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재벌기업 삼성의 '사실상 총수'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7일 결국 구속 수감됐다. 이미 구속됐는데도 재계와 극우 보수언론들에서는 삼성과 우리 경제의 앞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총수를 구속까지 했어야 하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중에서 한 매체의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39세 판사가 국가 GDP 20% 삼성 총수 구속!" '39세 판사'는 특검이 재청구한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을 발부한 한정석 판사를 가리킨다.
이 기사 본문에는 제목에서 인용한 "삼성은 국내 GDP의 20%를 생산하고…"라는 대목이 있다. 논하고 분석할 가치가 없는 수준의 기사이지만, 문제의 대목은 많은 언론들이 '신뢰할 만한 통계'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한 것이 옳았느냐를 따지기 전에, 이 부회장 구속의 부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된 이 수치의 의미가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GDP 20% 생산'의 근거는 삼성그룹의 총매출액의 규모를 알기 쉽게 표현하기 위해 GDP 규모와 대비해서 나온 수치다. 한국의 GDP가 1500조 원 정도라고 할 때, 삼성그룹의 매출이 300조 원 정도 된다. 그래서 나온 이 수치의 정확한 의미는 'GDP 대비 20%'인 것이다.
그런데 마치 삼성이 GDP의 20%를 생산하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 경제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숫자로 현혹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GDP는 한 나라 안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의 총액을 뜻한다. 1만 원어치의 물건을 사다가 1만2000원에 팔았으면 매출은 1만2000원이지만, 부가가치는 2000원이다. 이렇게 한 나라 안에서 발생한 총부가가치가 GDP다.
삼성전자의 기업평판, 현대차보다 밀린 책임은?
최근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한국경제신문>에 '기업 때리기'를 비판하기 위해 칼럼을 썼다. 그는 전문경영인답게 최소한 수치의 의미를 왜곡하지는 않았다.
이 칼럼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크라운 주얼'로 불리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2015년 창출한 부가가치는 36조 원으로, 윤 전 부회장은 "국내 총부가가치 즉 국내총생산(GDP) 1600조 원의 2.3%에 달한다. 4대 그룹을 합치면 10%에 육박한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그룹이 생산한 총부가가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14년 당시 GDP의 4.7%로, 2위인 현대차 그룹 2.6%에 비해서 월등했지만, "GDP 20% 생산'과는 거리가 멀다.
벌써부터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을 무리하게 구속한 결과라는 식의 관점을 곁들여 전한다면 인과관계를 반대로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해리스 폴(Harris Poll)이 미국 소비자 2만3000명을 대상으로 기업 평판지수를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는 49위(현대차는 48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이 조사에서 2012년 13위, 2014년 7위로 상승 곡선을 그린 데 이어 2015년에는 구글과 애플까지 제치고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유고사태로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총수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해 7위로 떨어졌다. 올해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가 급격하게 추락한 것은 지난해 말 이재용 부회장이 책임지고 직접 수습에 나섰지만, 결국 단종까지 하고 만 '갤럭시 노트7 사태'로 시작됐다. 여기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뇌물수수 당사자로 국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로 이 부회장이 연일 국제적으로 부도덕한 경영자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조사기간 자체가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2월 16일로 이 부회장 구속(2월 17일)은 삼성전자 평판 추락에 반영된 것이 아니다.
올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50'에서 삼성은 10년 만에 탈락했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이 발표하는 '글로벌 지속가능 경영 100대 기업' 명단에서도 4년 만에 처음으로 빠졌다. 이런 변화 역시 이재용 부회장 구속 전에 결정된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호텔신라 우선주가 '경제 테마주'로 떠오른 현상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포스트 이재용의 삼성 총수 후보'로 거론되는 이재용 부회장의 여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지만, 호텔신라 우선주 주가가 '도박판 종목'처럼 급등락하는 모양새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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