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이어 포커까지 인간이 기계에게 졌다. 바둑은 정보가 완전히 공개된 게임이다. 상대가 방금 어떤 수를 뒀는지 알고 있다. 포커는 다르다. 상대가 방금 어떤 패를 잡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판단한다. 온갖 속임수가 난무한다. 심리적인 요소가 중요하다. 바둑에 비해 훨씬 인간적인 게임이 포커인데,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가 인간 최고수를 꺾었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간)부터 30일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포커 대회에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리브라투스'가 한국계 미국인 동 김(한국명 김동규) 등 세계 최강의 포커 선수 4명을 모두 물리쳤다고 주최 측인 리버스카지노가 밝혔다. '리브라투스'는 약 176만 달러(약 20억4000만 원)을 땄지만, 이는 가상의 칩이다. 실제 현금으로 교환하지는 않았다.
이번 대회는 '리브라투스'가 20일 동안 인간 선수 4명과 대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회 시작 전에는 인간이 이기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리브라투스'의 이전 버전인 '클라우디코'는 지난 2015년에 4명의 인간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리브라투스'를 설계한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 투오머스 샌덤 교수 역시 "'리브라투스'가 이길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도박 사이트들도 인간이 승리할 확률이 4배 가량 높다고 봤다"고 밝혔다.
'리브라투스'의 승리 비결은 빼어난 '블러핑'이다. 나쁜 패를 들고 있으면서도, 높은 금액을 베팅하는 것인데, 일종의 속임수다.
인간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인 제이슨 레스 씨는 지난 2015년에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포커 대결을 했었다. 짧은 기간 동안, 인공지능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걸 목격한 셈이다.
놀라운 점은 '리브라투스' 개발팀이 '포커 기술'을 따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발팀은 "'리브라투스'에게 포커의 규칙만 입력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인간을 뛰어넘는 온갖 속임수를, '리브라투스'가 알아서 터득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번 대결이 진행되는 20일 동안, '리브라투스'의 실력이 꾸준히 향상했다고 인간 포커 선수들이 밝혔다.
이는 지난해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벌여 이겼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와 대조를 이룬다. '알파고'에는 바둑 규칙만 입력돼 있지 않았다. 방대한 기보(棋譜, 바둑 대국 기록)를 미리 학습한 상태로 대국을 시작했다.
다만 '알파고' 역시 교과서적인 기풍(棋風, 바둑의 개성)을 보이지는 않았다. 인간의 관성과 통념을 깨는, 기발하고 창의적인 수를 둬서 바둑계를 놀라게 했었다.
전체댓글 0