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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 위해 탄광 동료들까지 연행해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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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 위해 탄광 동료들까지 연행해 폭행

[홍춘봉의 광부아리랑] ㉗27년간 '광부간첩' 올가미 쓴 이병규 씨

27년간 '광부간첩' 올가미 쓴 이병규 씨

이병규 씨가 강릉보안대에 불법 연행돼 무지비한 고문과 폭행을 동원한 취조가 실시되는 동안 보안사 수사관들은 이 씨의 동료인 김흔동(당시 해직)과 채탄반장을 하며 노조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임종철을 연행했다.

1985년 5월 19일 장성광업소 부소장실로 호출당한 김흔동 씨는 신두호 부소장과 자신의 복직문제로 대화를 나눴다. 당시 김 씨는 장성사태 이후 해고된 상태였다.

"지부장과 잘 타협하면 김흔동씨의 복직문제가 잘 풀릴 것 같다."

▲장성광업소 철암항 사무실. ⓒ프레시안(홍춘봉)

"알겠습니다. 부소장님!"

이런 대화를 나눈 뒤 부소장실 문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짧은 머리'의 한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잠깐 협조 좀 부탁합니다."

짧은 머리를 한 이들은 김씨에게 반 강제적으로 승용차에 동승할 것을 요구했다.

김 씨가 포니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채 장성광업소를 빠져 나온 뒤 황지에 도착하자, 이들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김 씨를 강제로 의자 밑으로 머리를 숙이게 한 뒤 검은 보자기로 얼굴을 씌워 어디로 연행하는지 알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승용차로 약 3시간 가까이를 달려 영문도 모른 채 강릉보안대에 도착했다.

취조실로 옮겨진 김씨에게는 곧장 취조가 시작됐다.

"너는 불고지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 ? "

"이병규가 북한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죄가 바로 불고지죄인데 불고지죄는 최하 형량이 5년형이다. 그러니 공연히 교도소 생활을 하지 않으려면 사실대로 불어라."

"이병규가 북한에 다녀왔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고 이병규는 전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

"이 자식, 혼이 나야 바른 말을 하려고 그러네, 너 같은 놈 하나 죽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열나게 얻어터지고 불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사실대로 말해라!"

"실제로 저는 그런 말을 들은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합니까?"

"이 자식,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군용침대에 쓰는 각목을 든 보안사 수사관은 김씨의 가슴을 구둣발로 차 쓰러뜨린 뒤 각목으로 온 몸을 난도질하듯 폭행했다.

"아악! 제발 살려 주세요!"

▲1980년 5월 광주에 출동한 공수부대원이 대학생에게 곤봉으로 폭행하고 있다. ⓒ월간조선

약 10분간에 걸친 구타가 끝나자 김 씨는 이곳에서 죽어 나갈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김 씨가 온 몸에 구타를 당하고 난 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일어서자 수사관이 지시했다.

"너는 이곳에서 바른 말을 할 때까지는 못 나갈 줄 알아라."

김 씨는 지하 취조실에서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3일간 폭행과 협박, 허위진술을 강요당하며 시달렸다.

이병규 씨의 간첩행위를 진술하라는 취조가 핵심이었다.

"이병규가 너 앞에서 북한에 다녀왔다는 말을 했다는데 너는 왜 이를 부인 하느냐? 또 너를 앞세워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기 위해 너를 대의원에 당선시키지 않았느냐?"

"이병규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 대의원 선거에서 이병규가 도와준 것은 있지만, 다른 것은 전혀 없다."

김 씨에게 잠 안재우기 고문과 몽둥이 폭행으로도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을 얻어내지 못하자 수사관들은 다시 폭행을 자행했다.

이렇게 1주일에 걸친 폭행과 협박에도 김씨로 부터 이병규의 간첩행위에 대해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다고 판단하자 이들은 석방을 결정했다.

당시 김 씨는 1주일간 보안사 수사관들에게 온 몸을 구타 당하여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시퍼렇게 또는 벌겋게 피멍이 든 상태였다.

수사관이 말했다.

"이곳을 나가면 누구에게라도 취조나 폭행당한 사실을 말하지 마라. 만약 이를 어기고 누구에게 말을 하게 되면 군사기밀 누설죄로 잡아다가 콩밥을 먹게 만들겠다. 앞에 놓인 백지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체의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자술서를 써라. 또 덧붙여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에는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써라.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곳에서 나가면 상처와 멍 자국이 없어질 때까지는 목욕탕에도 가지 말고 부부관계도 하지 마라!"

자술서 작성이 끝나자 강릉지구 보안부대장실로 불려갔다.

호랑이 눈썹을 가진 얼굴의 보안부대장 장재두(가명)대령은 김흔동씨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그동안 수고했다"며 돈 봉투를 내밀었다.

"집에 가서 고기나 사 먹도록 해라."

보안대 승용차를 타고 강릉역에 도착한 김씨는 무자비한 폭행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태백까지 열차표를 끊어 영주행 영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김흔동 씨의 회고.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종합생산부. ⓒ프레시안(홍춘봉)

"보안사 수사관에 의해 불법 연행 체포돼 1주일간 강릉지구 보안대에서 생전 처음 무지막지한 폭행과 취조 등 고초를 겪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나에게 수사관들이 다짜고짜 이병규로부터 북한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불고지죄에 해당돼 5년간 교도소에 보내겠다며 협박했다.

사실대로 진술하자 나는 온 몸에 피멍이 들도록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발길질은 물론 야전침대 각목으로 폭행을 당했다. 이렇게 1주일간 폭행을 당하고 석방됐지만 몸과 마음은 완전히 짓밟힌 상태였다. 보안사 수사관들의 협박에 눌려 이후 10여 년간 누구에게도 이러한 폭행과 협박 사실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고 살았다. 심지어 부인이나 가까운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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