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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하나 없이 ‘심증’만으로 선고한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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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하나 없이 ‘심증’만으로 선고한 재판부

[홍춘봉의 광부아리랑] ㉛27년간 ‘광부간첩’ 올가미 쓴 이병규씨

재판진행이 검사 의도에 따라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자 참다못한 이관형 변호사가 검사 심문을 중단시켰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병규씨 등 고정간첩단 사건을 보안사 발표에 따라 보도한 1995년 11월 2일자 <동아일보>. ⓒ프레시안(홍춘봉)

“피고인 이병규가 간첩활동을 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나 명확한 물증도 없이 엉터리 증인을 내세워 하는 재판은 모두 무효입니다. 보안사의 고문과 협박에 의해 조작된 이 재판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 변호인의 판단입니다. 따라서 검찰측이 피고인과 증인들에 대한 심리는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당장 이런 엉터리 재판을 무효화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발언이 끝나자 이관형 변호사는 들고 있던 재판 기록을 재판정에 던진 뒤 곧장 퇴장하고 말았다.

이병규씨 변호인이 예상치 못한 행동이 나오자 법정은 순간 술렁거렸다.

당시 이관형 변호사는 이씨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30만 원을 받고 사실상 무료 변론에 나섰지만 어느 수임사건보다 더 열심히 변호에 나섰다.


첫 심리재판이 끝나고 구치소로 이병규씨가 옮겨지자 보안사 수사계장이 찾아왔다.

“너, 우리와 약속한 것을 왜 지키지 않느냐?”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자꾸 괴롭히느냐!”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가족까지 잘못될 텐데 순순하게 우리들 말을 들어라”

“필요 없다. 당신들이 가족들 생계 책임져 주겠다고 해놓고 이를 어기지 않았느냐. 먼저 해놓은 약속을 어기고 나에게 약속 운운하지 마라”

한편 보안사는 이병규씨에 대한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던 1985년 11월 1일 보안사령부에서 고정간첩 5개망 16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TV와 신문에서는 보안사 발표를 액면 그대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1면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국군보안사령부는 1일 군부, 학원, 산업계 등 강계 각층에 지하망을 구축, 폭력소요를 일으켜 사회혼란의 조성을 기도하는 한편 군사기밀 수집과 군내부 와해를 꾀하면서 암약해온 고정간첩 라종인 일당 등 5개망 16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 . .

간첩 이병규=강원도 모고교를 중퇴한 이는 1969년 4월 경기 덕적항 선적 홍덕호에 승선, 조기잡이를 하던 중 북괴경비정에 납북됐다가 체재기간 중 북괴지도원에 포섭됨, 당시 노동자 농민들을 대상으로 지하당을 구축할 것 등을 지령받았다.

1969년 11월 귀환되자 광부로 위장취업, 북괴를 찬양해오다 1979년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광부로 옮겨 광부 8명으로 구성된 계를 조직,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광산촌내 지하당 구축을 위한 대상포섭을 기도해옴, 1985년 2월 장성광업소에서 노조지부장 선거가 있게 되자 직선제 관철을 종용하면서 극렬투쟁을 조장해 오던 중 광부들의 소요가 일어나자 철암갱 광부 200여 명을 선동하는 등 암약하다 검거됨.>

▲평양 대동강 전경. ⓒ네이버 캡처

또 <동아일보>는 같은 날자 사설에서도 고정간첩의 적발이라는 제목의 서설을 통해 이병규씨가 납북되었다가 간첩교육을 받고 돌아온 어부는 광산에 침투, 임금인상 요구를 내세워 광부들의 소요를 선동했다고 보안사의 발표대로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지루하면서 피를 말리는 재판이 5개월 가까이 지난 1985년 12월 초, 마침내 검찰이 구형을 했다.

