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일하다 1일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13명은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해고 무효를 확인하는 집단 소송을 냈다. 해고자들은 이날 소장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이 앞장서고 있는 비정규직 해고에 맞서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우리는 많게는 10년 가까이 근로 계약을 갱신하며 사실상 정규직과 똑같이 일해 왔다"며 "이번 해고는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해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KBS 비정규직 해고자와 최성호 변호사가 9일 해고 무효를 주장하는 소장을 서울지법에 접수하고 있다. ⓒ프레시안 |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엔 연장 계약…승산은?
비정규직법 유예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서 힘 빠진 설전이 오가고 있을 때 노동자들이 먼저 나선 것. 비정규직법을 놓고 처음으로 열리는 소송이라 승패 여부를 판가름하기도 쉽지 않다.
소송을 대리하는 최성호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 중 홍미라 씨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승소할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
해고자 중 2000년 7월로 입사일이 가장 빠른 홍 씨는 시청자 상담실에서 10년 동안 근무했다. 1999년 파견직으로 입사했다가 KBS가 경영상 필요하다고 판단해 직접 고용 형태로 전환돼 KBS 소속이 된 것.
홍 씨는 그 후로도 연봉 계약직 형태로 계약을 갱신하며 2009년까지 일해 왔다. 형식적으로는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사실상 요식 절차에 그쳤다. 계약이 갱신되는 것과 상관없이 그는 시청자 상담실에서 같은 업무만을 담당해왔다.
최 변호사는 "홍 씨가 담당하는 상담 업무가 KBS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여서 KBS 직접 고용으로 전환했던 직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과 연장 계약을 하는 것이 '2년 이상 필요로 하는 직무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정규직법 취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간제 근로자라 해도 노동권을 보장한 헌법 32조에 따라 정규직으로 판단하는 법리적 해석은 예전부터 있어왔다"며 "따라서 형식적으로 기간제 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무기 계약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정규직 아닌 KBS의 인력구조
소송을 제기한 해고자 가운데는 2007년에 입사해 업무 기간이 2년뿐인 사람도 있다. 최 변호사는 "그건 기간의 문제가 아닌 업무 성격의 문제"라고 말했다. 동일한 직무에 오래 근무한 사람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입사 기간이 짧아도 동일하게 전환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기간제 노동자가 KBS에서 필수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이유를 "정부의 예산 제약 탓"으로 풀이했다. 정부가 예산으로 정원을 제한한 탓에 KBS가 실제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자 어쩔 수 없이 인건비가 싼 비정규직을 선호한다는 것.
최 변호사는 "회사가 해고하기 전에 (해고자들에게) KBS 자회사 소속으로 근무하라며 전직 동의를 하도록 강요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직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데, 회사는 계약 만료를 무기 삼아 강요했고 이건 위법적 소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KBS가 비정규직 해고의 이유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도 "그건 경영진들의 책임이지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KBS는 이익 집단이 아니다. 효율을 따지는 조직이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필요한 업무에 사업비를 지출해 고용해 온 것인데 왜 이제 와 노동자 탓을 하는가"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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