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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삶의 현장이자 사람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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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삶의 현장이자 사람과의 관계

[격월간 민들레] 마을공동체 '삼각산재미난마을'

마을살이가 재미날까요?

얼마나 삶이 재미가 없으면 아니, 얼마나 재미나게 살고 싶었으면 학교 이름, 마을 이름을 '재미난'이라고 붙였겠습니까. 도시에 살지만 뭐라도 있으면 나눠 먹고, 대부분 외동인데 외롭지 않게 함께 키우고, 즐거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가까운 이웃으로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살면 그래도 좀 삶이 재미날 줄 알았지요. 애들이 어리고 부모도 그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었을 땐 그랬습니다.

공동육아도 하고 대안학교도 만들고 마을공동체다 마을학교다, 어른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며 안으로 알뜰하게 감고 밖으로 넉넉하게 풀어가면서 이렇게 만나고 저렇게 엮어가며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른들의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쉽게 해소되지 않더군요. 이 불안과 두려움이 어찌 재미난마을에만 있겠습니까.

저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운영법인인 사단법인 '마을'에서 비상임 이사로 일합니다. 그 덕분에 전국의 내로라하는 마을, 마을공동체 사람들과 강의든 토론이든 견학이든 시시때때로 만나게 됩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품고 있는 고민이나 과제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개별 마을이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또는 도시 따로 농촌 따로 흩어져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한국의 노동시장은 입구부터 출구까지 극심한 차별과 불안정한 고용관계로 쳇바퀴처럼 돌아갑니다. 대안학교를 다녔든 일반학교를 다녔든, 대학을 나왔든 안 나왔든 노동시장의 차별과 불안정함을 피해갈 순 없습니다. 거기에다 밥 한 그릇, 빵 한 조각조차 거대 유통자본과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오염되었고, 사람과 자연을 나날이 병들게 하는 핵 발전과 기후변화는 지구 생명체의 생존마저 위협합니다.

이렇게 우리 삶이 힘들고 미래가 불안한데 과연 마을살이가 재미날까요? 아, 그래도 재미납니다. 어렵고 힘들고, 어쩌면 살아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이지만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느긋하게 그러나 게으름 피우지 않으며 풀어가려는 이웃들이 차츰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그게 사는 재미 아닐까요?

관계 중심의 도시 속 생활공동체를 꿈꾸며

▲ 마을 목공소를 거쳐간 주민들만 500명이 넘는다. ⓒ이상훈
'삼각산재미난마을'도 차츰 생활문화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는데, 관계가 확장되거나 활동이 많아질수록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에 꼭 필요한 마을기금과 마을부동산에 대한 고민과 깊어지더군요. 지난 14년간 다양한 활동을 해왔지만, 마을부동산은 단 한 평도 없고, 마을기금이라 할 수 있는 건 학교와 마을카페 임대보증금을 합쳐 겨우 1억 원 정도랍니다. 급격한 임대료 상승 같은, 도시에서 누구나 겪는 문제가 닥치면 현재로써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제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가정마다 생필품 소비는 어림잡아 한 달에 100만 원이 넘습니다. 주택이나 의료 관련 지출과 자가용 유지비까지 더하면 적어도 150만 원은 훌쩍 넘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가피한 지출을 어떤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사뭇 달라집니다.

우리는 흔히 시중은행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가지고 대형 유통매장을 이용합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유통구조로 내 눈앞에 진열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삽니다. 보험이나 공제기금도 시중 금융자본을 이용하고, 자동차 기름도 대형 석유회사의 주유소에서 넣습니다. 다달이 일정 금액을 지출하지만 그 지출로 생긴 이윤이나 지출과정에서 생긴 수수료가 누구에게 얼마나 가는지는 모릅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소비를 하는데도 마을시장은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집니다. 시가지엔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동네 슈퍼는 편의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달까지 문을 열었던 동네빵집과 떡집도 얼마 전 프랜차이즈 빵집과 카페로 바뀌었더군요.

