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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조순·이수성과는 다른 길을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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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조순·이수성과는 다른 길을 걸을까?

집권자에겐 꽃놀이패, 당사자에겐 허망했던 이력들

1988년 1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개혁적 경제학자인 조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부총리로 전격 발탁했다. 이후 조 전 부총리는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됐지만 어지러운 행보를 걷다가 민주국민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정치경력을 종결했다.

1995년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직선 총장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신망이 높았던 이수성 법학과 교수를 총리로 지명했다. 1년 4개월 여 동안 대과 없이 총리직을 수행한 그는 이른바 '신한국당 9룡'으로 떠올랐지만 결국 민국당에서 조 전 부총리와 만났다.

2009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조순 교수의 직계 제자이자 이수성 교수의 직선총장 후배인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총리지명자로 발탁했다. 정 교수는 다른 길을 걸을까?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던 조순과 이수성

▲ 정 후보자는 조순 전 부총리의 애제자이자 이수성 전 총리의 서울대 총장 후배다ⓒ프레시안

경제학계의 거두로 개혁적 이미지가 강했던 조순 교수는 노태우 정부의 경제부총리직을 무난히 수행했다.

이후 학계로 돌아갔던 조 전 부총리는 1995년 지방자치제가 개막될 때 DJ와 손을 잡고 서울시장에 출마해 외국어대 총장 출신인 민자당의 정원식 후보를 꺾었다. 학자 출신으로선 드물게 대중성까지 겸비하게 된 조 전 부총리의 정치적 중량감은 날로 커졌다.

조 전 부총리의 제자인 유시민 전 장관은 "제3 후보 아니면 정권교체 못한다"는 부제가 붙은 '97 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DJ의 대통령 당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면서 "김대중은 직접 출마하기보다는 제3의 후보인 조순 서울시장을 대리전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DJ는 DJP연대를 통해 난국을 돌파했고 설 자리를 잃은 조 전 부총리는 일부 의원들을 이끌고 한나라당에 합류해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조 전 부총리는 1, 2대 한나라당 총재를 지내며 1998년에는 강릉 재보궐선거에 당선, 국회에도 입성했지만 이번에도 거기까지였다. 한나라당의 오너 격인 이회창 총재에게 밀려난 조 전 부총리는 김윤환, 박찬종, 김상현, 이기택 등 '어제의 거물'들과 손잡고 민주국민당을 창당해 대표최고위원에 올랐지다. 하지만 민국당은 16대 총선에서 처절하게 패배했고 조 전 부총리는 정계를 떠났다.

이수성 전 총리의 스토리도 조 전 부총리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직선 서울대 총장과 '전국에 형님동생이 3만 명이라더라'는 양가적 장점을 지녔던 그는 총리직에 오르면서 단박에 차기후보군 대열에 합류했다.

총리 전임자였던 이회창 선진당 총재의 꼬장꼬장함에 넌더리가 난 YS는 이 전 총리에게 힘도 많이 실어줬다. 신한국당 경선 때 "'김심'은 이수성에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지만 이회창은커녕 이인제에게도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고배를 마셨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 전 총리는 각광을 받았다. 국민의 정부 출범 때부터 만 2년 동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여권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민국당의 창당주역이 됐으나 16대 총선에서도 낙선하고 만다.

이후 2007년 대선에서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라는 조직을 통해 대권도전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완주하지도 못했다. 결국 2002년 민국당 실패로 인해 조 전 부총리와 같이 정치적 생명이 다한 셈이다.

노태우, DJ, YS가 거둔 효과MB도 마찬가지

조순·이수성의 정치역정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들을 발탁한 최고 권력자들은 톡톡한 효과를 거뒀다.

직선 대통령이긴 했지만 군부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지녔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개혁적 학자에게 경제를 맡길 정도의 '호방함'을 과시했다. 세 번째 대선 실패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순 시장 당선으로 민심이 확인된 지 2주 만에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이수성 총리'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후반기 흐트러져가던 내각을 무난히 관리했고 YS와 차별화로 급속히 성장해가던 이회창 총재를 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YS입장에선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역할을 수행한 카드였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운찬 카드'도 꽃놀이 패다. 2년 전만해도 현 야권의 주목을 한 몸에 안았던, 노무현 정부의 여러 러브콜도 거절했던 개혁적 학자를 영입했다는 것 자체가 득점이다. '중도통합'의 명실이 상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차기후보군 성격과는 거리가 있는 심대평 카드보다 충청권 민심을 견인할 요소가 훨씬 더 크다. 수도권 3, 40대 민심도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박근혜 견제용'으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한나라당 후보군의 일원인 정운찬'은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위치를 오른쪽으로 밀어낼 수 있다.

'총리 정운찬'이 맡은 바 소임을 잘하면 이 대통령의 용인술도 빛이 날 것이고 걸맞는 무게를 실어주면 된다. '총리 정운찬'이 기대에 못 미치면 일회용 카드로 치부하면 된다. 이 대통령이 그에게 갚아야 할 정치적 빚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든 저렇든 이 대통령이 손해 볼 일은 없다. 그런데 이 대통령과 정 지명자의 손익계산이 일치할 수 있을까? 노태우-DJ와 조순, YS와 이수성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았다.

'조순과 이수성 중간 쯤'이라는 말의 의미

▲ 조순 전 부총리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공저한 경제학원론ⓒ율곡출판사
물론 '정운찬의 미래'는 정운찬에 달렸다. 조순, 이수성의 경우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훨씬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했고 주위에 멍석을 깔아주는 인사들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본인들이 결정적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친화력과 정치력이 대한민국 최고라던 이수성 전 총리도 정치판에선 아마추어였다.

정 후보자에 대해선 '여러 면에서 조순과 이수성 중간 쯤 된다'는 평가가 많다.

양자의 장점을 겸비했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뒤집어 보면 '친화력이나 대중성은 이수성에 못 미치고 학자로서의 권위와 능력은 조순에 못 미친다'는 뜻도 된다.

조순-정운찬 학파의 일원으로 꼽히는 한 교수는 "총리직 수행보다 정치인, 차기 대권주자군으로 합류한 것이 더 걱정이다"면서 "(정 후보자의) 스타일상 조순 선생님보다 (정치인 노릇을) 잘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에도 결단력이나 리더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라며 이같이 말했다. 2년 전과 달리 한나라당 예비후보군이 돼버린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되면 민주당이나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여권 내에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상황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2년 전 각광을 받을 때 정 후보자가 보여준 모습만 보면 조순·이수성을 뛰어넘는 정치력을 발견하긴 힘들다. 그동안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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