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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데올로기'와 작별하자!

[장석준 칼럼] "바리케이드 안쪽의 우상도 몰아내야"

요즘 토요일에 서울 시내에 나가면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세종로에서 광화문 네거리를 거쳐 태평로로 이어지는 대로의 남쪽과 북쪽이 전혀 딴 세상 같다. 세종로에서는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린다. 반면 시청 앞에서는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기각을 외치는 집회가 벌어진다.

세종로 쪽 인파에는 여러 연령대가 섞여 있는 데 반해 시청 광장에는 고령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종로에서는 팔짱 낀 젊은 남녀나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이 자주 눈에 띄는 반면 시청 쪽에서는 군복 입고 색안경 낀 초로의 남성들이 눈길을 끈다. 규모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 시청 앞에 모인 이들의 수를 아무리 많이 쳐줘도 여론조사에서 계속 확인되는 '탄핵 지지 80% 대 반대 20%'의 구도가 얼추 비슷하게 나타난다.

2017년 벽두에 주말마다 서울 중심가에서 반복되는 이 기이한 광경은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분단선을 새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나라의 현대사가 퇴적된 결과인 시민사회 내 단층들이 선명히 노출된다. 촛불 시위는 이 단층들이 지표면 위로 드러나도록 시민사회를 크게 흔들어놓았지만, 단층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2016~2017년 촛불 시위는 새로운 단층 하나를 더 보태서 한국 시민사회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시청 광장에 모인 시민사회의 제1층

어느 나라든 시민사회에는 근대의 두 혁명, 즉 자본주의 혁명과 민주주의 혁명에 참여하고 반응하며 이를 재구성해온 과거 여러 세대의 경험들이 퇴적돼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들이 여러 조직과 전통, 담론과 행동양식을 통해 현재 시민사회의 구조로 이어진다. 집단 경험 중에서도 특히 대중적 사회운동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자본과 국가에 독립적이면서 때로 이들과 대결한 노동조합 같은 조직들이 이후 시민사회의 중핵 구실을 하게 된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대비되는 한국 현대사의 특징은 이런 사회운동의 초기 성장 과정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실은 '부재하다'는 말은 잘못이다. '존재했다'. 일제 강점기(특히 1920년대)에 곳곳에서 노동조합, 농민조합을 건설하려 했고, 이런 흐름이 해방 공간에서 잠시나마 꽃을 피웠으며, 1960년 4월 혁명 직후에도 비슷한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이 다 폭력적으로 단절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사회운동은 분단과 전쟁으로, 4월 혁명 직후의 시도는 5.16 쿠데타로 짓밟혔다. 그래서 비록 역사책에 기록으로는 남았으되 과거 운동의 경험이 시민사회에 자취를 남기지는 못했다. 즉, 한국 시민사회는 사회운동의 과거를 '빼앗겼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진공을 싫어한다. 사회운동의 부재로 빈 공간은 이내 사회운동의 기능을 대체할 다른 조직들로 채워졌다.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새마을운동을 필두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가 불어난 관변 조직이었다. 둘째는 자생적인 자조(自助) 단체로 출발해 강력한 연줄 문화의 토대가 된 향우회, 동창회였다. 셋째는 서민층을 집중 공략한 보수 개신교 교회였다.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가장 단단한 밑바닥, 제1층을 이루는 것은 사회운동의 이러한 역사적 대체물들이다.

이들을 노인층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노인층의 세대적 속성으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노인층과 경향상 중첩되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노인층은 자본주의 혁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느라 청춘을 보낸 세대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였다면 마땅히 사회운동을 생존의 무기로 삼았겠지만, 이들은 그 반공-국가주의적 대체물에 의지해야만 했다. 1987년 이후 비로소 한국 사회에도 사회운동들이 터져 나왔지만, 이 세대는 이 흐름에 동화되지 못했다. 국가와 충돌하는 신흥 사회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국가기구와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통적 조직들에 계속 충성하는 쪽이 더 쉽고 편했다.

그래서 사회운동의 부재를 중심으로 구축된 시민사회 부분과, 신흥 사회운동과 결합된 시민사회 부분 사이의 균열과 대립이 일상 세계에서 무엇보다 세대 간 분단선으로 나타나게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시민사회의 보수적 지층에 속했던 이들까지 한때 새누리당(이들의 눈에는 곧 '국가 정당')으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이 부분은 이내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에 나섰다. 시민사회의 더 큰 부분이 광화문 광장에서 실체화하는 것을 학습한 이들은 시청 광장에서 이를 솜씨 좋게 모방했다.

