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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의 ‘독 안에 든 쥐’처럼 갖혀 ‘간첩조작’ 마수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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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의 ‘독 안에 든 쥐’처럼 갖혀 ‘간첩조작’ 마수에 걸리다

[홍춘봉의 광부아리랑] ㉙27년간 ‘광부간첩’ 올가미 쓴 이병규씨

한편 남편 이병규씨가 어린이 날인 5월 5일에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진 후, 부인 임순성(당시 32세)씨는 안절부절 했다.

남편이 보안사 수사관에게 불법 연행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임씨는 갑자기 집에 찾아온 낯선 사람에게 불려 나간 뒤 연락은커녕 행방을 모르자 다음날 버스를 타고 장성에 있는 태백경찰서로 찾아갔다.

“남편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됐는데 알 수 없느냐? 절대 집을 나갈 사람이 아닌데 어린 아이들이 3명이나 된다.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이병규씨 부인 임순성씨. ⓒ프레시안(홍춘봉)

그러나 경찰서에서는 알고는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아 속 시원한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우리도 모른다. 다만 납치되거나 잘못된 것 같지는 않으니 기다려 보는 게 좋겠다.”

경찰서를 나온 임씨는 평소 친하게 지낸 이웃과 남편 동료들을 찾아가 수소문했지만 누구도 행적을 안다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을 뜬눈으로 지내다시피 하던 임씨는 용하다고 소문난 장성의 한 철학관을 찾아갔다.

“남편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됐는데 도무지 찾을 수도 없고,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 속이 터진다.”

이리 저리 점괘를 보던 무속인은 “남편은 독안에든 쥐처럼 잡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빼낼 방법이 없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그래도 남편이 살아 있다는 무속인의 말에 안도는 했지만 옴짝달싹 못하고 잡혀 있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며,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인은 태백에서 남편의 생사문제로 안절부절 하고 있는 사이에 강릉보안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던 이병규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온갖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보안사 수사관들이 이씨가 장성광업소에서 상포계라는 지하조직을 구축하고 장성사태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로 몰아가자 자신이 미치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버려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소총을 든 보초가 잠시 조는 사이에 지하 취조실을 빠져나와 지옥 같은 보안대를 탈출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때 “내가 탈출하면 나는 영원히 간첩으로 몰리고 만다. 차라리 견디기 힘들더라도 이 고비를 잘 넘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씨는 강릉보안대 탈출을 포기하고 다시 지하 취조실로 돌아와 먹먹한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이씨는 살아나갈 묘안을 생각 하였다.

말하자면 보안사에서 자신을 간첩으로 몰아넣는 완전범죄를 꾸미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 이에 대한 현명한 대처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사관들이 북한에 피랍된 뒤 풀려나와 15년간 간첩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작하고 있다. 특히 장성광업소에서는 지하당 조직을 만들어 장성사태를 배후조종한 혐의로 뒤집어쓰면 나는 틀림없이 그대로 당하고 동료들도 억울하게 당할 것이다. 이대로 당하면 너무 억울하다. 그러자면 수사관들과 협상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생각이 미치자 다음날 이씨는 수사계장이자 수사책임자인 서준석(가명)준위와의 면담을 신청하였다.

“수사계장! 내가 당신들의 요구대로 따르겠다. 그러니 내 요구를 들어 달라”

“좋다. 무슨 내용인지 말해라!”

“당신들이 확인해 봤지만 상포계는 말 그대로 광업소 회원들의 애경사를 돕는 친목계에 불과하다. 더구나 상포계는 동료들이 만들고 나는 마지못해 가입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느냐. 그리고 동료들은 아무 죄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끌어들이지 마라. 나 혼자만 잡아넣으면 되지 다른 사람들과는 연관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라. 또 억울하게 해직된 김흔동을 복직시켜라. 그러면 내가 당신들이 요구하는 대로 해주겠다.”

수사계장인 보안사 준위는 이씨가 순순하게 나오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우리에게 협조만 해 준다면 처자식들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 우선 부인을 태백시 철암동 강원탄광에 취업시키고, 장성광업소에서 퇴직금도 많이 받도록 해 주겠다. 또 너는 형을 몇 년 받든지 신경 쓰지 말고 2년이 지나면 우리가 석방시켜 줄 방침이다. 그러니 한 2년만 고생할 생각을 해라.”

이후 보안사 수사관들은 이병규의 간첩행위에 대해 일사천리로 수사를 진행해 나갔다.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이르자 보안사 수사관들이 이병규를 봉고차에 태워 이병규가 근무하던 인천지역 공장과 광명시, 태백시 장성광업소와 그의 집을 돌며 속칭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이씨는 현장검증을 하면서 자신이 보안사의 간첩조작 음모에 협조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15년 간 지나치고 보고 겪은 모든 행동이 간첩행위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당시 보안사 수사관이 작성한 이병규에 대한 범죄행위 일람표는 자신이 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장성광업소 근무당시 간첩행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보안사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사실을 간첩행위로 조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980년 5월 중순,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철암갱 선산부로 종사하면서 종업원 수, 예비군 훈련사항 및 생산에 관한 사항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장성광업소 철암갱은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 있고 종업원은 약 900명 정도이다. 장성광업소 산하에는 장성갱, 중앙갱, 개발갱, 문곡갱, 금천갱. 철암갱, 건설갱 등 7개 갱이 있고 철암갱에는 무연탄을 월 5만톤 생산한다.

