛰기 3000번, 유치장 벽에 물구나무 서기 100회, 다리를 벽에 올리고 팔굽혀 펴기를 한 번에 50~100회 등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할 때 까지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또 하루에 3차례 냉수마찰을 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주교도소에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잡혀온 대학생을 비롯해 시국사범으로 수형생활을 하는 문익환 목사, 김남주 시인 등 기라성 같은 인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힘이 되었다.

아울러 교도소에 있는 다양한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면서 울분을 삭였고, 김남주 시인 등으로부터 많은 위안과 격려를 받으면서 재기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막내 아들인 근호가 쓰레기통에 파리가 잔뜩 앉은 먹다 버린 수박을 주워 먹었다는 사실을 편지에서 알게 된 이씨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못난 아버지 때문에 수박을 먹고 싶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수박을 거지처럼 주워 먹다니 이를 어이 해야 하나. 이제부터는 교도소에서 나오는 간식비를 없애고 아이들 군것질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돈을 보내야겠다.”

그날부터 이씨는 간식을 끊고 남은 돈을 모아 아이들 간식비로 보내기로 했다.

당시 이씨는 교도소에서 제공해주는 식사로는 영양실조에 걸리기 때문에 하루에 땅콩 10알, 사과 반쪽, 계란 1개를 매점에서 구입해 먹었다. 이러한 간식비용은 국제인권위원회와 민가협에서 보내온 월 100달러의 돈으로 해결했다.

이씨가 간첩혐의로 교도소에 복역하는 동안 동생은 좋은 기관에 취업하고도 불고지죄에 의해 입사가 불허 되었고, 처가에서도 날벼락이 날아 들었다.

딸이 간첩의 부인이 되고 자신은 간첩의 장인이 되었다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멸시 때문에 화병이 생겨 이씨의 장인은 이씨가 교도소에 수감해 있는 동안 병사하고 말았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 역시 간첩의 아들, 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이 학교 저 학교로 전학을 했지만 간첩의 자녀 꼬리표는 계속 이어졌다.

이씨를 괴롭히는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가족까지 동원해 자신이 간첩도 아닌데도 전향서를 쓰도록 회유와 협박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을 동원한 전향서 작성 강요는 자신의 부인은 물론 어머니에게 찾아와 전향서를 쓰면 교도소 생활을 일찍 마치고 좋은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회유할 정도였다.

이 말을 들은 이씨의 어머니는 전주교도소에 찾아와 아들에게 전향서 쓰기를 당부했다.

“아들아! 너가 전향서를 쓰면 가족도 그렇고 너도 교도소 생활을 빨리 벗어날 수 있다는데 그 놈의 서류 한 번 쓰면 어떻겠느냐!”
“어머니 제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전향서를 씁니까? 경찰이 찾아와서 그런 헛소리를 했지요? 어머니 그놈들 말에 절대 넘어 가시면 안 됩니다. 저는 전향서 쓸 이유가 없으니 그렇게 아세요.”

참다못한 이씨는 부인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교도소에 복역하면서 이병규씨가 부인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을 전하는 편지. ⓒ프레시안(홍춘봉)

<... 나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징역을 살기가 힘들어서가 아니예요. 나의 억울함도 억울함이지만 당신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화가 나요. 그래서 화가 날 때면 당신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화를 삭여요. ...

나의 미전향 문제가 당신이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하니 내 마음이 매우 괴롭소. 내가 공산주의 사상을 갖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당신이 제일 잘 아는 사실이 아니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좌에서 우로 전향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니 내 마음은 괴로울 뿐이요. ...

여보! 당신과 접견할 때마다 점점 수척해가는 당신의 모습, 윤기 없는 얼굴에 까칠하고 입술도 하얗게 일어난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는 아픔에 고통을 느낀다오. ... 재판을 받기 전 보안부대에서 왜 죽지 못했나 하는 후회감 뿐이오.

죽을 수조차 없었던 그때의 상황이 원망스러울 뿐이며, 용기가 없었던 자신이 미워질 뿐입니다. 이젠 죽기 전에 억울함을 밝히고 내 자식에게 아비의 그늘 때문에 사회에 진출하는데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아비 된 입장의 생각이오. ...

사랑하는 사람아!
피를 토하는 아픔을 잉태한 채 발길을 돌려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을 당신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면회는 1년에 4번, 3개월에 한 번씩 오시오.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이며, 만나는 기쁨 10분 뒤에는 3, 4일 동안 아픔의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오. ...>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