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수사관들은 이병규의 장성광업소 채탄감독을 했던 임종철(원주거주)씨를 타깃으로 삼았다.
대의원이었던 임씨는 장성광업소 노조사무실에서 정기 대의원대회에 참석했다가 잠시 휴식을 위해 자리를 뜨자 짧은 머리가 임씨를 불렀다.
“임 반장님!”
“ ? ”
“잠깐 협조할 사항이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시오!”
수사관이 타고 온 봉고차에 태워진 이씨는 황지와 통리를 거쳐 바닷가 임원항에 도착했다.
임원의 한 식당에 들어간 이들은 임씨에게 회덮밥을 시켜주었고, 밥을 먹으며 물었다.
“이병규에 대해 의심나는 행동이 없었느냐?”
“북한에 다녀왔다거나 북한이 남한보다 살기 좋다,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한 적이 없느냐?”“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병규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회덮밥으로 점심을 마친 이들은 임씨를 다시 봉고차에 태웠다.
임원을 출발한 봉고차는 동해안을 거쳐 강릉이 가까워지자 임씨의 눈을 검은 천으로 가렸다.
영동공사라는 간판이 붙은 강릉지구 보안대 취조실로 불려간 임씨를 향해 보안사 수사관의 취조가 시작됐다.
“앞에 있는 백지에 장성광업소 철암항 채탄선산부로 근무하는 이병규에 대해 아는 대로 작성해라. 당신이 이병규의 채탄감독이니 누구보다 이병규의 행동을 잘 알 것 아니냐!”
이씨는 무려 이틀에 걸쳐 손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수십 장 분량의 자술서를 썼다.
수사관은 임씨가 쓴 자술서를 보자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야, 지금 알맹이도 없는 글을 쓰고 장난치는 거야! 이 새끼!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작성해라”
그런 다음 보안사 수사관은 임씨를 향해 벽에 있던 야전침대 각목으로 어깨와 가슴, 등짝을 향해 무자비하게 폭행을 시작했다.
비명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그에게 수사관은 인정사정없이 무려 30분간 폭행을 계속했다.
임씨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후 자술서를 다시 써야 했다.
그러나 24시간 내내 작성한 자술서는 수사관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 새끼, 도저히 말로는 안 되는 놈이네.”
덩치가 황소만한 수사관이 이번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타났다.
야구방망이로 임씨의 온 몸을 다시 구타하기 시작한 수사관은 임씨가 개구리처럼 온 몸을 바르르 떨며 쭉 퍼지자 폭행을 멈췄다.
당시 온몸을 야구방망이로 두드려 맞은 임씨는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는 수사관을 향해 사정했다.
“제발, 살려 주십시요!”“좋아,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을 줄 알아”
“담배, 한 대만 주십시오”
담배를 입에 문 임씨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우선은 자신이 살아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보안사 수사관이 원하는 자술서를 어떻게 쓸지 몰라 안전부절 했다.
이렇게 고민하던 차에 처음 보는 보안사 수사관이 취조실에 들어왔다.
자신을 헌병대 출신이라고 밝힌 수사관을 보고 잠시 안도한 임씨는 “나도 헌병대 출신”이라며 “사실 나는 이병규가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한 사실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무조건 그런 사실을 밝히라면 어떻게 써야할지 모른다. 그러니 어떻게 써야할지 도와주십시오.”
헌병대 출신 수사관이 잠시 미소를 짓더니 취조실을 나갔다가 두툼한 서류다발을 들고 와 임씨에게 보여줬다.
“이게 경찰의 이병규 사찰기록인데 어떻게 자술서를 써야할지 참고가 될 것이니 여기에 맞춰 쓰면 된다”
보안사 수사관이 가져온 이병규씨의 사찰기록에는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자신이 이병규에게 500만 원의 선거자금을 지원받아 대의원에 당선됐고 이병규가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단결, 투쟁해야 한다’는 등 광부들을 선동하는 연설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 사찰기록에는 또 자신의 후배인 황덕수(가명, 태백거주)와 철암항 부항장인 이진수(가명. 강릉거주), 이창호(가명. 서울거주), 김덕수(가명 부천거주)씨 등 4명이 이병규가 수상한 언행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찰기록에는 마치 이병규가 장성광업소에서 간첩활동을 구체적으로 한 것처럼 조작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씨는 이병규가 그런 행동을 한 사실이 전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 사찰 내용을 근거로 자술서를 작성했다.