또 다른 생활을 상상해봅시다. 현실화폐와 일대일로 교환되는 지역화폐를 가지고 지역공동체경제 온라인 플랫폼에서 도시농부가 생산하거나 도농직거래로 유통된 농산물을 사서 먹습니다. 상품 설명이 필요 없는 믿을 만한 공산품을 불필요한 유통이윤(마진) 없이 저렴하게 구매합니다. 마을기업이나 지역 협동조합에서 생산된 물건을 마을직매장에서 사고팝니다. 옆 동네 도시재생주민협동조합에서 할머니들이 정성껏 만든 고추장과 청국장도 사고팝니다. 그냥 사고파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비율이 지역화폐 포인트로 적립되고, 마을기업과 골목상점은 판매액 일부를 약속한 만큼 지역기금으로 내놓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보다 많은 거래가 이루어질수록 지역기금이 쌓이고 주민들은 지역화폐 포인트로 또 다른 소비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민 모임이나 풀뿌리 활동, 혁신교육 활동, 생활문화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다양한 커뮤니티 콘텐츠들을 지역공동체경제 온라인 플랫폼에 소개도 하고 이용도 합니다. 주민들이 모은 출자금과 주민들의 십시일반 품으로 운영되는 마을커뮤니티 공간이 지역 상품의 집하장 역할도 하면 더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게 됩니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게 빠져나가서는 공동체가 지속될 수 없지요. 지역주민들의 생산과 소비가 지역공동체의 자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주민들의 삶으로 순환되면서 서로를 살리는 지역공동체경제 생태계가 절실합니다. 지역 공동체경제 생태계가 낯선 개념일 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네 곁에 있는 것입니다. 그간 공동체 활동을 통해 쌓아온 커뮤니티 콘텐츠와 서비스, 마을기업이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있긴 하지만 이 생태계는 파편화되어 있고 분절적입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같은 중간지원조직들이 생겨나고 도시재생사업이다, 혁신교육이다, 민관 협치가 작동하고 있지만 통합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합니다. 공동체적 생산과 소비 그리고 민관협력에 대한 행정 지원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지역공동체 자산으로 쌓이고 그것이 다시 청년 일자리로, 인생 이모작의 기회로 이어지려면 이런 것들을 연결하고 촉진하는 지역공동체 유통구조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을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구축하고 이용을 확대하면서 다양한 모델들을 기반으로, 지역공동체경제가 건강하게 순환되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마을 공동체경제에 대한 상상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콘텐츠와 비즈니스 콘텐츠가 통합적으로 유통되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 운영하기 위해 2016년부터 서울시 민관협력의 주체들과 대전 품앗이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시민자산회사 설립을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작년 9월 주식회사 위즐소사이어티를 설립했지요. '위즐'은 '우리가 즐겁다'라는 의미를 담은 콩글리시입니다.

위즐은 한마디로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온라인 통합 플랫폼'입니다. 지역 단위의 공동체경제 실현을 목표로 지역 커뮤니티와 경제활동을 하나로 묶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습니다. 위즐은 단순한 인터넷 쇼핑몰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를 아우르는 지역통합 네트워크들과 협약을 맺고 지역공동체경제 생태계를 지향하는 통합경제활동 모델입니다.

지금 이용자집단 현장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결과를 2월까지 정리해서 서비스 기능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4월부터는 시험판을 운영하며 지역 단위 시민사회 네트워크들과도 파트너십을 체결해나갈 겁니다.

대전에서는 2012년 순환과 공생의 지역살림을 목적으로 '품앗이소비자생협'이 설립되었는데, 물류유통 기능을 품앗이생협에서 분리하면서 '(주)품앗이마을'을 거쳐 2015년 사회적협동조합 품앗이마을로 재구성됩니다. 직매장 중심으로 주민을 모으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건 품앗이생협이 맡고, 생산자 조직부터 물류와 배송, 직매장 운영, 급식사업 같은 사업은 품앗이마을이 맡는 구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2016년 9월 사회적협동조합 품앗이마을은 대전에서 네 개의 직영매장과 한 개의 제휴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관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공공급식 식자재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품앗이생협은 작년 여름 기준으로 조합원이 7000명이고, 품앗이마을의 매출 규모는 2015년 24억 원, 2016년 60억 원으로 상근직원은 설립 초기 7명에서 4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품앗이마을은 내년까지 지역 직영매장 여섯 개를 추가로 열고, 학교급식 공급을 확장해 연간 2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2019년까지는 세종시와 충청도 남북을 연계하는 중부권 지역공동체경제 온라인, 오프라인 통합 유통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네요.

