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북한을 선입견 없이 볼 수는 없을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북한을 선입견 없이 볼 수는 없을까?"

<인터뷰>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의 대니얼 고든 감독

종종 영화는 현실을 앞서간다. 다큐멘터리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작가들은 남들이 알아내지 못한 것, 알더라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새로이 발견하곤 한다.

19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와 이 영화를 만든 영국 대니얼 고든 감독이야말로 우리에게 발견의 기쁨과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어떤 나라>는 서방의 감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북한에 직접 들어가 북한 사람들, 특히 11살과 13살짜리의 소녀 둘의 평범한 하루하루를 좇은 내용의 작품이다. 이 소녀 둘은 북한의 집단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매스게임의 참가자들이다.

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내용들이어서 외투만 벗기면 그 알맹이는 우리들 어린 소녀들의 모습과 별반 큰 차이가 없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영화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 얘기는 역으로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왜곡된 북한관을 갖고 있었는지를 반증한다.

혹시 이 영화가 지나치게 '친북적'인 것이 아니냐고? 그보다는 '脫이데올로기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다큐멘터리가 전세계 영화제에서 관심을 집중시킨 이유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16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대니얼 고든 감독은 2박3일의 짧은 체류기간 동안 수십여 군데의 매체와 릴레이 인터뷰를 가져야만 했다. 서울에서 단 두 개의 스크린에서 개봉되는, 거의 '단관개봉' 수준의 영화치고 이렇게 인터뷰가 줄을 잇기도 매우 드문 일이다.

다음은 18일 오후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가진 대니얼 고든 감독과의 인터뷰.

- 당신의 흥행감각도 만만치 않다.
"무슨 말인가?"

- 8.15 남북대축전으로 남북한 화해무드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상태다.
"(웃음) 맞다. 하지만 알다시피 한국 개봉일정은 내가 잡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이 영화 말고 첫 작품인 <천리마 축구단>을 찍기 위해 북한을 왔다갔다 하기 시작한 2001년 무렵에도 6.15 공동선언으로 분위기가 좋았었다. 그러다가 부시 입에서 '악의 축' 발언이 나오기 시작하고 다시 긴장감이 고조됐었다. 이러다가 전쟁이 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안타까웠다. 그런데 지난 5월에 개성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가슴에 배지를 단 수백 명의 사람들을 봤는데 얘기를 들으니까 남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평화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송두율 교수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들어본 적 없다."

- 당신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송두율 교수가 얘기하는 이른바 '내재적 비판'론이 떠올려진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꼭 알아야 필요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대상을 비판할 때는 그 대상의 시각에 서야 한다는 얘기라고? 어쨌든 나 역시 작품을 만들기 전까진 북한에 대한 것이라곤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들은 팩트가 전부였다. 사실 팩트들도 아니었지만. 북한에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과 만나보면 소위 그 동안 전달된 팩트에 얼마나 잘못된 것이 많은가를 알 수 있다. 북한에 대해 스스로 전문가인 양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들이 바보이거나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 <어떤 나라>가 영화제 등에서 비교적 폭발적인 반응들을 얻은 데는 기존의 팩트와는 달리 북한을 근접해서 지켜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일상을 담으려는 시도는 지금껏 없었던 것으로 안다."

- 당신의 영화에서 보이는 북한사람들의 보통 모습을 살짝 얘기해 달라.
"내가 처음에 북한에 들어갔을 때 놀라웠던 건, 그 사람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 것이다. 영국인이라면 미국 다음으로 그들에게는 철천지 원수로 취급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어떤 체제에 살든, 또 어떤 피부색과 모습을 가졌든 사람들은 대체로 이방인에게 친절한 법이다. 이 사람들도 똑같구나. 나와,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것이야말로 발견의 기쁨이었다. 그건 영국인들이 흔히들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에 시달리는 것과 같다. 영국인들은 사실 안 그렇다. 북한 사람들도 철저하게 잘못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 남한사람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쪽 사람들도 아리랑을 부르길 좋아하고 소주를 잘 마신다. 잘 울고 잘 웃는다. 감정이 풍부하다."

- 당신은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면서 유난히 중립성, 객관성을 강조하는 것 같던데...
"다큐멘터리 작가라면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단 북한에 대해 편견과 오해, 왜곡, 선입견이 너무나들 많은 상태이고, 그렇다면 자꾸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으로 생각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봤다. 그냥 난 북한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했고 관객들 역시 그냥 그걸 보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들 판단할 것이다."

- 왜 유독 매스게임 연습에 참가한 소녀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
"매스게임은 북한의 맹목적 집단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그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맹목적일까? 역으로 생각하면 참여하는 사람들이 맹목적이어야만 매스게임의 맹목적 집단성이 입증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게임 그 자체보다는 그 안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게 바로 내가 두 명의 소녀를 만나게 된 이유다. 그 결과는 나 자신부터 엄청난 것이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 브루스 커밍스와 와다 하루키 등 한국전쟁에 대한 전문가들의 역사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지?"

- 한국전에 대해서는 남침론, 북침론 등 학술적인 입장에서는 의견들이 팽배하다. 한국전 자체에 대해서도 학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분석과 의견들이 개진돼 있고…
"난 그런 거 신경 안쓴다."

-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사회에 대한 진정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면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백그라운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한 건가? 아니면 아예 모르는 게 나은 건가, 아니면 짐작컨대 당신처럼, 잘 알면서도 구애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어떤 특정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꼭 백과사전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식보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북한과 관련된 내 첫 다큐멘터리 <천리마축구단>은 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세계적 축구 강호였던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이뤄낸 당시 북한 축구단의 후일담, 정확히는 13년 후의 얘기를 추적한 것이다. 과연 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번 영화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이후 지난 50여 년 동안 북한사회, 북한가정, 북한사람, 북한소녀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국전쟁을 누가 일으켰고 어떻게 일어났으며 왜 일어났는가는 내 작품의 1차적 관심사가 아니다."

-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로 그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캠페인을 좋아하는 감독이 아니다. 다만 그 부수효과로 여러가지를 얻었다. 예컨대 BBC를 통해 <천리마축구단>이 방영된 후 분명히 북한사람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영국인들의 그런 변화는 북한사람들에게 역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역시 <천리마축구단>이 북한에 소개됐을 때 축구경기 당시 영국팬들이 북한팀에게 보낸 호응을 보고 놀랐던 것 같다. 제국주의자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축구팀에게 환호하니까.(웃음)"

- 당신은 우리의 월드컵 4강 신화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북한에 소개해야 한다.
"(웃음) 그래 맞다. 한국팀이 4강에 들었을 때 북한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나? 그 사람들 굉장히 뿌듯해 했다. 남조선이 4강에 들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그럴 계획이 있기도 하다."

- 독일의사 폴로첸 같은 극우인사들은 당신의 <어떤 나라>를 보고 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 얘기는 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웃음) 사물을 오픈 마인드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개봉될 당시에도 극도로 보수적인 재미교포들이 내 영화를 보고 갔다. 당혹해 하고 말도 안되는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도 그랬다. 부산이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들었다.(웃음) 변화는 아주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폴로첸 같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문제는… 글쎄? 내가 답변할 문제는 아니다. 남북문제의 여러 정치사회적 현안은 남북한 사람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 이 영화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쟁 분위기를 자꾸 고조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미국이 그렇다. 두렵고 화가 난다. 왜 서로를 좀 더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왜 서로가 충분한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난 이 영화가 여기 남한과 북한,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데 조그마한 역할을 했으면 싶다.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아 그리고 조금 있다가 한국 대 사우디 전을 관람하러 가는 것!(웃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