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분노
서울 인근 수도권역의 시외버스들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 강남역. 개중에서도 번화가와 닿아 있는 10번 출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유동 인구가 많다. 엄청난 인파와 그에 따른 비싼 땅값으로 알려진 이 공간이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 건 지난해 5월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다.
2016년 5월 17일 한 20대 여성이 강남역 인근 상가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던 중, 한 남성에 의해 칼에 찔려 숨졌다. 사건 직후 체포된 가해자는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했다"며 불특정 여성을 노린 범죄였음을 자백했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언론은 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이라 명명했고, 가해자가 고단하게 살아온 신학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수많은 여성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라고 재명명하고 거리로 나섰다. 피해 여성의 죽음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담은 1000장 이상의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 전면을 덮도록 빼곡히 붙고 또 붙었다. 포스트잇 아래에는 수백 송이 국화꽃이 놓였고, 수많은 사람이 강남역 거리를 가득 메웠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붙잡아 두기라도 한 듯 누구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과 관련해 SNS에 해시태그를 붙이는 운동으로까지 번졌던 이 문구가 함의하는 바는 명확하다. 어떤 나쁜 놈이 저지른 이질적이고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일상적인 사회, 그리하여 이들에 대한 폭력의 수위 역시 나날이 높아지는 사회에서 발발한 '사회 현상'이라는 것. 때문에 공용 화장실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여성 또는 소수자의 안전은 보장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혐오 문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혐오는 별거 아닌 게 아니라 별일
이렇듯 이례적으로 수많은 여성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피해자에게 공명한 이후, 우리 사회는 이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여성 혐오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주목했다. 지난해 총선 시기에는 중식이 밴드 여성 혐오 논란, 여름에는 게임사 '넥슨'에서 메갈리아 티셔츠를 인증한 성우와 계약을 해지한 넥슨 성우 부당 계약 해지, 가을에는 각계각층의 젠더 폭력을 고발했던 '#00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겨울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는 집회 내 성폭력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가수 DJ DOC의 '수취인 분명' 공연 취소가 있었다. 최근 그림 '더러운 잠' 여성 혐오 논란까지를 보자면,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대-성(性)정치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미니즘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한국 사회는 그를 둘러싸고 이토록 갖가지 진통을 겪고 있을까.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아마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페미니즘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동등하게 존엄한 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이자 학문인 동시에 실천적 운동'이다. 언뜻 누구나 합의할 수 있을 것 같은 페미니즘의 가치를 말하면, 현실에서는 별거 아닌 일에 문제를 제기하며 온갖 논란을 야기하는 '프로 불편러'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고 성차별과 소수자 혐오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변화는 더디지만 계속되고 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바쁘게 보낸 지난해 말, 다소간의 피 곤을 안고 자문하고는 했다. '세상은 정말 달라지고 있는 걸까.' 그때쯤 '페미니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라'라는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일이 있었다. 의기소침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발제를 마치자 참석자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발제자분들 모두 열심히 활동했으면서 왜 이렇게 반성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2007년과 2008년 내가 국회에서 일할 때 여성 기자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한 남성 국회의원이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그 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앞인지 뒤인지 몰라서 그랬대'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했고, 당시 이 발언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이 최순실을 가리켜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라고 말한 데 대한 비판은 내 주변 모두가 수긍했다. 큰 변화다. 목소리를 낸 페미니스트들이 많은 것을 바꿔 냈다고 본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이 바뀌기는 바뀌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로,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는 따뜻하다가도 시리게 춥고, 추웠다가도 이내 후텁지근해지고는 한다. 그 시기를 견뎌 내고 나면 비로소 기다렸던 새봄이 오는 것이다. 언제 추웠느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지난해부터 계속된 페미니즘 열기 때문인지 유력 대권 주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면서도 정작 차별금지법과 같은 페미니즘 의제에는 여전히 보수 개신교 세력의 눈치를 본다. 심지어 "여성들이 여성가족부의 존재를 꼭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대권 주자도 있다. 이쯤 되면 제도 정치가 차용한 페미니즘이란 공허한 껍데기일 뿐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선언을 냉소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한편에서는 그 껍데기뿐인 페미니스트 선언에 화들짝 놀라 "'양성평등'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니!" 하며 아연실색하는 이른바 '진보' 시민들이 여전히 건재하기도 하다.
'좋은 쪽으로의 변화'라는 건 늘 더디게 찾아온다. 더 평등한, 그리하여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내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치열한 싸움은 꽤 오래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마냥 유쾌하고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어느 날, 문득 살갗에 닿는 봄기운으로 어느새 찾아온 봄을 실감할 수 있기를. 그때까지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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