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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대란'…타미플루 '강제 실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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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대란'…타미플루 '강제 실시' 가능할까?

정치권 뒷북 요란…MB "긴급 예산이라도 배정해라"

신종플루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개학을 앞둔 각급 학교의 휴교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도 '뒷북' 대응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 대통령 "긴급 예산이라도 배정하라"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긴급 예산을 배정해서라도 신종플루 치료제를 충분히 확보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라"면서 "무엇보다 신속·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신종플루 등 신종전염병 관련 예산을 전년도 대비 25억 원 감액한 바 있고 신종플루 대비 치료제 예산도 21억 원이나 깎았다. 보건당국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시급히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기획재정부 등에서는 '그게 급하냐'는 식이었다"면서 "6월 말까지도 그런 상황이었고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겨우 예산이 배정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달 14일 국무회의를 열고 신종플루 예방백신 구입 비용을 1748억 원 책정했지만 이미 전 세계적 공급 부족 상황이 심각해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치료제로 사용되는 타미플루 복제약 생산 강제실시에 대한 갑론을박도 뜨겁다.
▲ 세계적 물량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타미플루. ⓒ한국로슈

복지부 장관 "위급하면 강제 실시한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세계보건기구(WHO) 주최로 열린 신종플루 관련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한국 기자들을 만나 "아직 약이 있는 현 상황에서 강제 실시를 하면 국제적 신의에 맞지 않다. 그러나 아주 위급하면 해야 한다"면서 "신종플루가 만연한 시기엔 제네릭(복제 약)과 백신 생산이 원활하도록 특허 보유 업체가 이익을 넘어 협조하는 게 제약회사의 본분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처음으로 강제 실시권을 언급한 것. 이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다른 당국자들은 "당장 그럴 상황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특허권 강제 실시는 공익적·비상업적 목적을 위해 특허 기술을 정부가 사용하는 것. 위급 상황 발생 시 기업의 특허 권리를 무시하고, 복제 약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때에도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는 지급된다. 타미플루의 경우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가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한나라당 제5정책위원장인 신상진 의원도 24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강제적으로 복제 약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 장관에게 힘을 보탰다. 대한의사협회 회장 출신인 신 의원은 "현재 타미플루를 15∼20% 확보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이 되면 더 많은 양의 약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정책위의장도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강제 실시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도 이날 "당장 강제 실시권을 시행해야하고 국가 예산으로 전염병 예방과 치료를 해 돈이 없어 병에 걸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신당도 이날 관련 특위를 발족시키면서 강제 실시 시행을 촉구했다. 나아가 진보신당은 "돈벌이 의료만 추구하고 시급한 전염병 등 공중보건에는 무능한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강제 실시에 국제 시각 싸늘할 수도

하지만 강제 실시권이 실제로 발동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대응이 늦은 정부의 립서비스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볼 때는 돈도 좀 있는 나라에서 국제 공조나 예방 조치에 적극적이지도 않다가 갑자기 강제 실시를 언급하고 나오니 얄미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위급 상황'이라는 것이 주관적 판단일 수 밖에 없다"면서 "현재 우리 상황이 강제 실시권을 발동할 만하다는 공감대를 국제적으로 얻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WTO/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 제31조는 강제 실시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특허권 보유자는 WTO에 강제 실시 취하를 청구할 권리도 갖고 있다.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이날 "주무장관이 해외에 나가서 특허 정지 강제 실시권을 장담하고 있는 것은 언뜻 듣기에는 그럴싸하고, 시원, 통쾌, 유쾌하다"면서 "그런데 신종플루가 어제 오늘의 일인가?"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세계 10대 교역국가가 예산도 깎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다가, 이제 와서 국제법상 보호를 받는 특허권에 대해 저개발국가나 쓸 수 있는 충격적이고도 원시적인 방법을 쓰겠다니, 어설픈 대응의 극치를 보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강제 실시가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라면서 "저개발국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전염병답게 치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고, 민간의료기관도 전염병 치료 지정병원을 강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부터 해야 한다"면서 "문제는 차근차근 정석대로 풀자"고 덧붙였다.

"가격 문제가 아니라 물량 문제 때문에 강제 실시 필요"

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김명희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그간 대응 자세나 한국의 국제적 위상 등을 볼 때 강제 실시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을 수는 있다"면서도 "그래도 강제 실시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금 상황이 위급하냐 아니냐를 따지긴 쉽지 않은 일이다"면서 "하지만 국내 물량 확보량이 워낙 부족하다는 점에서 강제 실시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브라질, 남아공, 태국 등에서 에이즈 백신 등에 대한 강제 실시가 있었고, 2005년 조류독감 유행이 아시아 지역을 강타했을 때 타이완에서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 실시를 발동한 사례도 있다"면서 "강제 실시는 반드시 특허에서 비롯된 가격 접근성이 문제가 될때만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저개발국 에이즈 백신 강제 실시의 경우 가격 문제가 주요인이었지만 급격히 창궐하는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돈이 없어 못 사는 상황이 아니라 물량 확보 차원에서 강제 실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미국 역시 지난 2001년 9·11테러 직후 탄저균 테러가 횡행했을 때 치료제인 사이프로베이에 대한 강제 실시권을 심각하게 검토한 바 있다. 의약품에 대한 강제 실시는 복지부장관이 요청해 특허청장이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의약품에 대한 강제 실시가 발동된 전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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