말하자면 태평로와 세종로를 가르는 상반된 두 광경은 한국 시민사회의 가장 밑바닥 지층과 나머지 사이의 분단이 가시화된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거둔 승리는 (부정선거 요소들을 제외한다면) 시민사회의 제1층이 다른 지층보다 더 강력한 외적 확장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2016년에 시작된 촛불시민혁명은 이 우열 관계를 완전히 뒤집었다. 그러나 제1층과 나머지 사이의 대립 자체는 그대로다. 물론 제1층의 강한 내적 응집력 역시 별로 바뀐 게 없다.

광화문 광장을 연 시민사회의 또 다른 지층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시청 광장에 모인 일부를 제외한 현재 한국 시민사회의 다수가 어떠한 모습인지 드러난다. 그러나 그 안에도 세종로와 태평로를 가르는 분단선만큼이나 심각한 잠재적 분단선이 존재한다. 지금부터는 이 이야기를 해보자.

30년 전의 촛불이었던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 땅에도 사회운동의 봄이 시작됐다. 민주노동조합이 대거 등장했고, 농민회, 학생회 등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봄이 왔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늦게 왔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운동이 대결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더 커졌다. 이제 막 싹 튼 사회운동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산업 자본주의 태동기에 사회운동이 등장해 대응할 기회를 빼앗겼던 한국 현대사의 특징이 이후에도 업보처럼 시민사회를 짓누른 것이다.

가령 노동운동은 노동자 대투쟁 이후 겨우 서구 노동운동 1세대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데 자본은 이미 자본주의 초기 단계를 넘어 전 사회적 지배력을 갖춰나가고 있었다. 서구에서는 거대 산별 노조로 성장한 노동운동이 거대 자본과 세력 균형을 이룬 덕분에 복지국가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한국의 신생 노동운동은 복지국가는커녕 거대 자본에 맞서 노동조합을 지키기도 벅찼다. 노동운동은 점차 대기업, 공기업 안에서 기업별 노동조합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이 기업별 임금협상에 안주하자 다른 운동들이 그 빈 곳을 채워나갔다. '시민운동'이라 불리게 된 운동들이었다. 누구는 시민운동을 중산층 운동이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서구 신사회운동의 틀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경실련, 참여연대 등이 대표한 한국의 시민운동은 대중적 사회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던 중대한 사회문제들에 대응하려 한 지식인 중심 운동이었다 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신생 사회운동들이 직면한 이러한 도전과 한계, 좌절과 적응이 이들과 함께 등장한 시민사회의 새로운 지층을 규정했다. 노동조합 등 대중적 사회운동에 직접 조직된 이들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시민운동은 중앙 언론 매체와 관계 맺으며 나름의 영향력을 펼쳤지만, 조직된 토대가 없었다. 민주화를 주도한 세대(86세대)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새 층위가 모습을 갖춰갔지만, 이는 극히 제한된 조직 구심들과 모래알 같은 대중으로 이뤄진 아주 무른 단층이었다.

'일상' 시기에 새로운 시민사회는 자본과 국가에 비해 엄청나게 열세였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비상'한 방법에 기대야 했다. 그것은 주기적으로 반복된 사회운동의 총동원이었다. 대중적 사회운동에다 시민운동까지 모두 결집해 정권과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원형은 1987년 6월 항쟁일 테고, 실질적인 시작은 1996~97년 총파업일 것이다.

실은 이번 촛불 시위도 이런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광화문 광장을 열려고 싸워온 것은 1987년 이후 성장한 시민사회 부분을 대표하는 사회운동들이다. 광화문 집회 주최자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을 구성하는 단체들 역시 바로 이들이다. 매번 촛불 집회 무대를 준비하고 가두 행진을 기획하는 게 이들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촛불' 혹은 '광장'으로 불려온 시민사회 다수파의 촉매 구실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 시민 혁명으로 부상한 잠재적 제3층?

그러나 광장 시민의 압도적 다수는 사실 기성 사회운동과 직접 관련 없이 행동한다. 심지어 조합원이거나 단체 회원이더라도 소속 조직의 결의나 지침에 따라 시위에 참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소셜 미디어'라 불리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와 감정을 교류하면서 개인적으로 혹은 가족이나 친지와 함께 광장에 나서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세종로에서 나부끼는 깃발의 상당수도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 단체가 아니라 개인이나 비공식 모임이 자유롭게 만든 것들이다.

