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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더 아픈 돌을 던졌던 한 사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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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더 아픈 돌을 던졌던 한 사람의 기록

노무현 회고록 '성공과 좌절' 출간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 中)

서거 4개월 여 만인 9월 21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회고록이 출간됐다. 이 책에는 노 전 대통령의 절절한 육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고난을 이기고 최고권력을 쥐기까지의 과정이나 남북 정상회담 등 대통령 재임 중의 치적이 아니라, 절벽에서 제 몸을 던지기 직전의 고통과 회환을 책 앞 부분에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로 배치한 것이 눈길을 끈다.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봉하마을 가꾸기, 시민광장, 정책 연구…. 그래서 '우공이산'을 표구하여 붙여놓고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장애가 생겼다.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인 것 같다. 왜 써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다. 일은 삶 그 자체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사흘 전, 그러니까 유서를 제외하곤 생애 마지막 기록이자 책의 맨 첫머리에 적힌 대목이다.

1부 1장 '미완의 회고'는 이 책의 핵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고록의 목차와 구성을 직접 작성한 '성공과 좌절'에서 그는 "사죄의 글로 쓰려고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오는 과오입니다. 나도 변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부끄러운 시민으로 사죄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살아온 경험으로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동안 제가 살아온 경험을 통하여 정치가 이루어지는 이치에 관해 시민들이 알면 좋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공식 회고록 '성공과 좌절'ⓒ학고재
자책과 참회, 하지만 후세를 위해 실패담이라도 남겨야 하겠다는 의무감의 결합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그는 책 첫머리에서 회고록의 전체 기조를 '실패의 이야기'로 잡게 된 심경을 밝혔다.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되었고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으나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고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1부 2장 '봉하 단상'은 1장 만큼의 긴박감은 덜하지만 비공개 카페에 스스로 올렸던 글들이 최초로 공개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공과를 논하는 내용('춤추는 미사일, 누구를 위한 것일까?'/'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흥미롭다.

참여정부와 제3의 길을 연결시킨 노 대통령

제2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네 차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육성기록으로 모두 3장으로 구성했다. 1장 '시대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2장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 '3장 한국 정치에 대한 단상'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들이 재정리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 3장은 또 흥미롭다. 서구 사민주의, 제3의 길, 사회투자국가 전략에 대한 이론적 호감이 엿보인다. 이는 1부 3장과도 연결된다. 그는 참여정부의 노선을 '제3의 길' 논의와 관련지으며 『슈퍼 자본주의』의 저자 로버트 라이시의 노동전략, 토니 블레어의 『영국 개혁 이렇게 한다』, 기든스의 책 등과 미국 민주당 싱크탱크인 진보정책 연구소의 보고서 등을 언급한다.

2부 2장 '참여정부 5년을 말한다'에 담긴 한미FTA 대목에선 그에 대한 노 전 대통령 본인의 의지가 말 그대로 확고했음이 엿보인다. 그는 "정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과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진보주의 사람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정책은 과학적 검증을 통해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 반대자들을 질타했다.

하지만 정작 FTA 추진 배경에 대해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FTA를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주의주의적 믿음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감당해갈 수 있다는 믿음, 우리 국민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 그것이 FTA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국민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면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국민들에 대해 그만한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자책과 성찰, 그 이면의 강한 자신확신

유고집 성격이 강한 이 책은 놀랍도록 솔직한 자책과 성찰이 담겨있다. 하지만 자신을 '실패했다'고 규정하면서도 책 곳곳에서는 자신의 인생과 재임기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성취감도 엿보인다.

아마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의 장점이자 단점은 솔직함과 진정성이라는 덕목에 의거한 자책·성찰과 자기확신이라는 상반된 요소가 아닌가 싶다.

남이 던진 돌보다 스스로 자신에게 더 아픈 돌을 던졌던, 그로 인해 63년이 되지 않는 생을 스스로 마감한 한 사나이의 못 다 쓴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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