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전자제품판매지점 지점장이 과도한 업무량과 실적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북 청주시 가경동, LG전자가 직영 운영하는 LG베스트샵 지점장 박 모(40)씨는 지난해 8월6일, 오후 11시58분경 첫째 딸에게 "엄마 말 잘 들어야한다. 사랑한다 딸"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남기고 집안에서 목을 맸다.
다행히 문자를 보고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아내 A씨가 인근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해 목숨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산소결핍이 오랫동안 이어져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결국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현재는 청주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박씨가 자살을 기도한 날은 가족들과 휴가를 떠나기로 약속한 전날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6살 된 두 딸과 아내를 두고 박씨는 왜 극단적 선택을 강행한 것일까?
A씨는 "평소 남편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다. 새벽같이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기 일수였다. 판매목표 달성과 실적부진 걱정 등으로 심리적 압박감도 상당했다"고 설명하며 남편의 극단적 결정의 배경에 대해 털어놨다.
자살기도 전 업무스트레스 호소
A씨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015년 가을, 직장상사인 B상무가 새로 부임해 오면서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남편은 잦은 회식과 술자리에 대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윗사람에게 아부하며 잘 보이는 성격이 아니라 평소에도 '상사에게 찍혔다'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LG전자와, 노무사사무실, 인터넷포털 등에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본적인 산재처리 등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자살을 기도한 남편이 우을증 치료를 받았다는 병원 진료가 없기 때문.
청주노동인권센터 주형민 노무사는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정신과 치료 중인 사람이 정신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는 업무상 사고로 인정된다"며 "만약 치료 기록이 없다면 자해행위 당시 정신이상 상태였음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예외적으로 치료 기록이 없더라도 주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해행위 당시 정신이상 상태였음을 인정받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A씨는 "우울증, 공황장애 치료를 남편에게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우을증 치료를 받으면 병원기록에 남는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인사조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박씨는 자신이 주로 쓰는 수첩에 "갈수록 힘들어지는 회사생활, 나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확 죽고싶다"와 같은 메모를 적기도 했다.
A씨는 "이 외에도 작년 4월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남편이 '매장에 목을 매달아 죽고 싶다'라는 문자를 새벽 1시쯤에 보냈고 곧바로 연락을 해 달래줬었다"며 "그때라도 적극적으로 병원치료를 받게 했어야 했다"고 울먹였다.
이런 박씨의 스트레스가 인사이동 발표 뒤 극에 달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주장이다. A씨는 "지난해 6월, 청주에 살고 있는 남편에게 왕복 3시간30분이 걸리는 경기도 송탄점으로 인사 이동시켰다"며 "이에 이의제기를 해 결국 인사이동은 없던 것으로 됐지만 '완벽하게 찍혀버린' 직원이 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회사 측은 B씨에게 산재처리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오는 6월6일, 박씨는 회사로부터 자동퇴사 될 처지에 놓여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LG하이프라자는 박씨의 자살기도 직후 500만원의 위로금을 A씨에게 전달했다. 또 지난 2월 말, 본사 관계자가 A씨를 만나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의료비 지원금 1000만원을 추가로 전달하며 앞으로는 지원이 힘들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만약 그 자리에서 돈을 보낸다고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이미 본사 직원을 만났을 때는 남편 통장에 돈이 입금된 후였다"며 "당장 매달 드는 수 백 만원의 치료비 부담이 있지만 한 푼도 쓰지 않고 가지고만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남편을 보낼 수는 없다'
박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6살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된 두 딸이 있다.
A씨는 "남편이 평소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었다"며 "남편이 극단적 선택한 그 날, 첫째 딸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걸 본 딸이 아빠가 이상하다며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에게 박씨의 상황을 말해줬냐는 물음에 A씨는 "'아빠는 언제까지 아플거래? 집에는 언제 온데?'라고 묻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었다"며 "남편이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날 아이들에게 얘기해줬다. 아빠의 빈자리가 걱정 된다"며 말끝을 흐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것. 박씨가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은 요양병원 중환자실이라 병원 측이 타 환자들의 위생과 환경을 고려해 아이들의 면회를 더 이상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외에도 현재 A씨는 매달 청구되는 수 백 만원의 병원비와 간호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A씨는 "매달 적게는 160여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도 넘게 병원비를 부담하고 있다. 요즘에는 폐렴에 걸려 항생제 치료도 받고 있다. 상황이 많이 어렵다"며 "항상 회사만 생각했던 남편이다. 그런 남편에게 눈길한 번 주지 않는 회사가 너무 밉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해 LG하이프자라 측은 본보 취재진의 취재요청에 대해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고, 회사와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보이기 때문에 문의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우리 하이프라자의 공식 입장"이라고 답했다. 그저 가정사일뿐이라는 것.
이에 B씨는 "회사입장을 전달해 준 동료 지점장들이 이번일로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회사의 입장을 전달해줬었다"며 "이 사건이 왜 가정사로 치부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회사도 남편이 실적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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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충북인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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