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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의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걷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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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의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걷어내라

[법치의 표리(表裏)] 광장에 잔디밭이 깔린 이유, 아는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1년 반이 흘렀다. 그동안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도 압권은 아마도 2년 연속 등장했던 두 광경이 아닐까 한다. 광화문 네거리에 쌓였던 소위 '명박산성'과 전경버스들의 차벽으로 둘러싸인 '서울광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광경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관해서 우리사회에는 이미 공감대가 존재한다.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했던 소통부재의 문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불통(不通)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명쾌한 분석과 진단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야당들은 모두가 정권 탓이라고 비아냥댈 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문제의 해결책도 나오기 어렵다.

나는 이 글에서 소통부재의 원인에 대한 한 가지 분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초점은 문제의 서울광장을 차지한 커다란 잔디밭 또는 그 잔디밭의 정치사회적 이미지다.

다른 나라 광장과 달리 왜 서울에는 잔디밭이 깔렸을까?
▲ 서울광장 조례를 바꾸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 ⓒ프레시안

서울시청 홈페이지는 서울광장의 조성배경으로 2002년 월드컵 길거리공연이 계기가 되어 서울시청 앞을 시민들을 위한 도심광장으로 만들자는 광범위한 여론이 형성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시민결집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심광장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문제는 그 다음, 즉 그렇게 조성된 도심광장이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차벽에 둘러싸인 서울광장의 핵심부분은 잔디로 덮여 있으며, 잔디밭의 면적은 6,449㎡에 이르고 있다(전체면적 13,207㎡). 도대체 왜 서울광장은 '켄터키 블루그래스'라는 서양 잔디로 덮이게 되었는가?

이런 의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서울시청 홈페이지는 2004년 3월 이후 진행된 서울광장 조성공사(79일간)의 기록을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의문을 가진 국외자로서는 잔디밭에 관한 일상적인 경험들에서 출발하여 이런저런 추론을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서울광장의 형태에 관하여 서울시청 홈페이지는 '대청마루에 뜬 보름달을 연상케 하는 타원형의 잔디광장'이라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으나, 이 설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타원형의 잔디밭이 보름달을 상징한다는 말인가?

한 가지 극적인 대조로부터 추론을 시작해 보자. 배낭여행이든 패키지여행이든 유럽도시들에 가본 사람들은 금방 상기할 수 있는 내용이다.

파리나 런던 같은 큰 도시들이나 이름 없는 작은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도심광장은 유럽 도시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그 도심광장에 갔던 기억을 되살려보라. 또는 거기서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보라. 그곳 어디에서 이처럼 도심광장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잔디밭을 본 적이 있었는가?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도심광장의 바닥은 대개 약간 울퉁불퉁한 석재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그 위로 사람들이 군것질하다 떨어뜨린 과자 부스러기를 먹겠다고 비둘기들이 뒤뚱대고 있었던 같다. 그 주위에는 시청이나 정부청사, 여기저기 배치된 역사적인 기념물들, 대표적인 성당이나 교회,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메인 스트리트들이 늘어서고,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노천카페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노천카페에서 비둘기들을 보며 카푸치노를 마시다가 우리는 시청이나 성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이 아닌가? 그 도심광장 어디에 서울광장과 같은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던가?

유럽도시들이 잘 드러내고 있듯이, 도심광장은 시민적 소통의 핵심적 기반시설이다. 아무리 매스미디어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소통의 혁신을 촉발해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회집이 불가능하다면 시민들의 여론은 항상 권력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뛰어 넘어 시민들 상호간의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도심광장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도심광장은 도시의 어느 곳보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일상의 한복판에 '공론마당'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서울광장에 커다란 잔디밭을 설치한 사람들이 도심광장의 '공론마당'적 가치를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시청 홈페이지는 서울광장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고종보호시위,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6월 민주화,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응원을 언급하고 있다. 이 목록은 그 자체로서 서울광장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론마당'이자 '헌법적 현장'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왜 서울광장은 '켄터키 블루그래스'라는 서양 잔디로 덮이게 되었는가? 도심광장의 '공론마당'적 가치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당시 서울특별시의 최고책임자(이명박 서울시장)는 왜 타원형의 커다란 잔디밭으로 서울광장을 덮고 말았는가?

