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을 내건 녹색당과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복지국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주로 엇갈리는데요.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히자, 정원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프레시안은 반론, 재반론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편집자
2월 28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이상이 교수의 칼럼("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을 보고 기본소득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로서 토론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일단 반가움이 앞섰다.
여기서 이 교수는 요즘 대선 국면에서 회자되는 "가짜 기본소득" 때문에 "불편하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교수의 기본소득 개념에 대한 오해와 몇 가지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 인해 이 교수만큼이나 불편하다. 그래서 우선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과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에 대해 명확히 함으로써 작으나마 토론이 올바르게 전개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관련 기사 :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먼저, 이상이 교수는 기본소득의 정의를 "첫째, 자산 조사 없이 다른 소득이 있더라도 개인 단위로 매달 현금을 균등하게 지급한다. 둘째, 노동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되, 생계 보장과 사회 참여가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소득을 지급한다. 이 원칙들을 충족해야 '진짜 기본소득'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짜'"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월 62만 원 이하의 금액이나 알래스카 사례(금액 미기재)는 "가짜"이고, 작년에 부결된 스위스의 기본소득만 유일하게 "진짜"라고 주장한다.
물론 기본소득의 정의에 대해서도 논자마다 다른 견해를 가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세계적 네트워크인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 : Basin Income Earth Network)는 각양각색의 정의들을 종합하여 그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즉, 기본소득은 1) 정기적으로, 2) 현금으로, 3) 개인 단위로, 4) (자산 조사 없이) 보편적으로, 5) (노동 또는 노동 의사에 대한 요구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다(www.basicincome.org).
이 교수의 정의를 이것과 비교해 보면, '정기성'이 '매달'로 국한되어 있고, "충분한 소득"이라는 소위 '충분성'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다. '정기성'은 분기 단위, 1년 단위 등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매달'로 국한한 것은 작은 오류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충분성'의 추가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금액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의 현금지급은 위의 다섯 가지 특징을 충족하더라도 "가짜 기본소득"이고, 정확하게는 "기본소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충분성 요소에 대해서는 논란이 너무 커서 BIEN도 그것을 공식적 정의에 포함시키지는 않고, 금액이 모든 개인의 사회‧문화적 참여에 충분할 경우를 '완전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으로, 그에 미달할 경우를 '부분 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으로 구분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러면서 부분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을 유지한 채 소득을 추가하는 낮지만 점증하는 기초(low and slowly increasing basis)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국제적 합의가 철칙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상이 교수는 BIEN의 공식적 정의를 도외시하고, 독자적으로 충분성을 기본소득 정의에 포함시킴으로써 기본소득의 개념을 협소화시키고, 부분 기본소득을 "가짜"라고 비난하고 있다. 무언가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이런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무리수는 이 교수가 기본소득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을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사실, 기본소득은 우파의 주장을 담기에 매우 좋은 그릇이다. 그래서 본래 기본소득 제도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가 주목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거장인 밀턴 프리드먼, 일본의 극우파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 최근의 핀란드 시필레 정부를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 관계가 틀렸다.
기본소득 사상은 저 멀리 16세기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적 이론 체계를 갖춘 것은 1980년대 중반, 네덜란드의 로버트 판 더 밴(Robert van der Veen)과 벨기에의 필립 판 빠레이스(Philippe van Parijs)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이들 논문의 제목이 "공산주의로의 자본주의적 길"(A Capitalist Road to Communism)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우파가 아니라 좌파 이론가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까지도 BIEN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이상이 교수가 언급한 대로, 신자유주의의 거장인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에 기본소득과 유사한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 소득 이하의 저소득층에게 보조금(부의 소득세)을 지급하는 제도로 자산 심사(소득 심사)를 전제로 하고 있어서 '보편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기본소득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 교수가 "기본소득은 본래 우파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소득 논의의 흐름에 대한 왜곡이다.
물론 기본소득은 좌파뿐 아니라 우파 중에서도 지지자가 있다(동시에 좌‧우파 모두에 반대자들도 있다). 그리고 우파들은 대체로, 이 교수의 주장처럼, 다른 사회보장 제도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서 복지 수준을 하향시키자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교수가 "진짜(충분한 금액이 지급되는, 좌파적) 기본소득"은 없고 지금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모두 우파인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이고 일방적인 아전인수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의 구체적 모델은 지급 대상(보편성), 금액의 수준(충분성), 기존 사회보장과의 통합(대체) 수준(통합성), 재원 조달 방안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으며, 좌파적으로도, 우파적으로도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 부연 설명하자면, 기본소득이 '보편성'을 갖지만, 그것은 국민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산 심사가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특정한 연령대와 특정 집단(예컨대 장애인)으로 지급 대상을 국한하는 것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리고 '충분성'은 애초에 기본소득 정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금액이 낮은 부분 기본소득이라고 해서 "가짜"는 아니다. 또 '통합성'은 선택의 문제이지, 이 교수의 주장처럼, 모든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사회보장보다 낮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본소득으로 통합하자는 우파적 모델도 있고,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존 사회보장을 유지하자는 모델, 충분한 금액을 지급하면서 통합하자는 좌파적 모델도 있다. 끝으로 재원 조달과 관련해서는 조세 체계의 개혁(예컨대 소득세 폐지와 부가가치세로의 일원화)이나 공유 자산세(토지세, 환경세, 인공지능세 등) 신설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요컨대 기본소득의 모델은 "가짜"(우파적) 모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의 요소들을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 캐나다의 Young & Mulvale에 따르면, 기본소득의 모델은 이념형(ideal types)적으로 세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즉, 적은 금액의 기본소득으로 기존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최소주의적 자유주의 모델'(minimalist-libertarian model), 기존 사회보장을 유지하면서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혼합 복지 모델(mixed welfare model), 그리고 충분한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존 사회보장과의 통합에 대해서는 유동적인 '강한 기본소득 모델'(strong basic income model)이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교수가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 공약은 "가짜", "꼼수" 또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기본소득이다. 즉, 지급 대상을 아동, 청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 등으로 국한하고(토지 배당은 전국민), 금액이 낮은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며, 기존 사회보장은 유지하고, 국토보유세라는 새로운 세원을 개발한 '혼합 복지 모델'의 기본소득이다. 그에 대한 세세한 분석은 생략하고, 나는 그 공약이 이 교수 말대로 "초보적 복지국가"인 우리나라의 복지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
이상으로 이상이 교수의 '기본소득 반론'을 개념과 사실관계 위주로 검토해 보았다. 혹시라도 재반론이 있다면, 기본소득 논의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논점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하고, 두 가지만 간단히 지적하고 마무리 하고자 한다.
앞에서 이 교수가 우파의 사례로 일본의 극우파인 하시모토를 언급하였는데, 그가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주된 이유는 공공부조 지급을 위해 실시하는 자산 조사(means test)가 없어서 행정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좌파도 인정하는 기본소득의 장점이다. 저소득자에 대한 '낙인 효과'가 없다는 장점과 함께.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보편적 사회 수당을 기본소득이라 한다고 "꼼수"라 비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열정적인 복지국가론자인 오건호 내만복 운영위원장의 다음 말로 갈음하고 싶다. "사회수당이 왜 기본소득이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 무엇이면 어떤가, 오늘 걷는 길이 같으면 함께 가면 된다." (<경향신문> 201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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