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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땅 그만 파 먹고 살지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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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땅 그만 파 먹고 살지들 그래"

김민웅의 세상읽기 <159> 정치꽁트

그는 촌구석에서 자란 자신이 그렇게 촌장회의까지 주재했다는 것이 대견하기만 했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촌장들만 해도 스무 명이 넘었다. 그만하면 얼굴도 세우고 실력도 과시했다. 잔치에 쏟아 부은 돈도 만만치 않았다. 촌장 부인들까지 선물을 챙겨서 돌려보냈으니 섭섭지 않게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촌장으로 뽑힌 후 이렇게 기분이 절정에 오른 때가 과연 있었던가 싶었다.

그렇게 촌장회의를 거나하게 치른 뒤 생각해보니, 역시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신념이 굳어졌다.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오려니 쉽지가 않았다. 아직도 무슨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갑자기 골치가 지끈지끈 거렸다. 잠시 미루어 놓았던 일들이 폭풍처럼 몰아쳐 오는 느낌이었다. 사실 유보했다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었던 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편이 옳았을 것이다.

"아, 정말 우리 마을은 아직도 우물 안의 개구리야." 그는 깊이 숨을 몰아쉬면서 탄식했다. 까다롭기 그지없고 힘깨나 쓰는 촌장들을 한 자리에 모아 회의를 순조롭게 진행했다는 것에 대해서 좀 뭔 가들 감격해야 하는데 그러지들 않는 기미였다. 그는 불만스러웠다. 역대 촌장 가운데서 그렇게 대단한 촌장회의를 주재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는 볼멘 표정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반을 끼고 세워진 누각에서 잔치판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건너편에서 그리로 건너오겠다면서 생야단들을 했던 일부 마을의 불평분자들 때문에 손님들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도대체가 이 자들은 세상 변한 줄을 모르는 듯 하다. 땅 파먹고 사는 것도 이젠 한계가 온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새롭게 번화하는 세상에서 대충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건을 만들어 팔려면 다른 동네 사정도 들어주면서 팔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보면 의도치 않은 희생도 있게 마련이다. 불가피하지 않은가? 그런 걸 이렇게 시끄럽게 군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어려운 입장에 처한 건너 마을 촌장을 도와주려고 마을 청년 수십 명 정도 보내 준 걸 가지고 그렇게들 난리를 피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 누이 좋고 매부 좋자고 하는 일 아닌가. 사실 우리도 어려웠을 때 건너편 마을의 덕을 톡톡히 보지 않았던가? 그뿐 아니라 가장 살 사는 그 마을 촌장하고 척져서 지내면 좋을 것도 없는 터에 말이다. 촌놈들은 어쩔 수가 없어. 늘 변방에만 있었다고 여겨 왔던 자신의 처지가 이제 무대 중앙으로 옮겨온 느낌이었다. 촌장도 다 격이 있다고, 일단 무대 중심에 선 이상 옛날 촌구석 일은 가급적 빨리 잊는 것이 좋다고 그는 새삼 다짐했다.

그러는 찰라, 비서가 보고를 올렸다. 땅 파먹고 사는 이들이 무리지어 마을회관 쪽으로 마구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가 단호한 표정이 되었다. "거 참 달리 먹고 살 길을 빨리 찾는 게 수가 아닌가?" 그렇게 속으로 웅얼거린 촌장을 보고는 비서가 잘 알아들었다는 얼굴이 되어 밖으로 나갔다. 촌장은 다시 중얼거렸다. "초대 촌장도 그랬다지 아마. 밥이 없으면 빵을 사먹으면 될 것을, 쯧쯧. 이제 땅 그만 파 먹고 살지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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