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진보정당이 개혁적 성향의 제1야당을 향해 "거리로 따라 나오라"고 압박한 적은 많지만 정반대 요구를 내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근 진보정당이 처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진보정당 자리 차지한 민주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미디어법 국면을 거치면서 반MB정서도 강해졌다. 민주당은 지지율 20%대에 안착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5~7%, 진보신당은 2~3%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반MB정서가 강해질수록 제1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디어법 강행 처리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당 대표 단식, 의원-당직자 육탄 저지로 맞섰다. 이런 자리는 평소엔 진보정당 몫이었다. 법안이 처리된 이후에도 민주당에선 정세균 대표, 천정배 의원, 최문순 의원이 금뱃지를 내던졌다. 소수 진보정당은 그러지 못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반MB연대에는 힘을 보태돼 차별적 진보의제를 부각시킨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당위와 현실은 차이가 크다.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국면에서 진보정당은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것이 노무현 정부였고 당시 산자부 장관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였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데 주저했다.
이같은 상황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지방선거는 반MB연대의 프레임으로 치러내야 한다"는 '개혁진영'의 목소리가 높지만 진보정당들은 찬성도 반대도 못하고 있다.
이같은 고민 속에서 진보신당은 12일 국회에서 '반MB연대,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반MB만으로는 안 된다"고 입 모으지만
▲ 이날 토론회에서 노회찬 대표는 정계개편을 언급했다ⓒ진보신당 |
직접 발제에 나선 노회찬 대표는 '반MB연대'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도 "이명박 정권을 악마화하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정치적 문제가 이명박 정권의 '타도'로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는 환상의 유포에 다름 아니"라며 "이는 20년 전 담론의 복귀이자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반MB 연대의 한계를 지적했다.
중도 진보 진영의 연대에 적극적인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 역시 "'반MB연대'의 정치적 의미는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컨텐츠'"라며 "'반MB연대'가 '민주 대 반민주',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측면이 있으나 최근 몇 개월의 흐름은 '민주 대 반민주'만 강조되었을 뿐,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축은 부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MB연대만으로는 안 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안만 만들어내면 되나?"
이날 노 대표는 대안으로 "사회경제 민주주의를 충실히 진전시켜 나가면서, 작년 촛불 시위의 시대정신을 받아 안은 초록 생태 민주주의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며 이른바 '민들레 연대'를 주장했다.
노 대표는 "맞서 싸울 상대는 'MB'가 아닌 약탈투기연합세력인 'MB족'이다. 정치적 민주연합을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연합이 필요하다"면서 △(비정규직법)기간제보호법 및 파견법 폐지와 기간제 사용 사유 제한 도입 △부자기여세 등 부자 증세와 실업부조제도 도입 △4대강 살리기 사업 저지와 토지·주택 공개념 도입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당면 과제로 꼽았다.
이에 대해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반MB연대'와 '반MB대안연대'와의 관계가 의문"이라며 "외연을 같이 하면서 내용을 다소 급진화 시키자는 것인지, 외연에서조차 기존의 반MB연합과 다른 것인지 명쾌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손 교수는 "대안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알리바이로 악용될 수 있으며 문제는 대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대안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회적 힘이 없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근 에디터도 "이명박 정부 반대의 영향력은 박근혜 및 친박세력 > 자유선진당 > 민주당 > 진보정당의 순"이라며 "'반MB진보연합'이 반대의 본질과 이명박 정권의 한계를 폭로하고 대안을 확산할 수 있고, 보수의 균열과 붕괴가 목격되는 상황에서 진보적 담론의 확산을 통해 진보적 여론의 형성과 정치적 조직화를 꾀할 수 있으나 현재의 조건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노 대표는 토론 시간에 "'반MB대안연대'의 실질적 구축을 위해 현 정당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수밖에 없다"며 '정계개편론'을 꺼냈다. 노 대표는 "정책 지향이나 당면과제에 동의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짜야 하며 야권 전체가 '뉴 민주당 플랜'식의 필패의 길과 '민들레 복지, 생태, 평화 연대'의 길을 놓고 일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 1석의 정당 대표가 정계개편론을 꺼낸 것은, 그 실현 여부를 떠나 처해 있는 상황의 급박함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손호철 교수는 "대안과 복지연합의 수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양한 정치세력이 헤쳐모이는 것이 각자 정체성을 가지고 연대하는 것보다 바람직한 경로인지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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