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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치의 계절', 훈풍만 불까?

"'정치 프랜들리'는 양날의 검"

이명박 대통령이 대(對) 여의도 행보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정몽준 신임 한나라당 대표와 처음으로 회동한 직후 여당 상임위원장단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다음 주에는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도 예정돼 있다. 국무총리 지명과 함께 정운찬 후보자와 독대했던 점과 맞물려 보면 불과 1주일 사이에 잠재적 대선주자들을 두루 만난 셈이다.

야당 인사들과도 접촉면도 넓혀 갈 방침이다. 청와대 박선규 대변인은 "여야 구별없이 얘기를 들을 만한 대상을 모두 만나 대화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정치의 계절이 왔다'고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이 대통령의 정치 혐오를 두고 우려가 많았던 점을 감안해 보면 확연한 변화라고 할 만하다.

▲ ⓒ청와대

정운찬, 정몽준, 박근혜…계속되는 '독대 정치'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함의를 내포한다. 청와대 안팎에선 이 대통령의 '정치 프랜들리'의 배경을 국정운영 주도권에 대한 '자신감'에서 찾는 기류가 많다. 자신에 대한 거침없는 '쓴소리'를 이어 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낙점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여당 내 야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친박(親朴)계, 나아가 야당까지도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그 동안 고착된 '한나라당 대통령', '보수우파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넘는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더욱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박형준 홍보기획관을 정무수석에 임명한 대목도 원만한 대(對) 국회소통의 포석으로 읽힌다.

정운찬 후보자,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등 차기 대선 주자들이 자신의 '정치'를 통해 경쟁할 공간이 열린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선 차기 주자군 사이의 경쟁 관계가 부각되는 게 완충지대 없는 이명박-박근혜 사이의 갈등보다 여권 질서를 다뤄나가는 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선 세종시 문제 등 휘발성이 강한 사안의 중심에 충청권 출신인 정운찬 후보자가 서 있다는 점은 청와대로서는 별로 잃을 게 없는 전개다. 정작 세종시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답을 해야 할 청와대는 한 발 빠져있을 수 있어서다.

정몽준 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배석자 없이 20분 정도 독대를 해 정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회동 직후 정 대표는 당에 돌아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흔히들 시중에서 22조 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숫자이다. 4대강 사업 예산은 정확히 15조 원"이라고 이 대통령의 입장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정기국회에서 예산 논란이 불가피한 4대강 사업 문제에 당이 적극적으로 방어선을 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내주로 예정된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에서도 가시적인 파열음은 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사 활동을 보고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기도 하지만, 박 전 대표로서도 현 시점에서는 특별히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만한 현안은 부상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도 "(최근) 유럽특사를 다녀왔기 때문에 특사로서 보고하러 가는 것"이라고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보인 일련의 행보 속에는 세종시나 4대강 문제 등의 정치 현안과 관련해 당정에 포진한 차기 주자군들에게 일정한 책임을 넘기는 세련된 정치술이 녹아있다.

또한 한나라당의 양보가 불가피한 선거제도 개편 등의 화두를 던짐으로써 개혁적인 면모를 확보하고, 당분간 민생현장 방문 등 '친(親) 서민' 행보를 병행함으로써 '통합의 이미지'까지 구축하는 성과를 노려볼 수 있게 됐다. 당장 '중도·서민' 행보를 통해 이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율은 40%대로 상승하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 지난 9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왼쪽)와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정치 프랜들리' 성적표는 두고 봐야

물론 위험 요소는 도처에 깔려 있다. 당장 목전으로 다가 온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가 우선적인 '관리'의 대상이다. 이미 야당은 정운찬 후보자의 논문 중복게제와 소득세 탈루 의혹에 공세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당에선 "제2의 천성관 사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기를 내비치고 있다.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의 경우에는 위장전입과 미성년 자녀의 주식투자 의혹, 백희영 여성부장관 후보자는 제자의 논문을 가로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만에 하나 인사청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흠집이 드러나 낙마 사태가 발생할 경우 모처럼 '잘 된 인사'라는 평을 받은 2기 내각의 출범이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야당은 10.28 재보선 직전까지 예정된 국정감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실태를 맹공할 계획이다. 결국 중도 통합과 친(親) 여의도 행보, 적(敵) 끌어안기 등 이 대통령의 정치 행보 성적표는 10월 재보선을 통해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선거가 너무 많다", "보궐 선거를 의도적으로 띄울 필요 없다", "선거얘기 자꾸하면 서민들이 짜증낸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사전 포석이겠지만, 10월 재보선의 승패가 신경쓰이는 청와대의 입장을 반증한다.

한편 당장은 잠재적인 차기 주자들의 등장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보탬이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호명함으로써 열린 '정치의 공간'은 차기 주자들의 엇갈린 이해관계 속에 장기적으로는 권력의 누수로 이어질 개연성도 적지 않다.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는 이를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 동안 '박근혜 대항마'로 인식됐던 차기 주자들을 전진 배치하고 경쟁시킨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대통령 주도의 정국운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이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그 시점은 지방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각 당 내의 줄다리기가 본격화되는 내년 상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당장은 훈훈해 보이는 이 대통령의 '정치의 계절'이 한 순간에 '혹독한 전쟁터'로 바뀔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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