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국방장관이 내년도 국방예산 삭감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로 보내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개각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 장관의 이같은 조치에서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결기까지 엿보인다.
"국방개혁 청사진에 상당한 지장…군 반발도 예상"
국방부는 26일 "전날 이 장관이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외교안보수석, 경제수석, 그리고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국방예산의 안정적 확보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서한을 인편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서한에서 이 장관은 "군은 안보환경 등을 고려해 내년도 예산안을 전년 대비 7.9% 증액하는 쪽으로 편성했지만 관련부처에서 3.8% 증가로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국방예산안이 애초 편성안보다 줄어든다면 국방개혁기본계획 수정안을 실행하는 내년부터 당장 국방개혁 청사진을 펼치는 데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당초 내년도 예산안을 전년 대비 7.9% 증가한 30조7817억 원으로 편성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했지만, 관련부처 협의과정에선 3.8% 증가로 줄어들었다.
이 장관은 "대통령이 결심하시면 군은 복종하고 시행하지만 결정하시기 전 군의 현실을 인식해 주시길 바란다"며 "군의 전력증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국방예산이 감액된다면 군내뿐 아니라 예비역들의 반발도 예상된다"라고 경고했다.
▲ 이상희 국방장관. ⓒ뉴시스 |
예산안 삭감은 'MB맨' 장수만 차관 작품…"하극상으로 비쳐질 수도"
특히 이 장관은 이같은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장수만 국방차관이 독자적으로 관여했음을 지적하며 이를 '하극상'이라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장 차관은 지난 7월 국방부 예산관련 워크숍을 주관하면서 "줄일 것이 있으면 줄여야 한다"면서 애초 11.5% 증가토록 편성된 방위력개선비를 5.5% 가량 줄이는 안을 만들어 이달 초 장관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차관은 과거 재정경제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조달청장 등을 거쳐 올해 초 개각과 맞물려 단행된 차관 인사에서 국방차관에 임명됐다.
경제부처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국방부 요직에 배치된 셈이어서 당시에도 다소 의외의 인사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관의 이번 항의가 '실세차관'들이 중심이 된 '차관정치' 모델의 부작용으로까지 해석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장 차관은 신재민 문화부 차관, 이주호 교육부 차관, 박영준 국무총리실 차장,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별도 테이블을 꾸린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장관은 "차관의 행동이 일부 군인들이 봤을 때는 하극상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차관의 개인적 사견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국방부 측은 "이 장관은 서한을 보내기 전 군의 전력증강 예산안 삭감안을 단독으로 보고한 장 차관의 '돌출행동'에 대해 상당히 질책한 것으로 안다"면서 "재정부처 출신 차관의 부임으로 안정적인 국방예산 확보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는데 내부에서 상당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희 장관은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김종태 기무사령관과도 불편한 관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류우익 전 대통령 실장과 인척관계인 김 사령관 임명 이후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부활하고, 류 전 실장이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 각군 참모총장을 불러 따로 면담을 갖는 등 업무라인에서 장관이 배제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당황한 靑 "항의서한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한편 파문이 일자 청와대는 즉각 "항의서한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는 "이상희 국방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에 편지를 보내면서 참고하라는 차원에서 청와대에 전달할 것"이라며 "구체적 내용도 국방예산의 어려움 등을 설명한 것이지 항의라든지 극단적 표현은 없는 것으로 본다"고 해명했다.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 당시 국방부는 예비역과 전문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국방부 주변에서 이미 '이 장관이 마음을 비웠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은 가운데 이번 서한 파동이 쉽사리 가라앉을지 의문이다.
또한 이 문제는 내주로 다가온 개각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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