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씨가 보안사에서 구치소로 옮겨 수감되자 특별한 형벌이 가해졌다.
보안사 수사관들이 교도소 측에 이씨는 자해할 우려가 높은 위험인물이라며 특별한 ‘처우’를 당부했기 때문이다.
1985년 6월 22일 강릉구치소에 수감되자 구치소 측은 이씨에게 가죽으로 된 혁수정을 채우고 수갑으로 양손을 꽁꽁 묶은 채로 한 평도 안 되는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독방에 감금했다.
속칭 ‘혁수정’으로 불리는 이 포박 방법은 허리를 가죽벨트로 채운 뒤 배꼽 부위에 양 손목이 모아지도록 만들어졌는데 가죽혁대 바깥으로 나온 손목에 다시 수갑을 채워 손을 꼼짝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혁수정은 사형수 등 중범죄자에게 채우는 가장 비인간적인 체형도구로 수갑과 포승줄로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바싹 조여 묶고 독방에 가둔 것이다.
이씨는 (손을 전혀 쓸 수 없기 때문에)이런 상태로 ‘개’처럼 독방에 넣어준 식사를 입으로 핥아 먹어야 했고, 용변을 볼 때나 쉴 때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런 상태로 잠을 자야 만 했다.
간첩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도 부족해 이제는 동물 이하의 생활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이씨는 치를 떨고 차라리 자살을 결행하려 했지만 보이는 것은 단지 어두운 철창과 절망뿐 이었다.
구치소에서 며칠을 이렇게 지나자 보안사 수사관이 찾아와 ‘특별면회’ 형식으로 이씨를 강릉보안대 취조실로 데려 갔다.
수사계장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일 검사 앞에 조사를 받으러 나가는데 지난번처럼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면 너는 끝장이다. 우리에게 약속한대로 따르지 않으면 너를 군용빽에 넣어 동해바다에 수장시켜 물고기 밥이 되도록 하겠다. 그러니 우리에게 진술한 것처럼 순순히 인정해라. 그러면 약속대로 우리가 가족들 생계도 책임지고 너는 2년만 살면 석방되도록 해주겠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답변은 필요가 없었다.
“알겠다”
수사계장은 이병규씨로 부터 기대했던 답변을 듣자, 준비했던 양주와 통닭튀김을 이씨 앞에 가져왔다.
공포와 불안이 아른거리는 상황에서도 술을 좋아하는 이씨는 오랜만에 통닭과 양주를 보자 군침이 당겼다.
지난 2개월간 술과 고기 맛을 보지 못했던 탓일까?
‘어차피 죽을 몸 실컷 먹고 죽는 게 낫겠지’
수사계장이 따라주는 양주를 거푸 마시며 통닭을 뜯는데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배포가 커졌다.
‘에라, 죽을 때 죽더라도 오늘은 술에 실컷 취해 고통과 잡념을 잊어보자’
보안사 수사관이 이씨의 심리를 알고 위로차원에서 마련한 ‘나 홀로 만찬’을 즐긴 것이다.
이렇게 되어 이씨는 통닭 1마리와 양주 2병을 말끔하게 비웠다.
보안사 수사관에 의한 특별 만찬파티가 끝나자 보안사 수사관들은 다시 이씨를 승용차에 태워 강릉구치소로 호송시켰다.
다음날 아침 춘천지검 강릉지청에 출두하는 자리에서 수사계장이 최종 확인을 나왔다.
“오늘, 검사 앞에서 허튼 소리하면 너는 끝장나는 줄 알아라”
모처럼 마신 양주로 취기가 가시지 않은 이씨는 주눅이 든 상태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양이 앞의 쥐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지만 이씨는 검사 앞에 가면 보안사에서 진술한 내용은 보안사 수사관에 의한 고문과 폭행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허위로 자백했다고 진술할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검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검사실에는 찰거머리 같은 수사계장과 수사관이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뒤에 버티고 앉아 검사의 신문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2개월 가까이 자신들이 공을 들여 만든 ‘작업’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검사실에서 위압적인 자세로 이씨를 끝까지 감시했던 것이다.
물론 전두환 정권 당시, 보안사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기에 검사실에서도 보안사 입김이 그대로 작용하는 상황이었다.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보안사 수사관들이 지켜보는데 이를 무시하고 진실을 말하려고 했던 자신의 계획은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보안사 수사계장이 담당 검사에게 “이병규씨를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하며 마치 간첩행위를 저질렀지만 죄를 뉘우치고 있으니 잘 봐달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40세 가량의 검사가 조서내용을 읽어 보다가 말했다.
“여기 사건기록은 당신이 진술한 내용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검사가 다시 확인했다.
“(이 내용이) 사실이죠?”
“. . . 네!”
검사는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보안사의 수사기록을 읽어주며 확인했다.
1시간 가량 검사신문이 끝나자 “도장 찍고 서명 하세요”하면서 서류를 내밀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답답함을 억누르며 이씨는 이제, 법정에서는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검찰의 수사조서에 도장을 찍고 서명을 하였다.
이씨가 강릉구치소에 미결수 신분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혁수정을 차고 지내야 했는데 보안사 수사관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구치소를 찾아왔다.
구치소에 찾아온 보안사 수사관들은 이씨를 강릉보안대로 데려가 하루종일 고기와 술을 제공하며 회유와 협박을 계속했다.
한편 남편이 강릉보안대에 체포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잡혀간 지 1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보안대 수사관이 태백시 철암동 임순성씨의 구멍가게를 찾아왔다.
