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 신체 활동과 건강한 식생활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연구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건강 행동' 실천을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들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헬스클럽, 수영, 필라테스 등 체력 단련 프로그램은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사설 업체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센터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난 자원만큼 접근성도 높아졌을까?
사설 업체의 프로그램들은 값비싼 상품으로 포장되어 구매는 더욱 어려워졌다. 지역 주민 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영양도 마찬가지다. 영양가 높은 음식의 종류와 양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족하다. 그러나 과일과 채소는 더욱 비싸게 상품화 되고 있고, 돈에 허덕이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의 발길은 여전히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값싼 영양가 낮은 음식들로 향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돈과 시간 모두 없어서 규칙적인 신체활동이나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하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서 호주 국립대 다니엘르 벤(Danielle Venn)과 린달 스트라진스(Lyndall Strazdins) 연구팀은 건강 행동 실천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돈'과 '시간'에 주목한다. (☞관련 자료 : Your money or your time? How both types of scarcity matter to physical activity and healthy eating(당신의 돈 혹은 시간? 돈과 시간의 결핍은 신체활동과 건강한 식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
연구팀은 호주의 전 국민을 대표하는 종단 연구인 '가구 소득과 노동의 역학 조사 (Household Income and Labour Dynamics survey: HILDA)'를 활용하여 25~54세 남녀에서 돈과 시간의 결핍이 건강한 식생활과 신체활동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설명 변수인 돈과 시간의 결핍을 객관적, 주관적 지표를 모두 이용하여 정의하였다. 소득 결핍에서 '객관적 소득 결핍(low income)'은 가구의 가처분 소득이 중앙값의 80% 이하인 경우로 정의하고, '주관적 소득 결핍(feeling poor)'은 현재의 필요와 재정적 책임에 견주어 자신의 가족이 '매우 가난하다, 가난하다, 또는 근근이 살아간다'로 응답한 경우로 정의하였다. 시간 결핍에서 '객관적 시간 결핍(time poor)'은 임금근로, 통근, 육아, 노인간호, 집안일, 봉사활동 등에 매주 70시간 이상의 시간을 쓰는 경우로 정의하고, '주관적 시간 결핍(feeling rushed)'은 '항상 혹은 자주 시간에 쫓긴다'고 응답한 경우로 정의하였다.
결과 변수인 불건강 행동은 다음과 같이 신체 활동 관련 지표 1개와 영양 관련 지표 3개로 구성하였다.
① 신체활동 부족 (매주 30분 미만의 중강도 또는 고강도 신체 활동 여부)
② 외식 횟수 (평소 한 주에 식당, 카페 또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횟수)
③ 고열량 음식 섭취 (하루에 평균 한 번 이상 고열량 음식 - 과자, 케잌, 아이스크림, 포테이토칩 등 - 섭취 여부)
④ 불충분한 과일 및 채소 섭취 (매일 평균 과일을 300g, 야채를 750g 이하 섭취 여부)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돈과 시간의 결핍은 건강 행동 실천을 방해한다. 객관적, 주관적 소득/시간 결핍을 경험하는 경우 (돈과 시간의 투여를 필요로 하는) 신체 활동 부족의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주관적 소득/시간 결핍을 경험하는 경우에는 불건강한 식생활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즉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값이 싼) 고열량 음식을 섭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값비싼) 과일과 채소를 섭취할 가능성은 유의미하게 낮아졌고,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외식 빈도와 고열량 음식 섭취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장기간 시간 결핍을 경험할 때 불충분한 과일 및 채소 섭취의 가능성도 함께 높아졌다.
둘째, 소득 결핍이 장기화되면 위와 같은 건강 영향이 강화되는 반면 시간 결핍의 건강 영향은 훨씬 즉각적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시간과 달리 소득은 '저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즉, 소득 결핍이 (불)건강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저축한 돈이 바닥날 때까지 지연되는 것이다.
셋째, 소득 결핍과 시간 결핍이 결합하면 상승 효과(synergistic effect)가 발생한다. 돈 혹은 시간의 결핍은 그 자체로 건강한 선택을 제약하지만, 두 가지 결핍을 동시에 경험하는 경우 불건강 행동의 위험은 각각의 효과를 합한 것 이상으로 증가한다. 예컨대 신체 활동 부족의 가능성은 객관적 소득 결핍을 경험하는 경우 5% 증가하고, 객관적 시간 결핍이 더해지면 12%로 증가하며, 소득 결핍과 시간 결핍이 2년 동안 지속될 때 22%로 증가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건강 행동을 실천하는데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는 게으른 핑계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돈과 시간은 개인의 역량과 우선순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간은 있지만 가난하다면, 혹은 돈은 있지만 시간에 늘 쫓겨 산다면 신체활동 실천이나 건강한 식생활이 우선순위가 되기 힘들다.
한편 돈과 시간의 결핍을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소득 결핍과 시간 결핍의 결합이 낳는 '상승 효과'는 더욱 우려스럽다. 건강 행동 실천을 방해하는 돈과 시간의 결핍은 결코 개인적 영역에만 속하지 않고, 사회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연구진은 보건의료 중재가 금전적, 시간적 제약을 모두 고려하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말한다.
이러한 보건의료 중재의 예는 한국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제 4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서 중점과제로 포함된 '신체 활동'을 생각해 보자. 이 과제에서 제안하는 대부분의 사업들은 교육을 통해 신체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홍보하고 서비스를 더욱 많이 지원하는 등 '개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때 건강 행동을 실천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신체 활동 친화적 환경 구축에서도 신체 활동을 장려하는 '물리적 환경'에만 집중하고 있다 (기부하는 건강 계단 조성, 안전한 길거리 만들기 등). 정작 건강 행동 실천을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사회적 환경', 예컨대 터무니없이 낮은 최저임금, 긴 노동시간, 소득과 노동시간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가사노동과 자녀돌봄 시간의 성별 격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건강 행동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개인이 아닌, 사회에 되물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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