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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0만 달러 법니다" 공항에 억류될 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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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0만 달러 법니다" 공항에 억류될 뻔한 사연

백수 기자 박상규, 파산 변호사 박준영의 <지연된 정의> 북콘서트

백수 기자와 파산 변호사가 처음 만난 건 2년 전이다. 서로 의기투합해서 형사사건 피해자를 찾아다녔다. 전국 곳곳을 누볐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걸까.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등을 세상에 알렸다. 이들 사건 모두를 재심으로 이끈 것은 그들의 공이 크다. <오마이뉴스> 출신 박상규 기자와 고졸 출신 박준영 변호사 이야기다.

이들이 맡은 사건 중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영화로도 개봉한다. 배우 정우와 강하늘이 주연을 맡은 <재심>이 그것이다. 오는 15일에 개봉한다. 이들의 활동은 지난해 12월 <지연된 정의>(후마니타스 펴냄)로도 발간됐다.

이들이 다룬 사건의 주인공들은 지적장애가 있거나 배움이 미천했다. 경찰과 검찰은 그런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누명을 씌었고 적게는 10년, 길게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야만 했다. 파산 변호사와 백수 기자는 왜 이들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걸까. 지난 11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에서는 조합원 교육으로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를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래 전문.

그들은 왜 말을 하지 않는가 - 박상규 기자

과거 기자생활을 하던 때였다, 언론재단에서 미국으로 기자들을 연수 보내주었는데 그 기자들 중에는 나도 포함돼 있었다. 보름 정도의 기간이었다. 한겨레, KBS 등의 매체 기자가 참여했다. 당시 미국 연수에서 나의 고민은 입국심사를 어떻게 통과할까 였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부담이 컸다. 해외에 나간 분은 알겠지만 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선다. 그때 나는 백인이 아닌 히스패닉계가 심사해주길 바랐다. 소수민이 소수민의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백인이 나를 심사했다. 당시가 2007년이었다.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때문에 미국 입국심사가 무척 까다롭던 시기였다. 그 백인이 내게 물었다.

"너 얼마 버냐?"

영어를 잘 못하기에 바짝 마음을 졸였는데, 마침 그 영어는 귀에 들어왔다. 당시 내가 다니던 언론사는 돈을 많이 주는 회사가 아니었다.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받았다. 그래서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며 이렇게 말했다.

"투 밀리언 달러"

그러자 그 백인 눈이 커지더라. "와우"라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면서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저널리스트"라고 하니 또다시 "와우"라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그러면서 진짜 '투 밀리언 달러'를 버는 게 맞느냐고 재차 물었다. 착각했었다. 원(won)을 이야기한다는 게 그만 긴장해서 달러(dollar)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사실을 나만 알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되는 질문에 나는 한국에서 200만 달러는 큰돈도 아니라고 했다. 백인은 연신 "와우"를 연발하며 "너 거짓말 하는 거 아니냐, 믿지 못하겠다. 너 지금 수중에 얼마 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 박상규 기자. ⓒ프레시안(허환주)

그때 내 수중에는 서울에서 가져온 돈 100만 원이 있었다. 그래서 '원 밀리언 달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다시 "와우"를 더 큰 목소리로 연발하며 '너는 거짓말쟁이다. 옆으로 빠져 있어라'며 나를 입국심사대에서 나와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조금 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입국심사 직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등에 식은땀이 났다.

동양인을 보고서야 내가 무언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에도 몇 차례 버벅거린 뒤에야, 그리고 동료 기자들의 도움을 얻고나서야 겨우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이후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나는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든 생각이 미국에서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나 스스로 경찰 등에 사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였다. 불안감, 그리고 위축감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외국에서만 적용될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이 곳에 있는 프레시안 조합원이라면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다. 판을 읽을 줄 안다. 잘못된 것을 두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닌, 못 배우거나, 가난한 사람, 장애인을 생각해보자.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도 그렇지만 말을 제대로 못하고 살았다. 학교에서는 누가 가장 많이 말을 하나. 교장, 그리고 담임선생이다, 교실에서는 공부 잘하는 애가 말을 잘 한다. 그게 아니면 싸움 잘하는 아이다. 공부를 못하거나 싸움을 못하는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위축되어 살아간다.

