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전(핵발전소) 위험성 논란이 제기된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조치를 취소하라는 1심 판결이 7일 내려졌다. 정부의 원전 정책에 급제동이 걸렸다.
판결 내용은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수명 연장이므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만, 핵심은 정부(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원전 관리망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점이 법원 판단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수명 연장을 하면서 원자력 안전을 책임진 정부가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원전 마피아'들에 의해 휘둘려 온 것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이 판결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1심 판결이지만, 당장 정부의 '부실 허가'에 의한 원전 수명 연장에 따른 책임을 묻는 움직임이 시작될 수 있다.
멀게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가깝게는 최근 잇따른 경주 지진 등으로 '원전 안전' 문제가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어서, 원전 반대 운동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탈핵 국가로 가는 역사적 첫 판결이 될 것"
서울행정법원 201호 대법정에서 열린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법원은 국민원고단 승소 판정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제11행정부(호제훈, 이민구, 이정훈)는 이날 원전부지 반경 80킬로미터 이내 거주 원고 측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지난 2015년 2월 27일 낸 월성원전 1호기 계속 운전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계속운전 허가에 수반되는 제반 운영변경 허가사항에 대해 피고 소속 과장 전결로 처리하는 등 원안위의 적법한 심의의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안위의 심의 자격에 관해서도 "위원회 위원 중 2명(이은철, 조성경)은 최근 3년 이내 원자력 이용자가 수행하는 사업에 관여해 법률상 결격사유가 있음에도 운영변경 허가의 심의와 의결에 참여했다"고 위법사유가 있음을 확인했다.
최신기술 적용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 평가 시 최신 기술을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음에도 월성 2호기의 설계기준으로 적용한 바 있는 캐나다의 최신 기술기준을 월성 1호기 안전성 평가에는 적용하지 않았다"며 문제가 있었음을 명확히 했다.
월성 1호기는 지난 2012년 11월 20일 설계수명 30년이 다 되어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원안위는 2022년까지 가동을 연장토록 해 달라는 계속운전 허가를 의결했다. 안전성 논란에도 불구,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한 조치가 이뤄지자 지난 2015년 5월 18일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은 원안위를 피고로 하는 수명연장 무효 국민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했다.
이후 2015년 10월 2일 첫 변론재판부터 지난달 4일 최종변론에 이르기까지 12차례에 걸친 재판 결과, 사법부가 행정부 조치가 잘못되었음을 판결한 셈이다.
그간 재판의 주요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원안위가 월성원전 수명 연장 허가 절차인 운영변경허가 심의 없이 주기적안전성 평가 보고서 심의만으로 수명 연장 결론을 내렸는지 여부 △'최신 운전경험 및 연구결과 등을 반영한 기술기준을 활용'해 안전성 평가를 실시하라는 관련 지침을 원안위가 지켰는지 여부 △심의 권한이 있는 원안위에 충분한 자료가 제공되었는지 여부 △허가 결정 당시 결격사유가 있는 이은철 교수 등 원안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한 것이 적절한지 여부 등이다.
이에 관해 재판부는 대부분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국민소송대리인단의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는 "수명 연장을 위해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피고 측이 제출한 서류가 미비했음을 재판부가 인정"했으며 "운영변경 허가와 관련해 원안위가 심의 의결의 주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사무처 과장이 전결 처리한 사실을 재판부가 위법한 것으로 판결했다"고 이번 재판 결과를 설명했다.
원전 수명 연장 등 정부의 원전 관리가 '부실 투성이'였다는 게 사실상 드러난 셈이다. 이는 정부의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원전 관리와 관련해 '과연 누굴 믿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증가시킨다.
김 변호사는 이어 재판부가 "이윤철 전 원안위원장과 조성경 위원의 결격사유를 재판부가 인정했으며, 이에 따른 심의의결이 위법했음을 확인"했으며 "안전성 평가에 최신기술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확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재판의 의의를 크게 두 가지로 강조했다. 그는 "원안위는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 독립적 규제기관의 역할을 다하라는 취지로 설립되었으나, 실제로는 '핵 마피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문제 사안을 부결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원자력 운영 상황을 심각하게 반성하라고 법원이 경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월성 1호기의 안전 수준이 매우 미흡하다"며 "지진이 계속되는 현실을 고려해 당장 월성 1호기의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결 직후 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원고 측 기자회견에서 김익중 동국대 교수(전 원안위 위원)는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초등학생이라도 설명만 들으면 이해할 만한 상식이 (드디어) 오늘 법원에서 통했다"고 감격했다.
김 교수는 "이번 재판이 우리나라가 탈핵 국가로 가는 첫걸음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부연했다.
원고 측 대리인단 대표 최병모 변호사는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원자력 정책에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지난 40년간 군사독재에 길들여진 일방통행하는 행정부와 이에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한 사법부가 문제"였으나 이번 판결이 이를 뒤집었다며 "새로운 민주화의 분위기와 궤를 같이하는 판결이 나와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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