“피고 이병규는 여러 차례에 걸친 심리를 통해 밝혀졌듯이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남한에 귀환해 지하망을 구축하고 남한의 주요 군사정보를 북한에 보낸 사실을 비롯, 광업소 폭동을 주도하는 등 간첩활동을 한 혐의가 명백히 밝혀졌다. 그런데도 피고는 반성의 기미도 없고 전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피고 이병규를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에 구형한다.”

순간 이병규씨는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기구형이 내려지자 재판정에 있는 부인에게 말했다.

“여보!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내가 무기징역을 구형 받았는데 당신 이제 나를 잊고 다른데 시집을 가라. 대신 첫째와 둘째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막내는 당신이 데려가 키워 달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하는 이병규씨는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생뚱맞은 말이 나오자 임순성씨가 남편을 달랬다.

“나는 끝까지 당신을 기다릴 테니 그런 소리 제발 하지 마세요”

이윽고 12월 20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이병규씨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심공판이 열렸다.

재판장이 말했다.

“피고 이병규! 최후진술을 하시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북한에 다녀 온 것은 맞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해 주변 누구에게 말한 사실이 없습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집사람에게도 말한 사실이 없는데 소준 한 병을 둘이서 나눠 마시고 북한에 다녀왔다는 말을 했다는 증인의 진술은 거짓입니다. 보안사 수사관의 고문과 협박에 의해 만들어진 검찰의 공소내용은 무효입니다.

장성광업소 사태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데 배후 조정했다는 것도 엉터리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 아닙니까. 사상의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제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표시가 나지 않는데 속이 빨간지 파란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특히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표현하거나 행동한 사실도 없는데 속이 빨간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고 당연히 이 재판은 무효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합니다.”

20여 분이 넘는 최후진술이 끝나자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 이병규에세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을 인정, 징역 14년을 선고한다!”

즉각 이병규씨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너무 억울합니다! 난수표는 물론 권총이나 어떤 증거도 없는데 심증만으로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군사정권의 시퍼런 서슬과 보안사의 위세를 절감한 이병규씨와 변호인은 즉각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항소와 동시 이씨는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이번에는 고영구 변호사를 선임했다.

강릉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되면서 이씨는 온 몸을 조였던 혁수정이 제거됐다. 그러나 무려 6개월간 혁수정을 차고 생활한 탓에 이씨의 어깨와 팔이 굳어져 전혀 펴지지 못했다.

오그라든 몸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생활하던 이씨는 이감 보름이 되던 날 밤 잠자리에서 기지개를 펴는 꿈을 꾸는 수난 “우지직!”하는 소리가 나며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항소심 재판에서는 이씨와 고영구 변호사가 무죄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판결에서는 간첩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장성광업소 소요사태는 유죄가 인정되었다.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가 인정되는 바람에 1986년 7월 8일 7년형이 선고됐다.

서울고법의 판결이 끝나자 이씨는 서울구치소에서 대전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이씨는 대전교도소에서 장문의 항고이유서를 써서 대법원에 제출했다.

이씨의 회고.

“조기잡이 어선을 탔다가 납북되는 바람에 북한에 끌려가 강제로 간첩교육을 받았다. 북한에서 대학도 보내주고 결혼도 시켜준다며 감언이설로 북한 잔류를 유혹했지만 나는 부모형제와 친척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또 남한에 와서 북한에서 경험한 모든 사실을 진술하고 간첩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간첩이라면 무인수표가 있거나 권총이 나오거나 어떤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전혀 증거가 없었다. 1심과 2심 재판부에서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 심증만 가지고 유죄를 판단한 것은 잘못이다.

부모가 살고 자녀가 살아간 대한민국에서 간첩행위를 하면 어떤 불행과 잘못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간첩행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사상적으로도 한 번도 공산주의를 신봉하거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슴 절절이 진실을 항고이유서에 기록했다.”

▲1985년 11월 2일 보안사가 발표한 고정간첩단 사건에 대한 <동아일보> 사설. ⓒ프레시안(홍춘봉)

그러나 대법원은 이씨의 진실에 입각한 절절한 항소이유서에 대해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고 7년 형이 그대로 인정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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