대전에서 시도하는 품앗이마을은 대자본 중심의 산업구조를 혁신하는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경제 생태계를 바탕으로, 국가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공동체가 주도하는 사회서비스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아주 소중한 모델이 될 것이기에, 저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 <퀘벡모델>(김창진 지음, 가을의아침 펴냄). ⓒ가을의아침
지역의 공동체경제를 상상하며 캐나다 퀘벡의 사회적경제 발전 모델도 주목하게 됩니다.(책 <퀘벡모델>(김창진 지음
, 가을의아침 펴냄) 참고) 북미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권 문화가 살아 있는 지역으로, 캐나다 연방의 소수자이면서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가 어느 곳보다 집중적으로 발전한 곳이랍니다. 퀘벡은 협동조합과 지역사회공동체 경제개발,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비영리단체, 사회·연대금융기관 등 이른바 사회적경제 영역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일궈낸 지역공동체경제 발전 모델입니다.

사회적경제 조직과 사업이 단편적이고 공공정책의 보조적인 수단화가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지역시민사회의 공동체적 운동성을 유지 하려는 노력이 퀘벡 모델을 통해 얻는 특별한 시사점입니다. 퀘벡 모델은 19세기 후반 이후 21세기 초반까지 퀘벡 사회의 역사적·사상적 맥락과 함께 살펴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퀘벡의 특수한 정치·사회적 조건과 경제민족주의가 바로 협동조합과 만났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른 지역에 비해 여전히 아주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는가, 시민사회는 어떻게 '경제와 정치의 분리'를 막으려고 분투하면서 주체적 역량을 키워왔는가, 그리고 주 정부는 어떤 정책을 통하여 그 기회의 창을 넓혀 주민들의 빈곤을 극복하고, 지역사회를 개발하고, 그들이 경제 주권을 확보하도록 도와주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는가, 한국과 달리 경제성장과 복지국가의 '동반 압축 건설'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아보기에 좋은 곳입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민족주의-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 집권에 성공한 후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지요.

내가 꿈꾸는 마을

살기 좋은 마을이 되려면 결국 깊은 관계 속에서 삶의 문제들을 협동과 연대로 해결하는 경험들이 쌓여야 합니다. 그러한 관계와 경험은 개인에게는 반성적 성찰과 자기 성장을 위한 학습을 꾸준히 요구합니다. 그런데 개인에게 요구되는 성장과 학습은 역설적이게도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쉽지 않지요. 그래서 공동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11월 재미난학교 졸업생과 재학생 아빠들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을 안에서 벌이며, 즐겁게 살아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십시일반 모아 지하상가를 빌리고 먼지 뒤집어쓰며 마을복합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마을서점, 마을주점, 마을영화관, 마을밴드공연장 그리고 마을카페를 하고 싶었던 아빠들이 자신들의 꿈을 한 공간에 어우러지게 꾸몄습니다. 이름은 '싸롱드비(salon de B)'.

마을 아빠 다섯 명이 소소하게 공연도 하고 영화도 즐기며 술잔을 나누던 싸롱드비는 강북지역 마을밴드 연합체인 강북음악크루와 만나면서 다달이 '밴드 데이'를 개최하는 마을밴드 공연장 구실을 하게 되었고, 개봉관에선 볼 수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관인 '다큐유랑'으로, 영화 마니아들의 공동체상영을 위한 극장으로 그리고 십대들의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마을 클럽데이 무도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 마을 극단 '우이동'. ⓒ이상훈

7년 전, 그저 생활목공을 좋아하는 귀 얇고 경솔한 마을 주민 열한 명이 모여 소음 민원을 피하기 위해 지하 20평을 얻어 시작한 마을공동작업장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목공을 배우고 싶은 이웃들을 500명 넘게 만났습니다. 또한, 마을이 학교이고 배움은 관계라는 생각에 재미난학교 본관에 있던 도서관을 마을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뒷마당 별채로 옮기고 재미난학교 마을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학교와 마을의 일상적인 연결고리, 교집합을 만들려는 시도였지요.

제가 꿈꾸는 마을은 이렇습니다. 저는 마을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 말고도 다른 어른들이 아이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마을에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시간과 정성을 모아 소박한 마을장례로 고인의 죽음을 위로해주는 마을에서 살고 싶습니다. 광고에 나오는 상조회사 상품으로 휘리릭 처리되는 장례 말고요. 사람에게 마을은 삶의 시작인 탄생과 삶의 마무리인 죽음이 일어나는 현장(장소)이자, 관계라고 생각해요. 결국 마을에서 시작해서 마을에서 끝나지요. 삶의 현장이자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 그것이 마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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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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