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병·대운하…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냐
대표적인 사례는 한미 간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한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다. 청와대는 지금껏 아프가니스탄 파병 여부는 이달 중순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가 아니었으며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지난 20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만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이 자진해서 파병해줄 것을 요청하는 발언을 했고, 나는 전투병력 파병은 불가능하고 평화유지군 방식으로 파병하는 것은 고려해보겠다고 했다"고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이 전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청와대의 해명과 달리 양국 정상 사이에 파병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그런 발언은 없었다"면서 부인했지만, 자유선진당은 "분명히 그런 발언이 있었다"고 재반박했다. 게다가 함께 자리했던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조차 "솔직한 얘기가 국민에게 일일이 공개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실상 시인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는 고려하지도 않고 있다는 청와대의 거듭된 설명을 이 대통령 스스로가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
대운하 논란도 다시 수면 위로 불거졌다.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전국에 설치될 보(洑)의 숫자가 당초 발표된 것보다 4개 많은 20개인 것으로 확인됐다.
추가로 확인된 보 설치 예정지는 낙동강에 2개, 금강에 1개,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에 1개 등으로 모두 지난 8일 발표된 정부의 종합계획에서는 빠져 있던 것들이다. 보는 간단한 설계변경 만으로도 대운하의 '갑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전문가들로부터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의 전단계'라는 의혹을 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촛불'이 한창이던 지난 해 6월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곧 대운하 계획은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각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부는 "4대강 사업은 대운하와는 다르다"라는 기존의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쇄신요구'는 '중도·서민 선언'으로 물타기…"도대체 진심이 뭐냐"
4월 재보선 참패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까지 여권을 뜨겁게 달궜던 쇄신 논란에도 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메시지는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면전환용 쇄신은 없다"며 버티던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인 지난 15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미국 방문을 끝낸 뒤 귀국해서도 많은 의견을 계속 듣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쇄신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무게를 실은 이 대통령이 첫 언급이었다. 이 대통령은 "대증요법(對症療法 : 표면적인 증상만을 치료하는 방법)보다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시 한 번 기류가 바뀌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귀국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로서는 개각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거나 복안, 방향을 갖고 있지 않다"며 재차 '버티기 방침'을 재확인했다.
각종 현안에 대한 이같은 좌충우돌은 이 대통령이 최근 '근권적 처방'의 일환으로 내놓은 '중도·서민' 선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시국선언 동참'을 선언한 공무원 노조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확정하는가 하면, 비정규직 대책이나 사교육비 경감방안 등을 거론한 대목은 청와대가 앞서 밝힌 '법치와 서민경제라는 투트랙'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 있던 '사회통합위원회'도 조만간 발족될 예정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지한 지지층 결집 시도인 '중도·서민 마케팅'이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 이후 수도권, 영남권, 충청권 등에서 이반현상이 뚜렷해지자 내놓은 '대증요법'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예로 든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근간이 사교육비를 조장하고 있는 마당에 아이디어성 대책이 먹혀들지 미지수다.
야당들은 역시 "반성없는 '중도선언'은 허위"라면서 마뜩찮은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극우보수 진영에서 극도의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는 대목도 이 대통령으로서는 신경을 쓰지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이날 "이 대통령은 편법과 기회주의를 중도실용이라고 위장하고 있다"면서 "헌법상의 취임선서와 대통령의 직무를 위반한 사람이므로 탄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더 큰 '신뢰의 위기' 부를라…위험해 보인다"
각종 현안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이같은 임시변통식 대책은 더 큰 신뢰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광운대학교 정일권 교수(언론학)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이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국민들의 요구대로 국정기조를 바꾸고 싶지 않은 게 이 대통령의 속내인 것 같다"면서 "각종 논란에 대해 이 대통령이 애매모한 태도를 반복해서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급격한 지지율 하락을 막아야 하는 이 대통령으로선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이러한 방식이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 추락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이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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