사회에 나오면 어떤가. 회사에서는 사장이 제일 말을 많이 한다. 그 밑으로 부장, 과장, 팀장순이다. 이들은 말을 안 시킨다. 회의를 한다고 생각해봐라. 누가 말을 많이 하나. 팀장이 제일 많이 한다. 밑에 있는 직원들은 말을 거의 안 한다. 한다 해도 윗사람 심경이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말한다. 대통령이 탄핵됐는데 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대통령 혼자만 말하지 않았나. 기자들은 모두 가만히 있었다.

소통의 답답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불통은 미국 공항에서만 겪는 일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말하는 것에 대한 장벽을 느낀다. 위계에 의한 위화감이다. 그런데 내가 취재했던 삼례 나리슈퍼, 익산 택시 살인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이 사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한 명만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나마도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게다가 본인이 장애인이거나 부모 중에 장애가 있었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보자.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모임이 있다면 이 모임에서 장애인에게 마이크 준 적이 있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지적장애인이면 더 안 준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더 큰 틀에서 이야기해보면, 우리 사회는 못 배운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는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은 한국에서는 권력이다. 대다수는 자기 처지에 대해 말을 잘 못한다. 글은 더욱 그렇다.

내가 놀랐던 점은 내가 취재한 삼례 나라슈퍼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3명에 대한 재심이 결정된 날이었다. 많은 취재기자들이 그들의 입만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들에게 뭐라도 말을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마 속으로 그랬을 거다.

'염병, 언제 말을 시켜봤어?'

살아온 세월이, 우리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거다. 우리는 모임에서 그런 분이 오면 왕따를 시킨다. '저 사람이 내게 말 시키면 어쩌지?' 이러면서 불안해 한다. 하물며 우리도 그렇게 대하는데 그런 사람이 경찰에 갔을 때, 검찰에 불려갔을 때는 어떻겠나.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들에게 씐 누명과 관련해서 재판관은 묻는다. 왜 검찰에서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들은 말을 안 한 게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말을 했다. 그들은 검찰 진술조서에서 '삼례에 가 본적 있느냐'는 질문에 '이 사건 터지고 가봤다'고 진술한다. 경찰의 현장조사 때 가본 것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 사람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에게 '어딘가 좀 모자란 듯 횡설수설하다'고 평가한다. 이들은 최대한 자신의 말을 했으나 안 받아들인 셈이다.

이들이 국선 변호사를 만났을 때, 변호사에게도 말한다. 자기들이 아니라고... 그러자 변호사가 이렇게 말한다.

"이러시면 곤란해요. 그냥 인정하고 빨리 갔다 오세요."

그들의 말을 모두 차단한 셈이다. 사회의 강자 입장에서, 그리고 배운 사람 입장에서 그들의 말을 재단한 것이다. 곧 개봉하는 영화 <재심>의 실제사건인 익산 택시기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누명을 쓴 최 씨는 15살에 교도소에 갔다. 답답했다. 내가 이 친구를 만난 첫인상은 답답함이었다. 말을 안 했다. 죄도 안 짓고 10년이나 복역한 심정이 어떠냐고 물으면 보통 '죽을 뻔했다'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처음 몇 년은 힘들었는데 지나니 살 만해요."

사실 그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다. 따지지도 않는다. 왜 못 따지냐고 하는 건 우리의 시각이다. 그 사람은 계속 살인을 부인하다 1심에서 15년형을 받았다. 국선 변호사가 그러지 말고 선처를 요구하라고 해서 2심에서 '제가 그랬다. 봐달라' 해서 5년을 깎아 10년형을 받았다.
이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가 법원이 재심을 열지 말지를 결정하는 날이었다.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교도소에서 지낸 그였다. 그런데 재심에는 검사가 나오지도 않았다. 판결 판사는 세 명이 나와야 하는데 한 명만 나왔다. 그러면서 한가하게 '이 재판을 해야 하느냐'고 박준영 변호사에게 묻더라. 재판관이 아직 기록을 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재심 신청을 한 지 2년이 지난 때였다. 그런데 아직 기록도 보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재판관이 최 씨에게 질문했다.

