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야권의 본산이자 민주당 경선 '1라운드' 무대인 호남에서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안 지사는 13일 발표된 리얼미터-MBN 조사 다자 대결에서, 전국 평균 지지율 16.7%로 2위를 기록하며 같은 당 문재인 전 대표(32.9%)에게 뒤졌지만 상승세를 이어갔다. (☞관련 기사 : 문재인 32.9%, 안희정 16.7%, 황교안 15.3%)
그런데 이 조사에서, 호남만 놓고 보면 문재인 37.0% 대 안희정 16.4%였다. 같은 기관의 지난주 조사에서는 전국에서 문재인 31.2% 대 안희정 13.0%, 호남에서 문재인 36.7% 대 안희정 9.5%였다. 즉 1주 사이에 안 지사의 호남 지지율은 6.9%포인트가 상승한 것.
다른 기관 조사에서도 유사한 추이가 보인다. 지난 10일 발표된 한국갤럽 자체 조사에서는, 전국 평균 문재인 29% 대 안희정 19%였고, 호남에서는 문재인 31% 대 안희정 20%였다. (☞관련 기사 : 바람 탄 안희정 19%…"文 넘고 역전 노려볼 만")
갤럽 조사에서 역시, 그 전주인 2월 1주차(전국 평균 문재인 32% 대 안희정 10%, 호남 문재인 41% 대 안희정 9%)와 대비하면 안 지사의 호남 지지율은 크게 올랐다. 호남 지역만 놓고 봤을 때, 문 전 대표는 2월 1주에서 2주로 넘어오며 10%포인트가 빠졌지만(41%→31%) 안 지사는 거꾸로 11%포인트 상승(9%→20%)했다.
같은 기간 동안, 갤럽 조사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2월 1주차에 전국 7%, 호남 13%의 지지를 받았고, 2월 2주차에도 전국 7%, 호남 11%로 횡보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월 7일 발표치에서 전국 10.9%, 호남 20.7%였고, 13일치에서는 전국 9.5%, 호남 18.4%로 오차 범위 내에서 약간 하락했다.
안희정 '호남 상승세' 맞나?
여론조사 및 정치 전문가들은 안 지사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샘플 수가 적은 호남 등 특정 지역에서의 지지율 변동은 좀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최근의 이같은 추세가 눈여겨볼 만한 동향이라고는 짚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호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더 상승(호남 6.9%포인트, 경기·인천 5.9%포인트, 대구·경북 3.4%포인트, 충청권 3.1%포인트)하기는 했지만, 지역별 오차 범위 등을 감안하면 안 지사가 호남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지는 조금 더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호남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누굴 찍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반기문 사퇴로 인한 영향이 (안 지사의) '1차 상승'을 이끌었는데, 최근의 조짐을 '2차 상승'이라고 구분할 만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반기문 지지층 가운데 충청권과 보수 성향의 지지가 안 지사에게 간 것으로 분석되는데, 이는 문재인 지지층과 중첩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 전 대표의 지지율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반면(1차 상승), 이제 호남 또는 민주당 지지층을 놓고 경쟁하는 국면으로 진입하는 상황에서는 (안 지사의) 추가 상승 흐름이 있다 해도 이전보다는 더딜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윤 센터장은 "호남의 문재인 지지가 안희정으로 옮겨 갔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최근 상승세로 인해 호남에서 안 지사에 대한 주목·관심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기본적으로 비문(非문재인) 표가 안희정에게 모이는 것 같다"며 "이제부터는 문재인-안희정 간의 제로-섬 게임이 될 것"이라고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역시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에 대해 "반기문 빠진 자리만큼 안희정이 오르는 것"이라며 "지금 민주당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선에서 문재인을 이길 강력한 후보'로 안희정을 꼽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기문 사퇴로 '어쩔 수 없이 문재인' 사라져
이들 전문가들은 안 지사의 상승세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전격 대선 불출마 선언에 기인한 면이 있다고 짚었다. 단순히 반 전 총장 지지층이 안 지사에게 수평이동했다는 게 아니라,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호남에서 '보수·여당(반기문)을 이길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진 것이 안 지사에게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택수 대표는 "반기문 낙마 이후 '문재인이든 안희정이든 누가 나와도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서,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안 지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지율이 충청과 호남을 중심으로 상승하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은 전문가들의 공통적 인식이기도 했다. 윤희웅 센터장은 "호남에서는 문 전 대표를 '정권교체에 필요한 인물'로서 지지했는데, 반기문 사퇴로 정권교체가 수월해졌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후보 선택의 긴장도가 느슨해지면서 안 지사에게도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유승찬 대표 역시 "반기문 전 총장이 있을 때는 '혹시 정권교체가 안 될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 있었는데, 이로 인해 문재인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며 "지금은 정권교체는 상수가 되고 '누가 더 좋은 후보냐' 하는 구도가 됐다"고 풀이했다.
안철수 침체 이유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반기문 사퇴'의 반사 이익을 기대보다 덜 흡수한 데에도 안 지사의 선전이 영향을 미쳤다는 풀이가 나왔다. 윤희웅 센터장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과 그 소속 주자들로 보면, 기존 선택지에 없던 안희정이 새로 진입하게 된 것이 지지율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국민의당이나 안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탄핵심판 이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봤다.
윤태곤 실장 또한 "민주당 경선이 끝나기 전까지는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많이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안희정이 중도, '비문'표를 (자신에게로) 묶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유승찬 대표는 "지금은 '안철수의 시간'이 아니다"라며 "문재인이 '상수'가 된 상황에서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을 누가 이길 거냐' 하는 구도"가 중심이 된 것이 현재의 여론 지형이라고 분석했다.
유 대표는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45%가 넘기도 하는데, 주변에서 2명 중 1명이 민주당을 지지하는지 생각해 보면 (이런 높은 정당 지지율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여론조사 자체에 민주당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상황"이 안 전 대표의 지지율 침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특히 호남에서는, 시기적으로 먼저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일종의 '컨벤션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유 대표는 짚었다.
기사에 인용된 리얼미터-MBN 조사(13일치) 및 갤럽 자체 조사(10일치)는 모두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상세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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