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개혁파로 분류되는 남경필 의원은 23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야당시절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지만 여당이 된 후에는 그런 잣대를 왜 들이대지 못하나 하는 것이 민심이 화가 난 근본적 이유"라고 말했다.
남 의원의 말대로 지난 14일부터 22일까지 청문회 정국이 이어지는 동안 한나라당에 즐비한 왕년의 저격수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정몽준 대표가 "사안별 경중에 따라 국민들께서 좋은 판단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오는 2012년 2월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도덕성 논란이 잦아들 가능성은 말 그대로 '제로'다.
이는 청백리 한사람을 삼고초려해 모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는 한 풀릴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잣대는 어디로?
지난 7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성관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의 내정을 취소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이동관 홍보수석은 "대통령은 일관되게 중도실용, 친서민행보를 계속해 오셨는데 그 철학적 바탕은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다"면서 "결국 우리 사회의 고위공직자가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기꺼이 본인의 재산까지도 다 내놓으신 것이다"고 밝혔다.
이후 개각 국면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는 "뭐든지 안 걸리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면서도 "이번엔 도덕성이 첫 번째 원칙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운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종료된 이후 언론에 슬쩍 등장한 청와대 '핵심 참모'는 "정 총리 후보자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답변하고 해명한 내용을 보면 국민들이 크게 받아들이지 못할 부분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청와대의 기준이 바뀐 것일까?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 정도면 '처신의 모범'이 되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보다는 천성관 총장 후보자의 죄질이 나빴던 것일까? '스폰서 (검찰)총장'과 '스폰서 (대학) 총장'은 엄연히 다른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아니면 그땐 대통령 지지율이 낮았지만 지금은 높아서일까?
'이명박 기준'에 대입해보니…
현 정부 하에선 웬만한 도덕적 흠결은 고위 공직에 오르지 못할 결정적 사유가 될 수 없다.
위장전입?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다섯 차례 위장전입을 시인한 바 있다. 겸직 문제?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퇴임 이후 한양대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1년 간 3600만원을 받고 강의는 단 한 번 했다. 자녀 관리? 이명박 대통령은 아들과 딸을 자신 소유 빌딩의 관리 직원으로 위장취업시켜 세금과 4대 보험 혜택을 보게 했다.
이 대통령은 갑부 수준의 재산가니 남에게 용돈 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정도가 정 후보자와의 차이라면 차이겠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살면서 일을 하다가 그릇을 깼을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베는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나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결정적인 사유를 갖고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다"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찬 물에 손 넣을 일 없이 남이 해주는 밥만 먹고 귀하게 자란 사람은 그릇을 깨거나 손을 베일 일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청와대나 한나라당이 아무리 '도덕성',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더라도 현 정부의 인사 커트라인은 '이명박'이다. 그보다 덜한 도덕적 문제를 흠결로 간주하면 스스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꼴이 되니 말이다. 따라서 논리의 연장선에서만 보면 이귀남도, 백희영도, 정운찬도 임명장을 받는 게 마땅하다.
'이명박 기준'과 '국민 기준'의 괴리, 이는 좁혀질 수 있는 변수가 아니라 현 정부 임기 끝까지 변치 않을 상수다. 마음에 안 들고 답답해도 참는 수밖에 없겠지만, 마냥 인내에 익숙해질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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