어차피 동료들이 작성한 사찰기록을 보면 이병규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내용이기에 현재는 다급한 위기를 모면한 뒤 나중에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임씨가 작성한 자술서를 본 수사관이 흡족한 표정을 짓다가 “아니, 잘 쓰기는 했는데 너무 내용이 약하다. 좀 더 화끈하고 강하게 써라!”
어차피 허위사실을 기록한 상황에 살을 더 붙이라는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결국 보안사 수사관들의 모진 폭행과 협박을 견디지 못한 임씨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술서를 써주고 말았다.
임씨는 강릉보안대에서 연행 1주일 만에 석방되자 새빨간 거짓말로 이병규를 간첩행위를 한 것처럼 몰고 자신까지 구렁텅이로 빠트린 동료들을 혼낼 계획을 세웠다.
우선 엉터리 진술서를 쓴 이진수 부항장과 후산부 이창하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2리터짜리 대형 소주3병과 돼지고기 등 안주를 준비한 임씨는 이진수와 이창하에게 다그쳤다.
“야! 이진수 부항장, 내가 언제 이병규에게 500만 원을 받아 대의원 선거자금으로 사용했냐?”
“ ? ”
“이 자식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지 말고 왜 그런 엉터리 진술서를 작성했는지 속시원하게 말해라”
“보안사 수사관이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해주면 항장으로 진급시켜 준다고 해서 그런 거짓말을 했다. 미안하다”
“내가 보안대로 끌려가서 1주일간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는 고초를 당하고 왔다. 그렇지만 너희 두 놈은 정말 나쁜 놈들이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간첩으로 모는 보안사 수사관도 나쁘지만 그놈들 회유에 넘어가 엉터리 진술서를 써준 너희들은 더 나쁜 놈들 이다. 앞으로 법정에서 강압이나 회유에 의해 거짓으로 진술서를 썼다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느냐!”
임씨는 이진수 부항장, 이창하와 마시던 소주병을 들고 이들의 머리를 내리 칠 듯이 소리를 지르자 이들은 “알았다”고 답변했다.
이번에는 황덕수를 만났다.
“자네, 강릉보안대에 끌려가서 알았는데 왜 이병규 그 사람을 코너에 몰아넣고 있느냐. 모두 사실과 다른 내용인데 법정에서 사실대로 진술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줄 수 없다. 나는 할 말을 했으니 간섭하지 말아 달라.”
“당신도 알지만 이병규가 언제 우리들을 선동하고 간첩활동을 했느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면 큰일 난다. 왜 죄 없는 사람을 엉뚱하게 죄인으로 만드느냐?”
“절대 그렇게 해줄 수 없고 이병규와 나는 감정이 좋지 않으니 제발 그만해라”
임종철씨는 황덕수를 만나 설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임종철씨의 회고.
“보안사 수사관이 다른 증인처럼 나도 이병규에 대해 범죄혐의를 입증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처음에는 수사관의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죽을 만큼 혹독하게 얻어맞았다. 알루미늄으로 된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두들겨 맞았는데 꼭 죽는 줄 알았다.
헌병대 선배출신 수사관 하나가 자신들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협박을 하는 바람에 그들의 요구에 비슷하게 맞춰 진술서를 기록했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법정에서 진신을 말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다른 증인들은 너무 엉터리 같은 진술로 이병규를 간첩으로 몰아넣었다. 이병규는 피치 못하게 북한에 다녀온 전력으로 인해 간첩으로 몰린 것이다. 당시 가장 막강한 보안사의 파워와 능력으로 인해 아무 죄도 없는 이병규가 구렁텅이로 빠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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