"아니,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죽였다고 허위자백을 했나요?"
"경찰이 때려서 그렇게 자백했습니다."
"아니 아무리 때려도 그렇지 살인죄가 얼마나 무거운데 허위자백을 합니까?"
"....."

그러자 최 씨는 대답을 못 했다. 이 친구가 나중에 한마디 했다. "지가 한 번 맞아보지..." 사회의 약자는 그렇게 무시되기 일쑤다. 배운 사람의 잣대로 약자를 판단하고 재단한다.

문제는 삼례나 익산처럼 누명을 쓴 사법피해자들은 판사나 검사, 변호사, 검찰 등의 실수, 그리고 악의적 조작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약자를 무시하는 사회에서 이런 누명은 태어나는 듯하다.

나도 똑같다. 과거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억울해서 언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다. 언론사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이미 법원, 검찰, 변호사는 이미 가보고 만나본 사람들이다. 밀리고 밀려서 온 사람들이다. 보자기 하나 분량의 사건 기록을 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기자들이 잘 들어주리라 생각하나? 전혀 아니다. 10분 듣다가 '저희가 못 할 거 같다'고 한다. 그러면 '기자님 이것만 읽어주세요'. 그러면서 자료를 두고 간다. 읽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인데, 그마저도 상대를 안 한다. 요즘 종이신문 거의 안 보지만, 펼쳐보라. 대부분이 정치 이야기, 기업 이야기, 시장, 구청장 이야기다. 힘 있는 강자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약자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언론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즉 혼자 말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지금의 언론 대부분은 굳이 말 안 해줘도 되는 이들을 위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 약자들은 밀리고 무시당한다.

남을 욕하는 건 굉장히 쉽다. 입으로만 떠들면 된다. 힘든 것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과연 차별하지 않았나'. 누명은 우리 사회의 차별 문화가 만든 피해라고 생각한다. <지연된 정의>를 통해 우리 스스로 돌아보는 게 사회를 욕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박준영 변호사를 모신다.

▲ 영화 <재심>의 한 장면.

"본질을 안 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 - 박준영 변호사

요즘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자주 받는다. 그러면 도와드릴 수 없다고 메일을 보낸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이미 올해 1년 동안 해야 하는 일들이 밀려있다. 그러면 이해한다는 이가 있는 반면, 계속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이가 있다. 오늘은 극단적인 분이었다.

"당신을 위한 후원금도 들어오는데, 안 도와주고 뭐하는 거냐, 인터뷰하고 방송활동하는 시간은 있으면 도와줄 시간은 없다는 이야기인가. 당신 얼굴에 침을 뱉고 싶다."

그런 메시지 받으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침체된다. 비난에 초점을 맞춰버리면 나도 힘들고 그분도 힘들다. 그러면서도 생각해본다. 그런 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내가 생각하는 이해의 방법은 그들이 형사사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적 불이익을 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반면, 나는 사회적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을 했다고 부각되면서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사회적 불이익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시간도 거의 없고, 강연하거나 인터뷰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도 하지 않는다. 일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데도 잔인한 비판 받을 때면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 강연이 끝나면 울산에 간다. 목격자로 증언해줄 분을 찾으러 간다. 쉽지 않다. (목격자 소유의) 임차인이 사는 집만 안다. 더구나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다. 임차인에게 (목격자의) 주소를 물어서, 그리고 다시 그 주소를 찾아가야 한다. 목격자가 나를 만나줄지, 안 만나줄지도 기약도 없다.

