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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여전히 삼성 임원인 줄 아는가?

[안종주의 안전 사회] '황유미 10주기'에 반올림 폄훼한 삼성 상무 출신 정치인

3월 6일이 어떤 날인지 알거나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래도 황유미, 황상기, 반올림을 알고 있는 이들은 국민 다수는 아니더라도 제법 있을 듯하다. 3월 6일은 이들과 관련된 날이다.

황상기 씨는 결코 이 날을 잊을 수 없다. 10년 전 이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다녔던 황유미는 숨을 거두었다. 황상기 씨는 일 년 열두 달, 365일 내내 딸이 그립다. 하지만 이날만 되면 마음은 더욱 아려온다.

2007년 3월 6일 유미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다. 황상기 씨는 직업이 택시기사였다. 차에 유미를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더는 해줄 일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뒷자리에 있던 유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차를 갓길에 세웠다. 아버지였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유미는 차에서 숨을 거두었다. 스물두 살이었다.

삼성 백혈병의 상징 황유미의 죽음으로 탄생한 반올림

황상기 씨는 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 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곧 반올림이 태어났다. 황유미의 죽음으로 반올림이 탄생한 것이다. 황상기 씨는 그때부터 줄곧 모든 일을 반올림과 함께해오고 있다. 반올림에는 노동단체, 인권단체, 교수단체, 의사단체, 연구단체 등 다양한 전문인들과 사회활동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삼성은 자신의 가족이었던 노동자들을 오랫동안 버렸다. 지난 10년간 79명이라는 엄청난 백혈병 등 피해자들이 숨질 동안 삼성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를 황상기 씨와 반올림, 그리고 삼성 백혈병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을 다룬 현장 기록 책 제목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으로 붙인 것에서 이는 잘 드러나고 있다.

3월 6일은 황상기 씨나 반올림만이 기억해야 할 날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 산재·직업병의 역사에서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할 역사적 날이다.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후진국 기업에서나 있을 법한 끔찍하고 엄청난 규모의 산업재해가 벌어졌다는 것은 삼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서도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직업병의 진실 감추기에 급급한 삼성과 처벌 방관한 대한민국

하지만 삼성과 대한민국은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삼성과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서둘러 치부를 덮으려 했다.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노동자들이 죽음의 물질들을 들이마셔야 했는지, 그 진실을 지금도 속 시원히 알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이 일로 삼성의 최고책임자나 고위 임원을 수사해 구속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삼성 백혈병 사건은 우리나라 산재·직업병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부끄러운 기록이다.

반올림 등 전문가단체는 삼성 백혈병 참사를 상징하는 3월 6일을 맞아 오전 11시, 삼성 직업병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 1만 서명지를 삼성 쪽에 전달하려 했으나 끝내 회사는 거부했다. 삼성은 1천억 원의 피해자 보상 기금을 출연한 것으로 삼성 반도체 직업병은 마무리됐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등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삼성 백혈병 10년과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와 유족들의 이야기를 최근에는 물론이고 10주년을 맞아서도 다루지 않고 있다.

3월 6일은 봄의 초입에 늘 찾아오는 영하의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저녁 7시 황유미 10주기를 추모하고 79명의 삼성전자 산재 사망 노동자를 함께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삼성본관이 있는 강남역 4거리 일대를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상징인 방진복을 입고선 79명의 영정 피켓을 들고 추모 행진을 벌였다.

이날 이들에게 꽃샘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이 터졌다. 황유미와 함께 숨진 많은 다른 여성노동자처럼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들어온 뒤 상무까지 올라 매스컴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추켜세우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이날 낮 기자들에게 한 반올림 폄훼 발언이 양식 있는 시민들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삼성 백혈병 추모일에 반올림 폄훼한 삼성전자 상무 출신 고졸 정치인

양 최고위원은 삼성 직업병 참사 상징의 날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올림이 유가족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시위꾼처럼 귀족노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삼성 본관 앞에서 반올림이 농성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유가족도 아니다. 그런 건 용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언론에 보도돼 물의를 빚자 양 최고위원은 뒤늦게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6일) 기자들과 식사자리에서 '반올림' 관련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에 사과드린다. 유가족 여러분과 오랜 기간 유가족의 곁에서 함께해주신 반올림 구성원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 올린다."고 뒤늦게 불끄기에 나섰다.

양 최고위원의 발언은 문재인 전 대표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문 전 대표는 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총선 때 자신이 영입한 양 최고위원이 '반올림' 활동가들을 "전문 시위꾼"으로 폄훼한 발언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과 유족은 저와 우리 당이 늘 함께 해왔다. 그분들께 상처가 됐다면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해야만 했다.

양 최고위원이 기자들에게 애초 밝힌 발언, 즉 "반올림이 유가족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시위꾼처럼 귀족노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말은 그 내용 자체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사실 그가 한 발언은 자신이 아직도 삼성전자 고위간부인 것처럼 착각했을 때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고졸 여성노동자들이 죽어갈 때 양향자는 삼성에서 무엇을 했는가?

자신의 동생뻘이 되는 수많은 고졸 여성노동자들이 회사가 가르쳐주지 않고 비밀로 했던 죽음의 물질을 들이마시며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달려갈 때 양 최고위원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또 이 문제가 사회 문제로, 세계적인 문제로까지 번져나가고 있음에도 회사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깔아뭉개는 행태를 보였을 때 회사에서 고졸 출신 간부로서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를 생각하면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뒤늦게 사과한 것은 그 내용과 방식 면에서 반올림과 삼성 백혈병 유가족들이 진정성을 느끼게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만약 진정한 사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기자회견을 통해 뉘우침을 진솔한 언어와 표정으로 보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500일간 밤낮으로 이어져온 농성현장을 찾아 무릎 꿇고 사죄하고 그들과 삼성 본관 앞 길바닥 농성장에서 1주일 또는 열흘간 함께하는 적극적 반성을 즉각적으로 하는 통큰 사과가 필요하다.

앞으로 참다운 정치를 하려면, 어렵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치를 하려면 적어도 이런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길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발탁해주고 키워준 사람과 조직까지 위기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런 자세는 필요하다.

진정한 정치인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이익을 대변

삼성 백혈병 사건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산재·직업병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대 사건이다. 모든 정치인들은 이 사건의 이러한 진짜 모습을 정면으로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반올림과 삼성 백혈병 희생자 유족에게 대못을 박는 발언을 한 것이다.

진정한 정치인은 결코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약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반올림은 지난 10년간 변함없이 고통 받는 약자의 이익을 위해 대변해왔다. 삼성 백혈병 유족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바로 그날 반올림을 폄훼한 것은 진정한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더 진정한 정치인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확실히 깨닫고 그 누구보다도 약자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자세와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가 숨진 날 벌어졌던 일들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우리가 안전한 노동현장을 가꾸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진정한 기업이라면 자신을 위해 몸을 바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만들어주었다.

▲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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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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