장성광업소에서 생산된 무연탄은 전국적으로 분산, 운반되어 사용된다.
장성광업소 전체 광부는 5500명 정도이고 직장예비군은 약 2700명이며 장성광업소 전 광부는 노동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노조맹비를 월 급여의 0.8%를 내고 있다.
또 철암갱에는 채탄부, 보갱부, 소운반, 굴진부 등이 있고 노동자의 학력은 대다수 중졸 정도이다. 등의 중요 광산에 대한 인원, 생산능력, 및 예비군 훈련에 관한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했다. ...

“금번 노조지부장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며 은연중 광부들의 불평불만을 고조시켜 기업주인 광업소 측과 대립의식을 고취시켰다. ...

1985년 3월 5일 장성사태가 절정에 달했을 때 철암 한 탈의실에 모여 있던 광부들에게 선동하여 장성광부들의 시위에 가담시키려고 좀 더 자극을 가하면 부녀자들도 가담하는 등 시위가 가일층 확대되어 최소한 태백시 정도는 북괴가 지령한데로 완전히 사회기능이 마비되는 큰 소요가 일어나서 결정적 시기가 앞당겨 질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실천할 목적 하에 그 자리에 있던 동료 광부들에게 “장성에서 직선제를 위하여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우리도 장성에 가서 힘을 합세해야 할 것 아니냐”고 선동 선정하여 광부들의 채탄작업을 거부하고 장성에 가서 시위에 가담케 하고 자신은 신분노출을 우려 일단 귀가하고. . . >

보안사 수사관들이 이병규에 대한 ‘간첩조작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검찰 송치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이었다.

지하취조실에서 지상의 사무실로 불려 나온 이씨 앞에 덩치가 헤비급의 레슬링 선수 같은 사람이 양복을 입고 있다가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 이병규씨! 반갑습니다. 나는 청와대에서 내려온 사람인데 솔직하게 진술해야 한다. 당신이 간첩인지 아닌지 나에게 솔직히 말했으면 한다. 진실을 말하면 살 수 있다.”

당시 사무실에는 보안사 수사관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청와대에서 왔다는 덩치 큰 사내는 품위도 있었지만 무척 친절하고 자상한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진실을 말하면 살 수 있다고 너무나 ‘인간적인’ 제안을 하는데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씨는 작심을 하고 덩치 큰 사내에게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수사관들이 무려 한 달간 고문과 폭행을 가하는 바람에 하지도 않은 간첩활동을 했다고 거짓 자백을 했습니다. 이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선생님!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살려달라는 말이 끝나자 신장이 185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이 새끼, 거짓말을 한다.”며 머리통만한 주먹으로 이씨의 안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10여 분간에 걸친 주먹질이 끝나자 “이 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으니 죽여 버려!”하고 수사관에게 지시했다.

당시 보안사는 이씨에 대한 취조와 사건조서를 모두 마무리 하자,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는 수사관인 이 거한을 불러들여 마치 청와대에서 시찰 나온 것처럼 해서는 (이씨의)마음을 떠 보게 한 것인데 순진한 이씨가 이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결국 이병규씨는 다시 보안사 수사관들에게 30여 분간에 걸쳐 구둣발을 시작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인정사정없이 폭행을 당하다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자 수사관들이 다시 회유에 나섰다.

타박상에 바르는 맨소래담 로션을 가져온 수사관이 이씨의 온 몸에 로션을 바르며 말했다.

“이것을 바르면 몸이 좀 나아질 것이다. 못이기는 척하고 답변을 제대로 하지 왜 엉뚱한 말을 해서 이렇게 쓸데없이 고초를 겪느냐.”

며칠 뒤 보안사에서 연락을 받고 온 KBS 강릉방송국 카메라와 취재기자가 와서 촬영을 한다고 했다.

이씨는 방송국 기자에게 사실을 말하면 자신의 억울한 간첩조작 내용이 제대로 밝혀질 것으로 기대를 하였다.

“나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간첩도 아닌데 고문과 폭행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었다. 그러니 제발 진실을 보도해 달라.”

이씨의 호소를 들은 방송국 기자는 이씨의 말을 흘려 듣고 보안사 수사관에게 그대로 전했다.

“저 사람이 폭행과 고문으로 간첩이 되었다며 억울하다고 말하는데 어찌된 일이냐?”
“그 자식,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보안사 수사관이 다시 모진 폭행을 자행했다.

당시 이씨는 방송국 기자를 믿었는데 보안사 수사관에게 그런 내용을 그대로 말한 사실을 알고는 한숨을 쉬며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고 말았다.

KBS 취재기자는 포승줄에 묶인 이씨를 광부간첩으로 촬영하고 태백으로 이동한 뒤 이씨의 집과 장성광업소 철암갱 등을 촬영해 탄광촌을 거점으로 한 고정간첩으로 보도를 하였다.

▲이병규씨 등 조작된 간첩을 실제 간첩으로 보도한 동아일보 1985년 1면 보도. ⓒ프레시안(홍춘봉)


이윽고 보안사의 수사가 최종 마무리 되자 수사계장이 회심의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내일, 너는 검찰에 넘어 간다. 사건이 검찰에 넘어간다고 우리 손을 벗어나는 게 아니다. 구치소에 가더라도 우리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가 부를 수 있다. 그러니 순순히 우리 지시에 따라야 후환이 없다.”

이윽고 보안사의 이씨에 대한 고정간첩 행위 수사기록과 이씨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으로 이첩되면서 이씨는 강릉구치소에 수감 되었다. 1985년 6월 22일 이씨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1985년 5월 5일 보안사 수사관에게 불법 체포, 연행된 지 무려 1개월 19일 만에 이씨에게 법적 구속력을 갖춘 영장이 발부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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