따져 보면 이런 양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이때부터 조직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후 사회운동의 총동원 국면이 반복될 때마다 이런 참여자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부터는 기성 조직들을 오히려 압도하기 시작했고, 이번 촛불 항쟁에서는 그 규모가 드디어 수십만, 수백만에 이르렀다. 아마 중앙 무대가 필요 없었다면, 기성 조직들은 이 대열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촛불 시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구 곳곳에서 폭발한 저항운동들(가령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 운동)과 같은 시간대 안에 있다. 이들 모두 위계적 조직이 아니라 수평적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대중운동이다. 주된 참여자는 청년들이다. 금융 위기의 직접 피해자가 이들인데다 나이가 젊을수록 정보화의 산물인 네트워크 문화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촛불 시위는 워낙 엄청난 수의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해서 이런 특성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도 젊은 세대일수록 기성 단체들이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통로 삼아 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한국 시민사회에 제3의 단층이 출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태평로와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종로의 중앙 무대와도 다른 시민사회가 구축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장은 청와대 쪽과 시청 광장 쪽에 맞선 공동전선 속에서 차이와 긴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몰아내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시민 혁명이 1단계 승리를 거두고 나면, 이제껏 가려져 있던 광장 내부의 균열선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승리'를 어떻게 이어나갈지를 놓고 1987년 세대의 노동조합, 시민운동과 2017년 세대의 촛불 시민 사이에 지난 몇 달 동안과 같은 합의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촛불 정국 와중에도 자정과 혁신의 시도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노동조합 운동의 모습에서 이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촛불 시위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 단체에 '가입'하는 것은 남의 일로만 느껴진다는 20대의 정서에서도 그런 징후를 읽는다.

이 예감이 그대로 맞아떨어진다면, 촛불 이후 시민사회는 이전보다 더 파편화되고 복잡해질 것이다. 시청 광장과 광화문 광장으로 상징되던 분단에 더해 세 번째 단층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경향상 고령층과 중첩되는 제1층, 86세대가 중심인 제2층에 주로 청년층이 대표하게 될 제3층이 더해질 것이다.

제2층과 잠재적 제3층이 한 블록일 경우에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촛불 항쟁으로 이미 확인됐다. 반면 1, 2층에 더해 제3층까지 분립해 균열과 대립이 복잡해진다면, 한국 사회는 더욱더 해결 불능의 교착 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정반대 방향의 두 갈래 길 앞에 지금 한국 시민사회가 서 있다.

'1987년 이데올로기'와 단절하자

어쨌든 열쇠를 쥔 것은 부족하나마 그래도 자원과 경험을 지닌 쪽이다. 시민사회 제2층의 구성요소인 기성 사회운동들이 자기 혁신을 감행하면서 새로 부상하는 흐름에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전통적인 조직 체계를 넘어서 수평적 네트워크와 중첩되려고 시도해야 한다.

가령 기성 사회운동 조직들이 네트워크형 사회운동의 플랫폼 구실을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이나 미조직 노동자의 네트워크(가령 퇴직자들의 사회 참여 네트워크)를 증식시키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시민운동 단체 역시 시민들이 네트워크형 사회운동(가령 교육이나 주택 문제의 이해당사자 조직)에 나서도록 정보, 정서, 경험을 나누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런 실험을 통해 시민사회의 제2층과 제3층을 처음부터 유기적으로 연결할 가능성을 타진해봐야 한다.

하지만 조직 실험보다 더 근본적인 과제가 있다. 1987년 세대의 시민사회에 익숙했던 상징, 담론, 행동양식 중에서 2017년 세대의 시민사회가 공감하고 동의할 수 없는 것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일이다. 재벌 지배에 맞서는 데 장애가 되고 정규직-비정규직 분열을 거든 사회운동 내부의 한계와 오류를 과감히 드러내고 시급히 새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말하자면 '1987년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2017년 우리는 박근혜 정권, 재벌 세력과 함께 바리케이드 이쪽의 우상 또한 권좌에서 몰아내야만 한다.

* 이 글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발간하는 <시민과 세계> 2016년 하반기호에 실린 논문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적 궤적과 현재의 성찰 ― 서구 사회운동과 비교하며>에서 필자가 주장한 바를 압축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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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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