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북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계기로 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론 재논의 문제를 놓고 지도부 간 이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주승용 원내대표가 전날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할 명분은 많이 약해졌다"며 사드 당론 재논의 방침을 시사한 데 대해, 16일 박지원 당 대표와 정동영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
박지원 대표는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어제 주승용 원내대표가 전화로 연락이 왔다"며 "저는 '그런 문제를 그렇게 빨리 얘기할 필요성이 있겠느냐'라고 했지만 주 원내대표가 그런 개인 견해를 가진다고 했다. 본인의 개인 의사로 어느 정도 논의하는 것은 좋지만, 좀 신중하게 당내 논의를 해 보자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라디오 진행자가 '내일 이 문제를 의총에서 논의하느냐'고 물은 데 대해 "아니오. 내일 의총에서 논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박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주 원내대표 측과 의견 조율을 하고 있다"며 "내일 의원총회는 아니고, 다음 주 화요일(21일)께 관련 논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대표는 "지금 사드를 배치하면 우리 국민 대다수가 마치 북한의 미사일과 핵을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조금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며 "'과연 사드가 이 좁은 땅에서 필요한가', '미국 본토나 일본을 공격하는 데 우리가 사드를 배치해서 막아줄 일인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사드 그 자체의 성능도 아직 검토 단계에 있는 것이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여전히 신중론을 폈다.
박 대표는 "그리고 사드 배치로 인해서 지금 중국과 러시아 정부를 자극했다. 중국 정부는 실제로 엄청난 경제 보복을 하고 있지 않느냐"며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교적 마찰로 우리가 경제 보복을 받는다고 하면 외교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동영 "오락가락 안돼…김정남 때문에 사드 배치? 대중영합주의"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정동영 의원은 "김정남 피살 사건은 피살 사건대로 충격적이지만, 피살 사건을 사드 논의와 뒤범벅 시키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하다. 이럴 때일수록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며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할 때는 뭘 모르고 정했나? 김정남 피살되고 나서 당론을 뒤집어야 한다면 그건 정말 웃음거리가 된다"고 좀더 강하게 날을 세웠다.
국민의당 '국가대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서 좀 더 냉정하게 이런 본질에 대해서 토론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시시비비를 알아야 할 거 아니겠느냐"며 "그 내용에 대해서 정확하게 공부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이걸 진보니 보수니, '안보는 보수'니 이렇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 원내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까지 간접적으로 겨냥해 비판했다.
정 의원은 "정당은 다양한 의견이 있다. 개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국민의당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철회 당론을 정할 때와 본질적으로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드는 사드 하나가 아니다. 패키지, 한 묶음이다"라며 "사드 배치는 한반도를 군비 경쟁의 소용돌이 중심으로 변하게 하고,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의 각종 공약, 국민의당 입장에서 보면 집권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화해협력을 추진해 가겠다는 이런저런 공약들이 다 충돌한다. 6자회담과 남북 대화를 추진해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정강정책과도 모순되고 개성공단 재가동 입장과도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수의 지지자와도 충돌한다"며 "남북 화해를 지지하는 호남의 유권자들과 적대·대결 정책의 핵심에 있는 사드 문제를 가지고 충돌된다. 정체성 충돌"이라며 "그런 점에서 좀 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드 문제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당이 공부해야 하고, 국회가 공부해야 하고, 정치인들이 공부해야 한다. 대선 출마 선언한 분들 중에 정말 사드의 정치학에 대해 몇 시간이나 들여다보고 공부했는지 스스로 고백해 볼 문제"라고 쓴소리를 했다.
라디오 진행자가 '어쨌든 김정남 피살로 안보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인데, 정당 입장에서는 이에 호응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그것은 대중영합주의"라며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일축했다. 그는 "안보 국면에서 대중의 정서에 영합할 게 아니라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재강조했다.
전날 주승용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 간담회에서 "김정은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에 비춰봤을 때 국제사회의 핵 제재가 시작된다면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저희가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할 명분은 많이 약해졌다", "미사일(IRBM) 발사 등 상황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당론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사드 관련 당론을 재논의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