가끔 이런 일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세상을 바꾸는 건 혼자의 힘이 아니라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연대라고 생각한다. 촛불이 그것을 보여준다. 잘난 사람들은 굉장히 큰 힘이 있기에 그 개인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어느 선까지 가면 어렵다. 잘난 사람들 간에 연결된 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미있는 결단을 못 한다. 하지만 시민은 고려해야 할 관계가 없다. 그래서 의미 있는 결단을 내린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로 무기징역을 받은 김신혜 씨의 경우, 재심을 받을 수 있었던 힘에는 연대가 있었다. 김신혜 씨가 조사를 받고 나오면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던 점, 자기가 조사를 받으러 갈 때, 갑작스럽게 상황이 멈췄고 김 씨가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다는 점 등을 증언한 유치장 동료. 김신혜 씨와 억울한 누명을 쓸 뻔 했던 당시 남자친구의 증인. 현장 검증 과정에서 강압적인 행동이 있었다고 증언한 의경 등. 이런 여러 가지가 모여 재심이 결정됐다.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은 당시 현장 검증 영상을 유가족이 촬영하지 않았다면, 위법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웠다. 원래 현장 검증은 촬영을 못한다. 그런데 범행장소가 집이다 보니 그 집에 사는 유족이 촬영하는 것을 경찰이 제지하지 못했다. 그게 17년 지난 후까지도 남아있었고, 그것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를 찍은 영상 테이프는 다른 테이프와 함께 보관됐는데, 그 영상 테이프만 곰팡이가 안 피고 원형으로 보존됐다. 17년 동안 보존했던 유족의 노력도 의미가 있었고, 거기에만 곰팡이가 안 피워지도록 도와준 미생물의 연대 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웃음) 돌아가신 분이 진실 밝히라고 도와준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진범까지 도와줬다. 만약 진범 나타나지 않았다면 재심 이렇게 빨리 안 됐다. 진범이 나타나니 모든 게 종결됐다. 모든 이의 연대로 재심이 내려진 것이지, 어떤 능력 있고, 힘 있는 사람의 힘으로 된 게 아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강연을 하지만 말하는 게 힘들다. 오늘도 쉽지 않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사실 프레시안은 잘 몰랐다. 오마이뉴스는 좌파라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한겨레신문이 합리적 진보라고 생각했다. 프레시안은 솔직히 몰랐다. 하지만 이후 제대로 된 정론이고 의미 있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곳이라고 알게 되면서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프레시안 조합원들은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는 분들 아닌가. 나도 그 고민에 하나 보탤까 한다.

사람들은 내게 형사사고 피해회복이나 형사사고 피해자를 위해서 무슨 제도를 만들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 제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도가 운영이 안 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사람들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발언하는 박준영 변호사. ⓒ프레시안(허환주)

얼마 전 피의자의 진술거부 관련, 민변 변호사와 진보 학자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진술거부권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변 변호사와 학자들은 반박했다. 진술거부권은 피고인·피의자의 권리이니 당연히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진술거부권은 실제 헌법에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떨까? 지적장애인이나 노숙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나? 안 한다. 요즘 최순실이 하는 게 진술거부다. 약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제도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약자들이 진술을 거부할 경우, 재판에서 안 좋게 받아들여진다. 반면, 최순실은 진술거부로 사실을 왜곡한다. 최근 최순실이 특검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도 정작 진술을 거부했다. 조사 참여 이유는 간단하다. 검사가 물어보는 질문을 통해 수사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진술거부권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권으로 이야기된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국선변호사 제도도 이야기해보자. 1년에 100억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게 운영되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무능하고 필요 없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누구도 이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국민참여재판은 어떤가. 우리 사회에 맞는 재판인가. 배심원에게 기록이 제공되는 게 아니다. 필기구만 제공된다.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변호인이 이야기하는 것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나마 기록은 재판 과정에서 PPT로 보는 게 전부다. 이것만으로 어떻게 남의 인생을 결론 내릴 수 있나. 때로는 법리를 따져야 하는데, 제반 조건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고 있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국민참여재판이 청소년 재판에도 도입됐는데, 이들 재판의 배심원으로 누구를 뽑는지 아는가. 같은 청소년이다. 법원이 배심원으로 참석할 아이들을 1~2명 보내달라고 각 학교에 요청한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누구를 보내겠나. 전교 1,2등하는 애들을 보낸다. 이들을 배심원으로 놓고 재판을 하는데, 어떨 것 같나. 사고 쳐서 재판을 받는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배심원이 된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영화보기, 놀러가기 등을 이야기한다. 사고 친 아이들의 가정환경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을 해법으로 내놓는다. 그리고 사고를 친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자기 또래에게 재판을 받는다면 어떻겠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 문제를 두고 무조건 비난하는 문화도 많다. 반면, 진지하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부족하다. 보이는 부분 이외에 본질적인 부분을 살펴보는 문화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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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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