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하자. 단독이니 뭐니 하는 말에 움츠릴 필요없다. 민주당은 빠졌지만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170석의 거대한 의석을 준 국민들을 생각하자."
안상수 원내대표가 6월 29일 의원총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열흘 뒤인 7월 9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동명부대 파병 연장 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강력한' 요청으로 동의안 비준을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기로 여야가 합의한 지 딱 하루만에 벌어진 일이라 한나라당은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 민주당 탓하기도 무리가 있다. 파병 자체에 반대하는 진보야당과 달리 민주당은 파병 연장안 자체는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원포인트 본회의 개회에 합의해주면서 그 대신 상임위 불참을 통보한 상태였다.
게다가 외통위는 소속의원 29명 중 과반(의결정족수)을 넘는 무려 17명이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다. 여기에 자유선진당 외통위원인 이회창, 박선영 의원도 참석해 의결정족수 미달로 안건처리가 무산되는 일은 상상이 어려웠던 상황이다.
그러나 참석 의원들과 권종락 외교통상부 제1차관 및 권혁순 합참작전참모부장 등이 질의응답을 통해 파병 연장 기간과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부대원 수 359명 등에 대해 심사한 뒤 의결 정족수 확인에 들어갔을 때 1명이 모자랐다. 정몽준, 정의화, 남경필, 윤상현, 이범관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5명이나 불참했기 때문이다.
박진 위원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아 회의를 진행하던 황진하 의원은 "오늘 참석키로 했던 위원들 중 무슨 이유인지 참석 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며 "의결 정족수가 차지 않아 지금 전화를 하고 있다"고 다급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선영 의원은 "동의안 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족수 미달로 의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며 "나는 더 이상 머리 수 채우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 뒤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결국 외통위는 13일 오전 상임위를 열어 파병연장안을 처리키로 한 뒤 산회됐다.
자유선진당 대변인이기도 한 박선영 의원은 단단히 화가 났다. 외통위 회의 뒤 그는 "민주당도 목불인견이지만 단 하나 처리할 안건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소집된 외통위원회에 5명이나 불참해 의결을 못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도데체 뭔가"라며 "한나라당이 얼이 빠져도 한참 빠졌다"고 쏘아붙였다.
이에 브리핑차 기자실에 온 윤상현 대변인은 이렇다 할 변명도 못하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자신은 그 시간에 열린 토론회의 토론자로 나섰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덧붙였다.
한나라당의 이날 외통위 헛발질은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야당을 향해 '파업 전문당'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등원을 압박하는 한나라당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서다. '일하는 국회'는 허울일 뿐, 사실상 유일한 관심사인 미디어법 처리 단 하나만을 위해 의원들을 비상대기까지 시키다보니 '다른 사소한 일' 처리는 이렇게 줄줄 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독국회의 첫번째 부메랑을 맞은 한나라당이 내일부터는 무슨 말로 야당에 등원을 촉구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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