“남편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해서 그러니 남편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달라”
이에 따라 임씨는 자신의 일기장과 남편이 군에서 받은 표창장, 도지사 상장, 감사장, 남편이 군에서 작성한 일기장 등을 모두 넘겨줬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다른 자료를 찾기 위해 임씨를 밖으로 내보낸 뒤 방안을 샅샅이 뒤져 이씨와 관련된 자료를 찾았으나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다.
임씨는 무언가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는 대전에서 부장판사를 하는 친척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강릉에 잘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 줄 테니 그 변호사를 만나 잘 상의해서 일을 풀어가라”
임씨는 부장판사가 써준 소개장을 들고는 강릉의 이관형 변호사(12대 국회의원)사무소를 찾아갔다.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50만 원이 필요했으나 준비해간 돈이 30만 원에 불과해 우선 그 돈으로 변호사 선임비용을 댔다.
며칠 뒤 임씨가 방에서 헤어진 양말을 꿰매고 있는데, KBS방송국에서 카메라 기자가 자신을 찾아왔다.
“아니, 간첩은 돈이 많다는데 왜 양말을 꿰매고 있느냐?”
“ ? ”
“5000만 원이 입금된 통장이 있다는데 통장 좀 꺼내 보여 달라”
카메라 기자는 남편을 아예 간첩으로 인정하고 지시하는 듯, 막무가내로 요구를 했다.
임씨가 수십만 원이 입금된 남편의 통장을 꺼내 보여주자 카메라 기자는 통장은 물론 방안 곳곳을 촬영했고 그날 저녁 9시 뉴스시간에 남편이 간첩혐의로 검거됐다는 보도를 했다.
다음날부터 시내에 나가거나 시장에 가면 동네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수군거리거나 어떤 낯선 사람은 남편의 술값을 달라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임씨는 장부도 없이 외상값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만약 돈을 주지 않으면 좋지 못한 소문이 날까 두려워 술값으로 수백만 원을 갚아주기도 하였다.
또 간첩의 구멍가게라는 소문이 나자 장사가 안돼서 300만 원도 더 주고 매입한 가게를 단돈 170만 원에 처분해야만 했다.
탄광 선산부로 매월 남편이 받아오던 월급이 뚝 끊어지자, 당장 어린 자녀들과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였다.
자녀들과 먹고 살기 위해 철암의 요정에 나가 청소 등 허드렛일을 했으나 벌이가 영 신통치 않자, 탄광 선탄부로 출근해 몇 달간 근무를 하기도 했다.
또한 틈나는 대로 강릉행 열차를 타고 변호사 사무실에 다녀오는 등 남편의 석방을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이병규씨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 1개월이 지날 무렵, 법률 대리인을 맡은 이관형 변호사가 구치소를 찾아왔다.
“당신 공소장에 기록된 내용은 모두 사실인가?”
“아니다, 모두 고문과 폭행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진실을 말해야 살 수 있고 아니면 죽는다”
“나도 변호사님 말씀처럼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윽고 재판이 시작됐으나 법정에서도 이씨는 혁수정을 찬 채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를 본 이관형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사람을 죽인 중범죄자도 아닌데 구치소는 물론 재판정에서도 혁수정을 채우는 것은 잘못이니 이를 풀고 재판을 받도록 해 달라”
그러나 검사가 다시 이의를 달았다.
“이병규는 교도소 측에 의하면 자해할 우려가 높은 인물로 지목된 만큼 24시간 혁수정을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되자, 이씨는 재판기간 중에도 내내 혁수정을 찬 채로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은 보안사 수사내용을 근거로 이씨가 지난 1969년 11월 북한에서 귀환 직후 작성한 진술서 내용 100%를 간첩활동을 펼친 것처럼 심리를 하였다.
특히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안사가 만들어 놓은 증인들을 법정에 세워 거의 완벽하게 이씨를 고정간첩으로 꿰어 맞추고 있었다.
검사가 장성광업소 광부를 불러 증인신문을 실시했다.
“증인은 예, 아니오 가운데 하나로만 대답하시오.”
“이병규가 탄광 작업장인 채탄막장에서 수상한 행동을 한 것이 맞지요?”“네!”
“지난 3월 3일 장성사태가 발생하자 (이씨가) 철암항 광부들도 장성으로 몰려가 힘을 합치자고 한 사실이 있지요?”
“네”
“이병규가 술에 취해 북한에 다녀왔다는 말과 북한 노동자들이 남한 노동자에 비해 잘 살고 있다는 말을 한 사실도 있지요?”
“네”
이번에는 검사가 이병규씨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피고인 이병규에게 묻겠는데 피고인도 예, 아니오 가운데 한가지로만 답변하시오”
“피고인이 북한에 가서 간첩교육을 받은 것이 맞지요?”
“네”
“피고인은 장성광업소에서 지하망 조직구축을 위해 철암항 광부들을 대상으로 상포계를 조직한 것이 맞지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피고인은 예, 아니오 가운데 한가지로만 답변하시오”
“피고인은 1983년 5월 초순 동료 김병기와 술을 마시던 중에 배를 탔다가 북한에 끌려갔는데 이북에서 관광을 하면서 여러 곳을 다녀보니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곳이 많더라는 말을 했고 또 피고인은 북한에서는 빈부격차가 없이 평등하게 사는데 남한은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말을 했지요?”
“아닙니다.”
“증인이 분명히 이를 들었다고 답변했는데 피고인은 술에 취해 그런 말을 해 놓고도 잊어 버렸나요. 아니면 모든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답변을 사실과 다르게 하고 있나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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