'광장'을 포획한 도심공원과 축구장의 이미지

이쯤해서 나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도심광장에 관하여 가지고 있을지 모를 일종의 범주착오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도 서울의 도심광장을 커다란 잔디밭으로 바꾸었을 때, 그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혹시 그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시민적 소통의 핵심적 기반시설을 덮어버릴 만큼 매력적인 잔디밭의 또다른 이미지들에 의하여 현혹 당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실상 도심광장을 잡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잔디밭의 그 치명적인 이미지들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보다 다음의 두 가지를 꼽고자 한다.

첫째는 푸른 잔디가 깔린 도심공원의 이미지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커다란 잔디밭과 울창한 나무들을 우리는 너무나 갈구해 왔기 때문이다. 오래 전 유행가에 따르자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함께 사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의 소박한 꿈이 아니었던가?

둘째는 푸른 잔디가 깔린 축구장의 이미지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 나가서 고전을 면치 못할 때마다 모두가 불평하며 함께 외치던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저렇게 문전처리가 미숙한 것은 어려서부터 맨 땅에서 공을 찼기 때문이라고, 잔디구장만 여러 개 있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푸른 잔디가 깔린 도심공원에 누워 한가롭게 일광욕을 하는 광경! 또 푸른 잔디가 깔린 축구장에서 마음껏 달리고 공을 차는 광경!

이 두 광경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이라면 누구든지 염원할 수밖에 없는 소박한 로망이다. 그렇다면 타원형의 잔디밭에 서울월드컵 경기장에 사용되었던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깔고, 그 잔디밭의 사용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에 연결시킨 뒤('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2004.5.20.제정), 광장에서의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해 온 사람들은 무엇을 노린 것이었을까? 청계천에서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민들의 소박한 로망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장소로 서울광장의 커다란 잔디밭을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2004년 5월 이후 2-3년 동안 서울광장에 커다란 잔디밭을 설치한 사람들의 정치적 기획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2008년의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르기까지 만 4년 동안 그들은 각종 선거에서 사실상 전승을 기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푸른 잔디가 깔린 도심공원과 축구장의 이미지들은 야금야금 시민적 소통의 핵심적 기반시설인 도심광장을 잡아먹어 왔다. 이 포식의 논리는 사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큰 돈을 들여 애써 가꾼 잔디밭이니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가 도심광장을 불능상태로 만드는 전가의 보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리를 결코 얕보아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그 배후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도심공원과 축구장을 염원했던 대한민국 사람들의 로망이 작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로망이야말로 2008년 여름 두 달 넘게 계속된 서울 도심의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도심광장의 위축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심공원과 축구장의 이미지들로부터 도심광장의 고유한 가치를 분리시켜 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론마당'이자 '헌법적 현장'으로서 서울광장을 되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존 이미지 제거가 핵심적 작업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 들어 서울광장을 되찾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광장의 사용권리를 찾기 위하여 서울특별시민 1%의 서명을 받아 조례개정을 청구하겠다는 운동('광장조례개정 서울시민 캠페인' http://www.openseoul.org)도 있고, 헌법이나 집시법에 위반되는 서울시 조례를 사법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움직임도 있다.

이런 시도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더욱 핵심적인 것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론마당'이자 '헌법적 현장'인 서울광장으로부터 푸른 잔디가 깔린 도심공원과 축구장의 이미지들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단하게 그 커다란 잔디밭에 깔린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말끔히 걷어낸 뒤, 아직도 맨 땅을 드러내고 있는 인근 도심공원이나 축구장에 재배치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잔디밭이 있던 자리에는 한국적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석재를 깔아 도심광장의 본래적 가치를 만천하에 드러냈으면 좋겠다.

공원은 공원이고, 축구장은 축구장이며, 광장은 광장이다. 이 셋을 하나로 섞는 것이 꿈일 수는 있겠지만, 현실일 수는 없다. 전임자의 잔디밭 때문에 원성을 사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이와 같은 시민적 청원을 제기하고, 오 시장 또한 그 청원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소통부재의 상황을 해결하는 작은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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